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53 달 밝은 가을 밤에 추석을 하루 남기고 늘 조용하기만 하던 마을은 갑자기 들뜬 분위기로 변하였다. 올해 추석은 마을을 방문하는 높으신 나리 일행들을 맞는 행사와 겹쳐져 개인이 아닌 마을 전체의 잔치로 치러야 했기에 동네 아줌마들은 다음날 쓰일 송편 빚기와 여러 가지 음식 준비하시느라, 아저씨들도 닭 돼지 도살하시고 삶아내기에 분주하셨다. 갓 쪄내 온 순대와 돼지 수육, 닭고기, 생선 전과 파전. 고사리 녹두 부침에 송편과 시루떡 그리고 여러가지 과일들 모두 마을 학교 교실내 몇장의 기다란 송판으로 급조된 식탁위에다 잘 진열해 놓고 다시 여러집에서 착출해 온 몇장의 홀겹 이불로 감싸 덮어놓은 이유는 아직 전기 없는 마을에서는 냉장고를 쓸 도리가 없어 미리 조리해 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와 행동이 민첩하여 족제비라고 통.. 2023. 11. 6. 제니퍼의 꽃다발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이 오면 여기저기에서 많은 모임과 행사가 열린다. 그 많은 모임, 행사들 중에는 무사히 한 해를 보낸 데에 대한 만남들, 각자가 몸 담고 있는 단체에서 주관하는 파티들이 가장 많은 것같고것 같고, 전체적 문화생활의 향상 덕분인지 어린 연주자들의 발표회도 부쩍 늘었다. 한 해 동안 배우고 익혀온 연주 기량을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고 선보이고 전문연주자로서의 자세를 배우고 익히기 위한 연말 연주회. 그럴 때마다 분주해지는 사람은 언제나 그들의 부모 일 것이다. 발표회 날 입을 옷도 준비해야 하고 특히 아직은 숙련 중에 있는 연주자들의 발표회에 관심을 못 두는 일반 관객들의 초청 또한 부모들의 감당해야 하는 까닭이다. 평소 연말 특성상 많은 행사와 모임이 겹칠 수밖에 없는 연말의 주.. 2023. 11. 1. 첫 경험의 환희. 그리고 두려움 나는 세상에 태어나 열두 살 조금 더 지나서야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그 나이에 이르도록 우리 집에서그다지 멀지 않던 뚝섬 인근의 한강수 맑은 물만 보고 살다가 나의 모든 시야각을 채워버린 하늘과 맞닿은 바다의 엄청난 위용. 세상을 온통 물로 가득 채운 듯한 짙푸른 물결 물결들의 일렁임을 처음 보던 순간 마치 고압의 전류가 온몸을 관통하는 듯했던 충격적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내가 바다를 난생처음 보고 놀랐던 시기에 엄청난 첫 경험을 겪은 일이 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안경 너머 펼쳐진 선명한 세상의 모습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사물을 바라볼 때 눈을 찌푸리게 되었고 햇빛살이 너무 강렬하게 느껴져서 사진 찍을 때는 아예 두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학교 자연시간에 배웠던 밤하늘의 떠.. 2023. 10. 30. 한 여름날의 사랑 하늘에 떠오른 구름이 참 아름다왔던 어느 해 여름, 나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대서양 연안 어느 해변가를 찾아갔다. 그해는 여름 내내 무더운 날씨의 연속이라서 많은 피서객들도 북적 댈 줄 알았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모처럼 만에 기회를 잡아 찾아간 날이 하필이면 여름휴가 끝나는 카니발 마지막 날이었다. 바닷가에서 나오는 도로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량들로 가득 메워진 반면에 해변가 쪽으로 가는 도로는 한산하다 못해 무언가 이상한 느낌마저 일게 했다. 바닷가는 예상했던 대로 갈매기와 하얀 파도만 보일 뿐 해수욕하는 사람들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을 만큼 한적했다. 텐트 치고 주변 정리까지 모두 마친 우리 세 사람은 거품이는 파도 속으로 들어갔는데 얼마나 물이 시원하고 상쾌한지 몰랐다. 해수욕을 마치고 .. 2023. 10. 29. 백인 아기 입양 작전 지구촌 많은 나라들 중에서 미국만큼 입양을 많이 하는 나라도 드물 것 같다. 자국의 어린이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생김새와 피부색이 사뭇 다른 타인종 아기나 어린이를 별 망설임 없이 가족의 일원으로맞이하는 그들의 입양 사상은 가문의 혈통을 잇는 요소를 중시하여 이웃에게는 물론이고 입양 당사자에게 까지 입양사실을 감추는 우리네 풍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게다가 어떻게 별로 안 예쁘고 피부색갈도 다르며 심지어 건강상태도 좋지 못 한 아이를 입양 할 수 있는지 아량과 사랑이 부족한 나에게는 좀 처럼 납득이 되지 않아서 혹시 인간의 아기를 애완동물로 착각하는 건 아닌지, 입양한 가족들을 위한 국가의 보조금 탈 목적에서 하나도 아닌 둘, 셋씩이나 입양하는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일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먼서.. 2023. 10. 29. 어머니의 재혼 오늘은 이 여사가 결혼하는 날. 많은 축하객들이 와서 축하해 주었지만 그녀 측에는 오직 아들 내외와친지들, 그리고 몇몇 친구만 왔을 뿐이다. 많은 하객들로 북적대는 신랑 측에 비해 너무 조촐했으나 사실 그 정도만 해도 섭섭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그녀가 남편을 보낸 지 2년도 체 못 채우고 하는 재혼이기 때문이다. 하늘같이 의지하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자 그녀는 땅이 꺼져 드는 슬픔과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평소 금실이 무척 좋았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만 하던 처지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위 암 말기... 길어야 일 년밖에 살 수 없다고 담당 의사는 진단했으나 그녀의 지극 정성 어린 간호와 보살핌 덕분이었는지 남편은 삼 년을 더 지탱하다가 운명했다. 아내의 지극 정성 어린 간호에도.. 2023. 10. 29. 그녀의 남편 그녀는 삼년전부터 한인타운내 작은 아파트에서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든 남편. 결혼 후 십수 년 동안에는 아내와 딸에게 성실한 남편, 멋진 아빠였는데 어느 순간 도박에 빠져들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가더니 급기야는 집을 비롯한 가산 모두를 탕진 한 체 타주로 떠났고 그녀는 생존을 위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처음 취업을 시도한 곳은 봉제 공장이었지만 기본 실력 없이는 일할 수 없어 다시 아는 사람의 소개로 취직된 것이 동포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그런데 쉬워보였던 웨이츄레스 일은 많이 힘들고 고달팠다. 점심, 저녁, 매 식사때마다 한꺼번에 밀려 들어오는 손님들을 발 빠르게 안내하여 식탁 배정하고 주문하는 일도 미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지만 마치 사흘 굶다가 .. 2023. 10. 29. 서울의 밤하늘 사람들 중에는 나이에 비해 조숙한 사람도 있고 좀 더딘 사람이 있는데 나의 경우는 아무래도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나이 이십 초반부터 술이 뭔지를 알았으나 나는 불혹에 접어 들어서야 희미하게 깨우쳤기 때문이다. 무슨 모임이나 연회에서도 남들은 모두 술기운에 거나한데 나 혼자만 똘똘한 정신으로 콜라 잔 들고 잔 부딪치다 보니 술맛 떨구어대는 녀석, 다음부터는 부르면 안 되는 친구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애당초 술 안 받는 체질로 태어나서 소주 딱 한잔만 들이켜도 금방 속이 메스꺼워지다가 구토로 끝장내기가 일쑤였으니 도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언제까지나 본인 개인의 사정, 긴 세월 동안 주도에 통달한 친구들에게 외면당하고 왕따 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가 남들은 하도 마셔대어.. 2023. 10. 20. 이전 1 ···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