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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첫번째 크리스마스 이브

by Seresta 2023. 11. 18.

 연말마다 찾아오는 크리스마스는 항상 은혜와 감사가 동반되는 느낌을 받는다.
 
어려서는 평소에 갖고 싶던 물건을 성탄 전날   벽에다 걸어놓은 양말 속에다 넣고 가신다는 산타할아버지로부터 받을 선물을 기대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산타 클로우스의 존재를 믿지 않게  조금 더 자라서는 무언가 훈훈하고 넉넉한 느낌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좋아 12 달력으로  바꾸어 지기가 무섭게 성탄절 날짜 카운트 다운을 하며 마음 설래이기도 했었다.
 
성장이 거듭되면서 인류 구원을 위해  땅으로 오신  크리스마스를 경건한 자세로 바뀌어져 갔지만 낭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노래와 금빛 은빛 반짝임의 장식들 그리고 행복에 젖은 행인들을 대할  있는 것도 오직 12 한달 뿐이었으니까.
 
감사의 계절에 매서운 추위가 동반되어 그런지 어려운 이웃의 사연들이 평상시보다  가까이 와닿는 크리스마스에 관한 추억이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가족 중에 누가 아파서 우울한 크리스마스도 있었고 사업 부진으로 여느 때보다 오히려 쪼들리는 연말을 보낸 적도 있었다. 이렇듯 즐겁거나 슬프거나 크리스마에 얽힌 추억은 좀처럼 쉽게 잊히지 않는데 본인의 경우 미국에서 맞이했던  번째 크리스마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 가족이  이민 와서 입주해 들어간 곳은 나무로 지어진 삼층 짜리 아파트였다 지역에서 흔하게   있는  사십 세대용 규모의 아파트였지만 그보다 규모가 작은 이삼십 세대 규모에서부터 간혹 백여 세대를 수용할  있는 대형 건물도 많았다.


기존의 콘크리트 아파트 보다 못했지만 냉방  난방 장치가  되어있어 거주하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입주자들 가운데 한국인 가족과 아르메니언 가족들이 가장 많았고 소수의 미국 가정  라티노입주자들도 끼어있어 명실공히  인종이 공존하는 주거 단지였다.
 
듣기만 해도 금방 배꼽춤을 연상케 하는 아르메니안 노랫소리트럼펫 소리가 시끄러운 멕시칸 노래에는 거부감이 들었으나 누군가 노래방 반주에 맞춰 불러대는 우리의 가요는 식사 때마다 풍겨 나는 우리네 된장찌개 더불어 언제나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곤 했었다.
 
그런데 아파트 지배인은  많다고 소문난 건물주의 친척으로서 오십  중반이 넘은 미망인으로서 좀 사나운 인상을 갖고 있었다우리 가족이 이사 왔던 첫날밤부터 아이들이 시끄럽게 군다고 위협에  가까운 주의를 주었던 그녀는 그날 이후 사소한 소음에도 사사건건 들볶아대고 타박하여 그렇지 않아도 고달픈 이민 생활을 더욱 힘겹게  주었다.
 
그녀의 과잉 감시 행위는 우리 가족에게뿐만 아닌  그곳에 입주한 모든 동포들을 대상으로 하여 한인들의 원성이 높았는데 한 몇달을 지내고 보니 반드시 관리자의 잘못이라고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달이 멀다 하고 터져 나는 소란부끄러운 행위의 주역들은 모두 우리 동포들였기 때문.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에 느닷없이 들려오는 정겨운 한국말그리운 소리....

“ 야.
빨리 열어 줘!

“이 X아! 
지금이 몇시인데  어디 있다가 이제 들어와!”

"아이고  원수야  이상 못살겠어!”
 
도대체 열쇠는 어디에 두었는지 더벅머리 청년이  동생에게 악쓰는 소리말썽 많은 딸에게 보내는 속상한 어머니의 고함그리고 이민 오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끌고 와서 생고생시킨다며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아래층 주부님의 통렬한 호통 소리  그렇게 시끄럽게들 구는지 타인종들 보기가 다 부끄러웠는데 어느  새벽드디어  소동이 일어났다.
 
아래층  딸네미가  엄마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나갔다 새벽에 몰래 돌아오다가 발각된 것이다플라스틱 파리채를 거꾸로 거머쥐고 딸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던 엄마는 살금살금 들어오던 딸에게 회초리부터 날렸다.
 
야심한 밤에 터져 나오는   딸네미의 비명소리와 때리는 자의 외침은 엄마 편드는 아빠의 준엄한 호통 소리와 그래도 동생이라고 누나 감싸주기에 여념 없는 아들의 만류하는 소리들이  여름날 벽력 소리 같이 울려 퍼질 적마다 입주자들의 밤잠을 설치게 했다.
 
불행한 일가족이 내는 소음은 현장 아파트의 난간을 넘어 건너길 주택단지까지 잘도 퍼져나가건만 신고해 본 들  소득 없을 것이란 이웃 주민들의 체념 탓인지 전화  통화면 달려온다는 경찰차들의 모습은   없었다.
 
우리가 극성맞다고  흉보는 아르메니언 사람들도 잠잘 때는 조용하고 우리보다 좀 못하다고  낮게 보는  라티노들마저 그런 민폐들은  끼치는  같은데 유독 우리 동포들만  그렇게도 다혈질이고 시끄러운지 예전엔 미처 모르던 일었다.


어리둥절했던 이민 초기의  달은 그렇게 지나갔고 연말이 다가왔다아파트 단지 작은 나무들에도, 길 건너 작은집 뜰에도 크리스마스 장식 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지더니 어느새 성탄절 이브가 되었다.
 
우리 가족만의 크리스마스 만찬은 검소하다 못해 초라했다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식사 차림에 호도와 몇 가지 과일 작은 케이크로 외로운 가족파티를  시작할  어디서 아주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니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는 이십여명의 한인 청소년들이  기타 반주에 맞춰 저마다 작은 촛불을 감싸 쥐고 아름다운 화음으로 캐럴 송을 부르고 있었다.

"고요한 거룩한  어둠에 묻힌 ...."
"
 밖에  밤중에...,
" "
루돌프 사슴 코는....... ,
"
  사이로 썰매를 타고...
"
실버벨실버벨~" " 베들레헴`"
 
가슴이 떨려올 만큼 아름다운 캐럴송을 일절은 한국말로 절은 영어로 부르고 있었다적막하던 동네길과 근처 아파트 베란다마다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우리 부부도 기뻐서 어쩔  모르는 우리 애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아래층 시끄러운 형제도말썽 많고 탈도 많던 가족도. 그리고 부부  잘하는 부부도 다정한 모습으로 노래하는 천사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천사의 음성으로 기쁨과 깊은 감동을 선사한 캐럴송의 주인공들은 우리 아파트에 사는 30 한인 부부가 맡은 교회 학생들이었다는데 고달픈 이민 생활 속에서도 주일학교 교사로 헌신적인 봉사를 하는 선생님 부부께 드리는 찬양이었지만 거주자아니  근방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최상의 선물이었다.
 
어린 천사들이 보내는 크리스마스 캐럴은 연말을 맞이하여 더욱 외로움 타던 우리 가족들과 이웃들 가슴속 깊은 곳까지 울려주었고 심지어 그렇게 사납게 굴던 지배인의 마음마저 녹여주었을까  이후부터 아파트 지배인의 짜증과 불신 어린 눈빛은  이상 찾아볼  없었다.
 
다시 이전의 고요함으로 돌아온 아쉬움이 남았는지 누군가가 부르는 캐럴송이 들려왔다.
고요한  거룩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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