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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53

그리움… 그 가혹한 형벌 모는 불행의 원인은 술,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와인이 문제였다. 나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던 그 순간부터 몸은 없어지고 혼만 남아있는 유령으로 변했다. 그리고 일단 죽었으면 밝고 상쾌한 천국, 혹은 어둡고 뜨거운 지옥으로 가있어야 할 내가 무슨 연유로 한 장소에 갇혀 옴싹 달싹도 할 수 없는 불쌍한 신세가 되었을까? 나를 지금의 요 모양 요 꼴로 만들게 한 것은 10년 전 연말 모임에서 마구 마셨던 붉은 와인이 직접적인 요인이지만 그런 음주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게 만든 것은 친구들의 자랑질이었다 회식 분위기의 시작은 좋았다. 오랜만에 보는 동창들도 반가웠고 식탁 위에 가득 차려진 음식들도 백, 적 두 종류로 넉넉하게 준비된 와인의 품질도 기대 이상이었다. 부지런히 먹고 마시는 와중에도 우리들의 정담은 .. 2023. 11. 27.
파란 눈 실종 소동 독일 알프스 작은 산간마을에서 살고 있는 한스 피셔가 평소 즐겨 타던 연(행글라이더)이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을 만나 죽음 일보직전까지 갔던 시기는 그가 막 사십 세 생일을 맞이하던 해였다. 까마득하게 높은 공중에 떠 있던 인간이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추락했는데도 겨우 한쪽 눈만 잃고 생명을 건진 것도 기적인데 일 년도 채 못되어 이전과 다름없는 건강한 몸으로 돌아왔다면 그 동네사람들이 이름 대신 부른다는 인간 불사조란 칭호도 그렇게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평소 거칠고 위험한 스포츠를 좋아하던 한스 피셔 씨는 사고 이후 연 타기는 물론이고 매 격주 간격으로 진행돼 오던 암벽 타기마저 가족들의 맹렬한 만류로 못하게 되면서 실의의 빠져 살던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엉뚱하게도 실명한 한쪽 눈에 끼어.. 2023. 11. 25.
첫번째 크리스마스 이브 매 연말마다 찾아오는 크리스마스는 항상 은혜와 감사가 동반되는 느낌을 받는다. 어려서는 평소에 갖고 싶던 물건을 성탄 전날 밤 방 벽에다 걸어놓은 양말 속에다 넣고 가신다는 산타할아버지로부터 받을 선물을 기대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산타 클로우스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된 조금 더 자라서는 무언가 훈훈하고 넉넉한 느낌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좋아 12월 달력으로 막 바꾸어 지기가 무섭게 성탄절 날짜 카운트 다운을 하며 마음 설래이기도 했었다. 성장이 거듭되면서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으로 오신 날 크리스마스를 경건한 자세로 바뀌어져 갔지만 낭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노래와 금빛 은빛 반짝임의 장식들 그리고 행복에 젖은 행인들을 대할 수 있는 것도 오직 12월 한달 뿐이었으니까. 감사의 .. 2023. 11. 18.
잘못된 환생 입가에 뻣뻣한 수염이 가득 돋았다고 해서 장비라는 별명을 얻은 최 선생은 파란만장 한 삶의 소유자로서 그가 일본계 여성과 결혼하여 아들 딸 두고 있고 삼십 년 전부터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해 오며 오직 가정과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과 그리고 골프를 치기 전까지의 그의 유일했던 취미자 오락은 오직 음주였다는 것. 그리고 육이오 때 양친을 잃고 고아가 되어 길바닥에서 전전하다가 어느 맘 좋은 미군 병사 눈에 띄어 하우스 보이로 취직되는 바람에 그 연줄로 미국에 와서 살게 되었다는 말도 돌았으나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최 선생은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티브이도 보지 않았고 여행도 안 다녔으며 즐기는 스포츠도 없었지만 술 하나만큼은 상당히 좋아해서 몇 주 내리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다가도 한번 시동.. 2023. 11. 15.
오월의 결혼식 그날은 친구의 결혼식이 있는 토요일이라서 돼지우리 청소까지 끝내고 나가려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돼지우리는 며칠만 닦지 않아도 바닥 전체가 오물로 범벅되기에 반드시 수압 높은 호수 물줄기로 씻어내야 하는 법. 돼지들이 질척대는 우리 바닥을 씻어내기가 무섭게 깨끗해진 쪽으로 옮겨가면서 자기 몸에다 물로 씻겨달라며 눕거나 엎드리는 행동들을 나는 이해 할 수 있다. 돼지들의 습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 음식이라고 꿀꿀대며 마구 삼키고 더러운 장소 구정물 속에서 뒹굴기 좋아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단정하지 못한 생김새 탓으로 잘 못 알려진 선입관. 사육사들이 비좁은 우리 속에 가두어 놓은 체 사육하다 보니 더럽고 지저분한 동물로 알려졌는데 돼지의 실체는 누군가 자기 몸 긁어주기를 좋아하고 청결.. 2023. 11. 12.
그래도 아름다운 세상 XXI 세기 2022년 현재 세계 인구는 팔십억을 눈앞에 둔 78억 명 정도로 추산되고 이 숫자는 기원후 10세기 당시 세계 인구 3억 명. 1500년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당시 인구 6억과 비교해 볼 때 가히 폭발적 증가율을 이루어 냈다. 최근 들어와 한국 및 일본 같이 경쟁 심한 사회에서는 인구 감소가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정작 넘쳐나는 인구 탓으로 문제가 심각한 상당 수의 가난한 국가들에서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어 내 나이 일 백세에 접근하게 될 2050년 무렵이면 세계 인구 백억 돌파까지도 가능할지 모른다. 세계 인구 30-40억이었을 때의 나의 젊은 시절에는 세계 인구가 늘게 되면 지구촌 곳곳에서 자원과 식량 부족으로 인한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전쟁 가능성을 제시하는 비관론이 팽배했었다. 따.. 2023. 11. 12.
수은 가로등 수은 가로등 초등교 삼 년 때 나와 같은 반이었던 선희네 집은 내가 살던 집 근처 산 동네에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릴 무렵 점등되기 시작하는 산 중턱 집들의 금 색깔의 전등 빛들은 마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가운데 형광등 조명 시설 덕분으로 유일하게 하얀색으로 빛나던 소녀의 집은 멀리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선희의 아버지는 외부 출장이 잦은 공무원이셨고 새어머니 소생의 두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그 애의 작은 삼촌, 우리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던 어린 은숙 아빠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또래 소녀들에 비하여 머리숱이 많고 새하얀 얼굴에 예쁜 눈을 가졌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으로 등교 길과 하교 길을 같이 하는 나 말고는 친구가 없었다. 음성도 곱고 춥지도 않은데 .. 2023. 11. 11.
해마다 가을이 올 때면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짐승이 뭐냐고 질문한다면 금방 답이 나올 것입니다. 이빨 예리하고 힘세고 사나운 육식 동물들. 호랑이 아니면 사자 같은 맹수들의 모습이 금방 떠오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징그러운 것들을 꼽아보라면 바로 답할 수 없을 것이 우리 주변에는 정말 몸서리 처지도록 징그럽게 생긴 것들이 너무 많은 까닭입니다. 어떤 이들은 바퀴벌레 지네, 혹은 송충이나 민달팽이 같이 배를 깔고 기어 다니는 벌레들에 진저리 치는가 하면 굼벵이와 구더기가 오물오물 움직이는 모습에 차마 눈 뜨고 바라보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저라고 다를 리 없어 어릴 때 자주 잡아서 놀던 나비잠자리 반딧불 같이 예쁜 곤충들은 괜찮은데 귀뚜라미만큼은 무슨 ’ 포비아’ 현상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엄청 협오스.. 2023.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