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이야기

고물 자동차 랩소디

by Seresta 2024. 3. 11.

 

지진 위험지대에 세워진 미국의 남가주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광대한 지역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위성도시들은 바로 그런 위험성 때문에 10층 이상의 고층건물들은 얼마 되지 않지만 (서울특별시안에 세워진 고층 건물들의 일 퍼센트(1%) 정도),  이삼 층짜리 빌라와  단층, 또는 이층 단독주택들이 서울의 면적 605 km2의  140배가 넘는 87940 km2 광대한 지역에 펼쳐져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시설은 또 얼마나 한심한지 우리 가족을 비롯하여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캘리포니아에서 버스나 지하철 타 봤다는 사람은 만난 적도 본적도 없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등교와 하교는 물론이고 동네 마켓 갈 때에도 자동차 사용은 필수 가 되어 운전면허증 취득이 가능한 16세 부터 아주 자연스레 자동차와 동반하는 삶이 시작 된다. 

우리 집 큰애가 열여섯 되던 해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손아래 동서로부터 쓸만한 중고차 한 대가 들어왔다는 전갈을 받고 잔뜩 기대에 찬 아들과 함께 그곳으로 달려갔다.  
 
고등학생 아들은  제 주제도 모르고 새 자동차를 은연중에 원했지만 어림없는 일. 보다 저렴하고 튼튼하며 맵시까지 겸비된  중고차를 찾으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던 차였다. 
 
정비일에 열중하고 있던 동서는 페인트가 광택을 완전히 잃어 군데군데 가뭄 들어 벌집 모양으로 갈라진 이름 모를 낡은 차 앞에 서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아들에게 그 중고차의 장점과 강점을  상세하게 설명해 준 다음 엔진 덮개를 열고 시동을 걸면서 매끄럽게 돌아가는 엔진 소리를 유심히 들어보라고 했다. 이십 몇만 마일 달린 엔진치고는 아주 양호 한 편이라는 것. 
 
자신은 자동차 전문가라서 듣는 것만으로도 엔진상태의 좋고 나쁨을 아는지 모르겠으나  내귀에는 뭔가 신경을 자극하는 듯한 날카로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고물 엔진의 소음이었다. 
 
일금 천 백 불을 주고 구입하기에는 조금 비싸 보이는, 삼십 년 넘게 굴러온 고물 자동차는 지난날의 영광을 말해 주 듯 아직도 아무 탈 없는 자동 기어. 비록 고장 난 상태였지만 큼직한 에어컨까지 달려있었다.

 

 

시운전을 위해 노골적으로 못 마땅해하는 아이와 함께 거리로 나갔다. 차는 그런대로 잘 굴러갔는데 멈추고 출발할 때마다 나는 덜컥거림과  자동변속기의  큰 소음이 귀에 거슬렸지만 그래도  시운전 하기 꺼려하는 아들을 달래어 핸들을 잡게 했더니 뭐 이런 차가 다 있냐는 듯 못마땅해 하는 가색이 역역하다.

시운전을 마치고 돌아오니 사돈댁 내외분의 모습이 보였다.  근처에 일 보러 나오셨다가 마침 우리 부자가 차보러 왔다는 말을 들으시고 한 충고해 주시기 위해 일부러 기다리셨다는 것. 평탄치 못했던 시운전 탓인지 얼굴에 구름 낀 몰골이 된 아들에게 그분들께서 돈벌이도 못하는 학생에게는 이런 차도 과분해. 첫 번째 자동차는 정말 낡은 차, 스스로 고치면서 탈 상태의 '진짜 고물차'가 어울린다고 말씀해 주신 것은 이만한 자동차도 감사히 여기라는 뜻 같았다.
 
차량 상태가 전반적으로 양호하니까 그만 결정하라는 동서의 권유에도,  돈벌이도  못하는 아들의 첫 자동차로는 과한 것 같다는 사돈님 말씀에도 좀처럼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내게 동서는 천백 불에서 무려 삼백 오십 불이나 깎은 칠백오십 불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했지만 (나중에 처제로부터 처음의 가격을 제시했던 차주에게 제 남편이 보태줄 심사였다는 말을 듣고 몹시 민망했음) 일단 생각해 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들에게 물었다.
 
" 그 자동차… 어때?" 
"----"
"너도 들었지? 그 차가 네게는 과분하다고"
 "-----"
"아무 데나 세워놔도 도둑맞을 염려 없어 트럭처럼 튼튼하니  다른차랑 충돌해도 안전하겠다. “
 "----"
"야! 가만히만 있지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봐라!"
"아빠...." 
“왜?" 
"그 고물 자동차 꼭 사야 돼요? 
"이런. 천불 조금 넘는 가격에 이런 차 절대로 못 만나. 
 
운전하면서 힐끗 바라본 아들의 모습은 기쁨이 아닌 슬픔이었다.
"아빠. 자동차를 산다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
 
나는 우리 부자의 결정을 기다리던 동서에게 내일 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데  시운전 내내 아들이 짓고 있는 낙담한 모습. 사지에 갇힌 포로들이나 지을 수 있을 아들 모습에 나도 슬퍼졌다. 
 
마음에는 안 들어도 자녀 교육상 중고차를 생각했는데 아들 반응이 마치 세상의 절반을 잃은 몰골을 하고 있다면 이미 교육의 차원을 넘는 고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시 어느 도로에서도 볼 수 없을 큼직한 똥차 한대가 날마다 동네 길을 굴러다니다 바로 우리 집 앞에 떡하니 주차된 광경을 상상해 보니 나 역시도 우리집 이웃에서 커다란 고물자동차를 끌고 와서 주차하고 왔다리 갔다리 하는  꼴은 도저히 못 볼 것 같아서 결국 동서에게  자동차 구입은 없던 일로 하자는 양해를 구했다. 
 
이튿날 오전  중고차 전문 딜러에 가서 5년 조금 넘은 연도에 비해 주행거리가 많지 않은. 스포츠카를 연상케 하는 날렵한 하얀색 소형차 한 대를 구입하여 세차장에서 세척에다 광택작업을 맡겨놓고 인근 월마트에서 선물용 차량 장식을 위한 연붕홍색 대형 리본까지 구입했다. 
 
그리고 저녁… 말끔해진 차를 집 앞에 살며시 세워놓고는  준비했던 리본과 테이프를 차 위에다 얹혀놓자 아들의 새 자동차는 저녁노을  하늘 황금빛 배경 속에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빠앙~~ 빠앙~~
 
언제나 이맘때면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아들이 생소한 경적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나와 볼 생각을 않는다. 보기만 하여도 가슴이 내려앉는 그 낡은 차 출현이 뭐가 반갑다고. 달려 나오리오? 다시 울린 몇 차례 경적소리에 큰 아들 아닌 막내아들이 나왔다가 자기 형을 마구 불러대었다 
 

 

 

"형!! 빨리 나와 봐 어서! 새 자동차. 새 자동차!" 

 

숨넘어가는 동생 외침에 음식을 씹으며 뛰어나온 차 주인은 기대도 하지 못했던 새 자동차에 놀라 말 한마디 못하고 자동차 주위만 몇 차례씩이나 빙빙 돌더가 내 품에 덥석 안겼다. 

 

가로등 불빛 아래 서있는 자동차 한 대와 부둥켜안고 있는 아빠와 아들. 그리고 그런 우리 부자의 모습을 보고  함성과 박수를 치는 엄마와 딸과 동생 우리 가족 모두는 날 저무는 하늘아래 펼쳐진 풍경화 속 주연들이었다. 

 

2001, 8월  

 

'삶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극히 고마운 삶의 루틴  (1) 2024.03.23
양계장 등불  (1) 2024.03.22
새끼손가락의 아픔  (0) 2024.03.09
꿈이여 다시 한번  (0) 2024.02.25
아들의 실직  (1) 2024.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