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 여사가 결혼하는 날. 많은 축하객들이 와서 축하해 주었지만 그녀 측에는 오직 아들 내외와친지들, 그리고 몇몇 친구만 왔을 뿐이다. 많은 하객들로 북적대는 신랑 측에 비해 너무 조촐했으나 사실 그 정도만 해도 섭섭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그녀가 남편을 보낸 지 2년도 체 못 채우고 하는 재혼이기 때문이다.
하늘같이 의지하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자 그녀는 땅이 꺼져 드는 슬픔과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평소 금실이 무척 좋았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만 하던 처지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위 암 말기... 길어야 일 년밖에 살 수 없다고 담당 의사는 진단했으나 그녀의 지극 정성 어린 간호와 보살핌 덕분이었는지 남편은 삼 년을 더 지탱하다가 운명했다.
아내의 지극 정성 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끝내 운명한 지가 재 작년 말, 그 이듬해 며느리까지 맞은 입장에서 재혼한다는 것은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고 더군다나 삼년상도 치르지 않은 상태였기에 재혼을 생각하기에는 그녀 스스로 생각해도 이른 감이 있었다.
병든 남편 보살피느라 병자나 다름없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여인.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남편의아픔마저 나누었을 만큼 그녀의 사랑은 깊었다. 남편이 기력이 다하여 운명하던 날, 그녀가 얼마나 몸부림치면서 통곡했는지 그와 같은 상황들을 많이 겪어 이제는 무덤덤해진 병원 종사자들마저 눈물을 흘렸다.
남편이 떠난 지 일 년 만에 외아들이 가정을 꾸렸고 이듬해 손녀까지 본 할머니가 되었다. 아들 내외의같이 살자는 제의를 거절하며 혼자 살기를 고집하던 미망인.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이는 건강과 미모의 소유자 이 여사는 여생을 아들 내외 그늘에서 손주들이나 돌보는데 보낼 수는 없다고 결심 했는지 남편 사별 일 년 만에 어두운 상복을 벗었고 헤어스타일을바꿨으며 그동안 삼가던 화장까지 함으로서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했다.
병원과 묘지에서 그렇게 서럽게 통곡하던 이 여사가, 이제는 미망인 할머니가 되어 여생을 외아들 내외그늘에서 살게 될 줄 알았던 불행한 여인의 변신은 그렇지 않아도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화젯거리를 제공해 주었는데 여성들보다 오히려 남성들이 심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간다고 하지만 남편 간 지가 도대체 얼마나 되었다고.....
“저 여자 그때 그 사람 맞아?
”에이 그저 먼저 간 사람만 억울한 거지."
누가 아프고 싶어서 아팠으며 누군들 먼저 가고 싶어서 간 사람들이 어디에 있으련만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은 남편이 앓고 있었을 당시 그녀가 보여주었던 순애보는 완전히 망각한 체 현숙한 미망인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검은색 계통 의상 착용과 사교 및 사회활동 자제와 절제에 어긋나는 삶을산다며 흉 보고 비난했지만 이제 슬픔을 극복하고 새 삶을 시작하려는 미망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그녀의 재혼상대자는 그녀가 처녀였을 때 그녀를 몰래 사모하던 친구의 오빠로서 그 사람 역시 수년전에 부인을 잃은 홀아비였다. 탈모가 반 이상 진행된 머리에 재산도 많지 않은 홀아비의 청혼을 그녀가 받아들인 이유는 단 한 번도 그가 화내는 것을 본 사람이 없을 만큼 높은 인성의 소유자인 데다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재혼을 극력 반대하던 아들의 마음마저 바뀌게 한 그의 진실한 사랑이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앓고 계시는 동안 어머니의 고생과 희생과 아픔을 가슴이 시리도록 보며 살았다. 홀로되신 어머니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는지, 정성과 희생이 어떠했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어린딸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다는 건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잘나지도 못한 저 노인네가 어떻게 어머니의 남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에 어머니 할머니의 위치보다 한 사람의 여자이기를 고수하려는 엄마가 무척이나 야속했고 미웠으며 재혼을원하는 모습이 속되고 심지어 천박하게까지 느껴졌다.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는 이 여사의 마음은 매우 무겁고 착잡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사람, 어쩌면 그녀의 인생 전부였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을 남편은 그러나 이미 고인이었다. 사람들마다, 여성들마다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삶을 손주 뒷바라지로 보내기에는 그녀의 몸과 마음은 너무 젊었던 것이다.
그러다 궂은비 내리던 어느 날 아침, 장 보러 나갔던 이 여사의 자동차는 빗길에 미끄러진 트럭에 받혀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에 입원했고 퇴원하기까지 달 반 동안이나 상반신 전체에 깁스 한 이 여사를 곁에서 간호하고 지켜준 사람은 아들이 아닌 그 남자였다. 자기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그 사람의 지극정성은 결국 굳게 닫혀있던 아들의 마음을 열게 했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저의 어머니께 항상 잘 해 드리세요."
들러리도 없고 화동도 없는 결혼식이 끝나고 조촐한 축하 연회가 시작되었다. 축배의 술잔을 마주치는모자의 눈에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물이 맺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