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가에 뻣뻣한 수염이 가득 돋았다고 해서 장비라는 별명을 얻은 최 선생은 파란만장 한 삶의 소유자로서 그가 일본계 여성과 결혼하여 아들 딸 두고 있고 삼십 년 전부터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해 오며 오직 가정과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과 그리고 골프를 치기 전까지의 그의 유일했던 취미자 오락은 오직 음주였다는 것.
그리고 육이오 때 양친을 잃고 고아가 되어 길바닥에서 전전하다가 어느 맘 좋은 미군 병사 눈에 띄어 하우스 보이로 취직되는 바람에 그 연줄로 미국에 와서 살게 되었다는 말도 돌았으나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최 선생은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티브이도 보지 않았고 여행도 안 다녔으며 즐기는 스포츠도 없었지만 술 하나만큼은 상당히 좋아해서 몇 주 내리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다가도 한번 시동 걸렸다고 하면 사흘 내리 식사를 전폐하며 오직 술만 마셔대다가 기력이 쇠진해지면 다시 사흘 연속 누워 지내야 가까스로 일어나는 그의 괴이한 음주 습관 탓에 가족들은 늘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얼마 못 가 폐인이 되게 할 것 같던 그의 음주습관이 어느 순간부터 감쪽같이 고쳐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평소 그의 음주행위를 크게 걱정하던 처남이 골프라도 배우면 좀 나아질까 하여 좋은 골프채를 선물했는데 그게 적중된 것. 가족들은 이제 술 걱정 대신에 밤마다 미친 듯이 골프채를 휘둘러대는 가장을 염려하게 되었다.
장비 최 선생과 거의 같은 시기에 골프 연습장에 다니기 시작한 김 선생의 내력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학창 시절부터 양쪽 귀 달린 위치가 티 나게 다르다고 하여 ‘짝귀’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사람인데 훗날 골프를 치면서 동료들로부터 ‘알 까는 수탁’이라는 아주 안 좋은 별명을 한 개 더 얻고 말았으니 이는 순전히 제가 잘 못 쳤던 공을 잃어버릴 때마다 다른 공으로 슬쩍 교체하는 습관 때문이었다고.
짝귀 김 선생은 한국에서 결혼하여 사회생활까지 하다가 미국에 온 사람치곤 남들이 그렇게 힘들어하는 언어장벽과 경제문제를 이민 온 지 십여 년 만에 해결하는 아주 능력 있는 사람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경마에 빠져들고서부터 그의 삶은 밧줄 위에 올라선 곡예사의 신세로 전락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푼돈 수중에 불과했단 그의 배팅 액수가 횟수를 거듭하면서 점점 높아 가면서 그의 곡예도 더욱 위험천만했으니 그 꼴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한나절의 짜릿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부부가 뼈 깎는 노력으로 얻은 한 달 수입을 고스란히 날려버린다는 것은 아무리 경마에 눈이 먼 자라고 해도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 몇 번씩이나 경마를 끊으려 했으나 그럴 때마다 눈앞에 어른대는 말들의 환영 때문에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따앙~ 출발을 알리는 총성에 맞추어 넘실넘실 달려 나가는 말들의 모습.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시로 순서가 뒤바뀌는 말들의 경주에 넋을 잃은 아빠의 그런 꼴을 보다 못했던 딸은 골프라도 배우면 나아질까 하여 골프채 세트를 사들고 온 것이 김 선생의 골프 입문의 동기가 되었다.
이렇듯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최 선생과 김 선생이 같은 시기 같은 동네 연습장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면 이는 우연이 아닌 숙명일 것, 반평생 친구도 없이 외롭게 살던 두 사람은 그때부터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골프에 모든 것을 걸고 사는 인생들로 변모해 갔다.
그들은 밤마다 연습장에서 만나 같이 연습했고 그러다 주말이 오면 새벽 동트기가 무섭게 골프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골프란 날씨도 어느 정도 맞아줘야지 주말이라고 다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일주일 내내 학수고대하던 주말, 그러나 비라도 오게 되어 집안에 죽치고 있을 때면 얼마나 신경질을 내고 낙심해하는지 그의 가족들은 술추렴 하고 경마에 미쳐 지낼 때와 다를 바 없다고까지 느꼈을 만큼 두 사람의 골프 중독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골프 치고 난 뒤에 항상 있기 마련인 회식자리에서도 두 사람은 그날 치른 경기 내용을 복습하느라고 밥도 잘 못 먹을 정도였다고.
한 사람이 “그 건 이렇게 처야 했어 “ 애석해하면 이어 다른 사람이 일어나서 “아냐, 그건 요렇게 쳤어야 했어” 하며 나무젓가락을 골프채 삼아 마구 휘둘러대었다면 이미 다 알아본 것이 아닐까. 두 사람은유언장도 같이 작성했는데 그 내용이 기가 막혔다.
”내가 진작에 골프를 배웠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무 늦게 시작해서 요정도 실력밖에 안 되는 게 너무 분하다. 다음 생에선 골프 고수가 되고 싶으니 나의 뼈 가루를 반드시 자주 가던 모모 골프장 잔디에다 뿌려 달라.”
골프도 이 정도쯤 되면 이미 취미의 수준을 넘은 신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두 사람은 자신들의 유언장 작성 몇 달 후에 그 유언이 곧바로 실행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초겨울 궂은 날씨에 골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두 사람이 동승한 자동차가 갑자기 내리 붇는 진눈깨비에 미끄러진 덤프트럭에 받치는 대형사고가 터진 것이다. 유가족들은 극심한 충격과 슬픔 속에서도 고인들의 유언 따라 화장된 재를 평소 그이들이 끔찍하게 사랑하던 골프장 곳곳에다 슬며시 뿌려주었다.
골프를 제 몸처럼 사랑하던 두 사람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졌지만 골프장은 여전히 대만원. 청명한 하늘 아래 펼쳐진 진 초록색 초원 위에서 골프 치기에 한창인 노 신사 네 분은 이상하게도 몇 해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던 두 동료들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났다.
보통 때는 천하에 호인들이었지만 골프 칠 때는 유독 까다롭고 상황에 따라서는 얌체 짓 마저 서슴지 않았던 장비와 짝귀의 모습이 떠올려진 것이다.
동료 한 사람이 하얀 작은 공을 창공에 띄어 날렸다. 그러나 다른 동료는 아까부터 졸졸 따라오는 토끼와 다람쥐를 유심히 보느라고 자신의 차례도 모르고 있다가 떨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저기를 좀 보시오 들"
동료들의 눈들은 갑자기 커졌다. 자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다람쥐와 토끼......
작은 나뭇가지 한 개를 쥐고 있는 다람쥐의 작은 주둥이에는 꼭 어디 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구레나룻처럼 돋아난 털이 그득 했고 뒷발을 딛고 일어선 잿빛 토끼의 한쪽 귀는 유난히 짧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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