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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53

멍에 벗은 삶 [은퇴자]란 오랜 기간 동안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퇴직했거나 나이가 많이 들어 운영하는 사업체를 정리하고 더 이상 수입 창출되는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하루도 빠짐없는 육체적인 피로와 심적 고통을 겪으며 젊음을 다 바쳐 온 수십 년의 기간을 다 마치고 나서 받은 선물들: 대인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여 영원히 안녕. 몸 상태가 나빠도 직장 또는 삶의 현장에 나가야 하는 고통도 이제는 끝. 출근을 위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필요가 전혀 없으며 쉬고 싶을 때 맘대로 쉬고 어디로든 가고플 때 즉각 떠날 수 있는, 수십 년간 나의 어깨를 짓눌렀던 무거운 멍에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면 절로 콧노래가 나는 즐거움만 있어야 하거늘… 어찌 된 노릇인지 은퇴를 무슨 불행의 씨앗이라도 되는.. 2024. 3. 25.
난감 한 선물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날씨가 제법 추워지기 시작하던 지난겨울 초였다.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일찍 일터에 도착한 나는 차를 세우려고 건물 뒤쪽으로 갔는데 웬 홈리스 한 사람이 문턱에 기대어 잠자고 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곤히 잠든 그를 차마 깨울 수 없어 자동차를 길가에 세우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며 그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지만 어떻게 된 인간인지 해가 중천에 오르도록 일어날 줄 몰랐다. 그대로 놔두면 하루 종일 그러고 있을 것 같아 큰 소리로 불러봤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길래 다시 그의 몸을 흔들어봤지만 노숙자는 꼼짝도 하지 않아 혹시 이미 숨을 거둔 사체가 아닐까 싶어 통나무 굴리듯 굴려봤더니 그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던 노숙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한바탕 욕설을 퍼부운 다음 사라.. 2024. 3. 24.
일 달러의 가치 요즘 미국에 이민 와서 지금까지 운영해 오던 공장과 창고를 정리하는 중이다. 산업과 유통의 혁신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존의 재래식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도저히 살아남지 못한다는 현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기 때문. 남들보다 잘하는 것도 없고 특별나게 열심히 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큰 부족함 없이 잘 살아왔기에 이십여 년 동안 사용해 온 여러 가지 기계들과 부속들을 거의 폐품 수준으로 정리하는 와중에서도 일터를 떠나는 슬픔보다 그동안 우리 가족들의 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는 감사함이 많았다. 어제는 공장 한 모퉁이에 쌓여있던 종이 서플라이 일체를 리사이클센터에다 폐지로 넘기려고 미니밴을 끌고 나갔다. 인보이스가 전산화되면서 쓸모가 없어진 열 박스 가량의 인보이스 노트들을 비롯하여 열댓 박스.. 2024. 3. 23.
성조기 휘날리는 우리 집 2년 전에 엘에이 동부 인랜드 지역, 조금 크고 작고 중간치 크기의 집들이 고르게 모여있는 주택 단지로 이사 온 우리 동네에는 평범한 백인들만 사는 줄 알았는데 막상 살면서 보니 중국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웠다. 대략 삼백여 가구의 동네 사람들을 인종별로 대충 나누어 보면 백인이 50% 중국인이 25% 필리핀인 5% 라티노 5% 아프리칸 미국인 5% 인도인 5% 기타 5% 정도로서 이 숫자는 내가 그동안 살면서 대충 추측해 본 치수 일 뿐 정밀한 조사에 의한 공식 통계는 아니다. 이렇듯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동네라 그런지 공휴일로 정해진 독립기념일 같은 국경일이나 메모리얼데이 같은 기념 주간에 성조기 게양 된 집 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오히려 집 앞마당에다 튼튼한 알루미늄 국기게양대까지 설치하여 눈.. 2024. 3. 23.
지극히 고마운 삶의 루틴 공부하는 학생들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조식 후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점심 먹고 다시 또 공부하다가 집으로 돌아가 숙제와 예습 복습을 마친 후 저녁 식사 후 자유의 시간을 가진 후에 잠자리에 드는 삶이 날마다 반복되는 형태를 일컬어 일상적 반복’ 혹은 ‘틀에 박힌 일상' 뜻의 영어 루틴(routine)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은퇴 후 삶의 기간이 삼 년째 들어서는 나의 하루 일과 역시 매주 매 달 거의 판박이 같이 똑 같이 반복되는 전형적 삶에 루틴 성격을 띠고 있다. 삼 년 전, 동네에서 가장 작은 주택에 속하는 침실 셋 달린 이층 집으로 이사 온 우리 내외는 위층 방 두 개를 하나씩 나누어 쓰고 있었다. 그러다 2년 전부터 타주에 살던 딸과 손녀가 사위가 2년 .. 2024. 3. 23.
양계장 등불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이 두 개의 시는 극심한 진통을 겪으며 낳으시고 기르시고 훈육하시는 와중에서도 끝이 없는 집안 살림마저 감당해야만 하셨던 우리들의 어머님을 기리기 위해 탄생된 시의 첫 소절 들로서 이미 오래전부터 온 국민의 애창곡으로 승격된 [어머니 은혜]와 [어머님 마음]의 노랫말이 되었다. 그런데 유독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에 관한 노래들은 보이지 않고 아버지 은혜라든지 아버님 마음을 찬미하는 시가 어머니에 비해 많이 인색한 이유는 아마도 양친의 위치를 동등하게 보는 서구인들과는 달리 본인의 감정 노출은 물론이고 자녀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 표출이나 사랑한다는 다정한 말 한마디조차 쉽.. 2024. 3. 22.
고물 자동차 랩소디 지진 위험지대에 세워진 미국의 남가주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광대한 지역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위성도시들은 바로 그런 위험성 때문에 10층 이상의 고층건물들은 얼마 되지 않지만 (서울특별시안에 세워진 고층 건물들의 일 퍼센트(1%) 정도), 이삼 층짜리 빌라와 단층, 또는 이층 단독주택들이 서울의 면적 605 km2의 140배가 넘는 87940 km2 광대한 지역에 펼쳐져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시설은 또 얼마나 한심한지 우리 가족을 비롯하여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캘리포니아에서 버스나 지하철 타 봤다는 사람은 만난 적도 본적도 없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등교와 하교는 물론이고 동네 마켓 갈 때에도 자동차 사용은 필수 가 되어 운전면허증 취득이 가능한 16세 부.. 2024. 3. 11.
새끼손가락의 아픔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 란 말은 아무리 많은 자녀들이 있다 하여도 그들에 대한 마음은 모두 같다는 의미 일 것. 그런데도 나는 그 말에 전격 동의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피를 나눈 혈육들이라 해도 부모 말 잘 듣는 자녀와 속만 썩여대는 자녀들 사이에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첫 번째 아기에게 쏟았던 관심과 정성의 분량 또한 그 후에 태어난 아이들에 비해 많을 수밖에 없는 까닭에서다 우리 큰 아들이 대학 갔을 때만 해도 그랬다. 유치원 가기 싫다고 징징 울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의젓한 대학생으로 성장한 우리 집 장남. 나는 너무 대견스러운 나머지 아들이 입학할 학교를 답사하면서 그 학교의 역사와 특성까지 시시콜콜 파악했었다. 그랬던 내가 우리 집 둘째, 딸아이가 대학 갈 .. 2024.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