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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아름다워9

유리구슬 쇠구슬 어린이들이 많이 한가하던 시절. 그러니까 공부하는 것만이 어린 학생들의 전부가 아니었고 컴퓨터 게임도 전혀 없던 소년 소녀들의 장난감은 주로 유리구슬과 종이 딱지 및 고무줄등이었고 그 안에는 가끔씩 나무토막이나 시냇가의 자갈 같은 자연형태의 물질들도 끼어있었다. 세상이 모두 하얗게 변하며 길바닥이 꽁꽁 얼어붙는 한 겨울날에는 눈뭉치와 종이연. 나무팽이 같은 계절 놀이도구도 장난감 노릇을 톡톡히 감당하였는데 대가리 조금 큰 아이들 중에는 화약 딱총이나 고무줄 새총을 불법 개조해서 콩알만 한 돌멩이를 탄환으로 쓰는 쇠파이프 딱총, 고무줄 장력이 아주 센 새총을 들고 놀다가 다쳐서 그렇지 않아도 넉넉지 못한 살림에 시달리는 무모들의 속을 박박 썩여주었다. 병정 놀음 전쟁놀이 하는 과정에서 입게 되는 작은 사고.. 2024. 3. 31.
두 번 죽은 사냥매 산속 옹달샘이나 계곡을 흐르는 실개천에는 요즘 병으로 판매되는 그 어떤 식수보다 더 맑고 깨끗한 물이 넘쳐흐르고 동물원에서나 불 수 있을 온갖 짐승, 날짐승들이 지천에 널려있던 시절.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부족한 나머지 강추위에 얼어 죽고 잘 먹질 못해 굶어 죽는 사람들마저 존재하던 그 고달픈 와중에도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 맑은 공기를 마시고 살았던 덕분인지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는 대체로 착하고 넉넉한 편이었다. 농민들 대다수가 반 머슴 반 노예나 다름없는 가난한 소작농부의 삶을 살다 보니 애나 어른이나 늘 배 고플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가을 추수를 마치고 이듬해 봄까지는 휴식기간이었기에 장기와 바둑. 낚시나 사냥으로 소일하는 청년들이 있었고 겨우내 볏짚으로 밧줄과 가마니 짜기에 열중하는 알뜰 청년.. 2024. 3. 27.
하늬바람 초등학교 삼 학년 여름방학을 시작되던 어느 해 여름, 우리 집 건넌방으로 은숙이네가 세 들어왔다. 예쁜 아기 은숙이 아빠는 스포츠형 머리를 한 삼십 대 초반의 아저씨. 은숙이 엄마는 첫인상부터 매우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이십 대 후반의 아줌마로서 남쪽 지방에 살다가 서울로 갓 이사 온 장소가 바로 우리 집 건넛방이었던 것. 두 돌 갓 지난 은숙 아기는 말도 곧 잘하고 몇 가지 동요도 부를 줄 알아서 여동생 없는 나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그 아이 엄마는 시장에 장 보러 가실 때도 나를 꼭 데리고, 빵이나 도나스를 만드시면 내 몫까지 챙겨주시며 가끔씩 자신의 무릎에 나를 뉘어놓고 귀지 파주셨을 정도로 볼 통통하던 나를 귀여워해 주셨으니 그래서 내리사랑이란 말이 생겨난 모양이다. 이십 대 후반에서 많아야 삼십.. 2024. 2. 18.
그리운 설날 마지막에 내렸던 눈이 길바닥을 빙판으로 만들어 행인들을 괴롭히던 어느 해 설날 아침. 당시 아직 엄마 뱃속에 있던 동생과 두 살이었던 내 바로 밑에 동생은 어머니와 함께 집에 남고, 나는 형과 누나들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큰아버지 댁으로 갔다. 드 넓은 백부님 댁 마당은 이미 열댓 명은 족히 넘을 열 살 미만짜리 꼬마들의 놀이터로 변했고 그중 몇몇 아이들은 한바탕들 했는지 눈가에 눈물자국들로 얼룩져있었다. 안방에는 아버님의 형제분들과 몇몇 당숙님들의 술추렴이 한창이었고 그 와중에 웬 담배들은 그렇게 들 피워대시는지 그 뿌연 연기 속에서도 숨 쉬며 앉아있는 모양새가 무척 신기했다. 부엌에서는 백모님과 숙모님. 고모와 사촌 누나들이 어울려 음식 만들고 나르시느라 한참 분주한데 아이들까지 아우성들이었으니 그 .. 2023. 12. 23.
집으로 가는 길 어느 시절 늦여름날 오후. 한 사내아이가 앞으로 길게 늘어난 자신의 그림자를 밟으며 한적한 황톳길을 걸어갑니다. 어쩌다 나타나는 자동차가 흙먼지를 날리고 갈 때도 있긴 하지만 워낙에 오가는 행인들이 드물다 보니 천천히 지나가는 주변 경치에 동화된 아이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합니다. 수업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철 따라 바뀌어가는 길가에 풀꽃 구경도 그렇지만 언제 날개가 다쳐 길바닥에 엎어진 참새나 길 잃고 헤매는 어린 다람쥐를 생포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죠. 이렇듯 볼 것 다 보고 걸어가노라면 많이 늦어져야 하는데 막상 학교에서 집까지는 한 시간 거리는 별 차이가 없어 그저 꾸준히, 그리고 부지런히 걷다 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다리의 통증과 이마에 돋아나는 땀방울들. 그것들이 .. 2023. 12. 14.
팔다 남은 아이스케키 하루 세끼 먹는 것 마저 수월치 않던 시절이 있었다. 가정마다 가난과 슬픔이 만연하던 그 시절에는 자녀들의 간식까지 신경 써줄 만큼 여유가 없었고 아이들 역시 자신의 처지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사과 배 같은 과일이나 과자 사탕이 먹고 싶어도 사 달라는 말도 못 하며 스스로 포기하였듯이... 세월이 어렵다 보니 공부에 열중하기보다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아동들도 있었는데 간혹 동네 건달들 비호 아래 구두 닦기나 짐수레 끄는 아저씨를 돕는 일 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가장 많이 하던 일은 소액의 보증금만 있으면 가능했던 이동식 아이스케이크 판매 일이었다. 대부분의 어린 아이스케키 장수들은 아이스케이크 가 담긴 통을 어깨에 메고 수업이 없는 주말과 방학 때마다 팔러 다녔는데 부모 대신 실질적 가장 노릇하던 아이들 .. 2023. 12. 6.
경상도 사투리 이북 실향민의 가족 일원으로 서울 한복판에 태어난 내가 처음으로 경상도 사투리를 청취했을 때 느꼈던 놀라움과 경이로움은 아직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 여러분! 저~먼 남쪽 대구에서 전학해 온 김.영.순. 인데 모두 잘 지내기 바란다". 칠판 앞에서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쿠고 있던 낯 선 여학생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새롭게 마련된 제 책상으로 가 앉았다. 개학 한 지 두 달 만에 우리 반에 합류 한 영순이는 대부분의 소녀들의 헤어스타일이던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어 외관상으로는 서울 소녀들의 모습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으나 유난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한 달 두 달, 석 달이 다 가도록 항상 혼자였고 누가 말을 걸을 때면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으나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던 어.. 2023. 12. 5.
겨울 매미 당대 할리우드 명배우 찰톤 헤스톤이 주연으로 나왔던 성경 스토리 영화가 장안에 화제가 되던 해 봄. 우리 가족이 살던 동네는 서울 사대문 밖 변두리 동네라서 포장된 도로가 거의 없는 지역이었다. 신호등 없는 네거리, 가파른 골목길 입구에 쑥돌로 쌓아 올린 높직한 축대가 특징이었던 우리 집은 동네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이정표나 다름없었다. 자전거 수리점은 저기 축대 높은 집에서 왼쪽에서 삼분 거리. 솜틀집은 축대 높은 집 옆 골목길 여섯 번째 오른편 집... 겨우내 얼어 있던 도로가 모두 녹은 봄날. 우리 집 맞은편 작은 공터에 리어카 좌판이 들어섰다. 얼마 되지 않은 좌판 위에는 그림딱지와 나무팽이. 엿과 사탕, 마른오징어, 참 빗과 파리채 같은 주부 용품들, 심지어 어른들을 위한 술과 담배도 놓여 있었다.. 2023.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