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 란 말은 아무리 많은 자녀들이 있다 하여도 그들에 대한 마음은 모두 같다는 의미 일 것. 그런데도 나는 그 말에 전격 동의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피를 나눈 혈육들이라 해도 부모 말 잘 듣는 자녀와 속만 썩여대는 자녀들 사이에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첫 번째 아기에게 쏟았던 관심과 정성의 분량 또한 그 후에 태어난 아이들에 비해 많을 수밖에 없는 까닭에서다
우리 큰 아들이 대학 갔을 때만 해도 그랬다. 유치원 가기 싫다고 징징 울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의젓한 대학생으로 성장한 우리 집 장남. 나는 너무 대견스러운 나머지 아들이 입학할 학교를 답사하면서 그 학교의 역사와 특성까지 시시콜콜 파악했었다.
그랬던 내가 우리 집 둘째, 딸아이가 대학 갈 때는 역사와 특성은 생략하고 학교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만 알아보는 수준으로 그쳤다가, 막내아들의 입학이 다가올 무렵에는 그 학교가 어디쯤 붙어있는지 아예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면 단순한 무관심을 넘는 뚜렷한 차별 행위로 봐야 했다.
지난 주말, 우리 내외는 신입생 모임 참석을 위해 막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큰 애와 둘째 때는 내가 지도를 들고 갔지만 이번만큼은 막내에게 컴퓨터에서 뽑게 하여 출발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처음부터 지도에 적힌 코스를 따라갔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을 그날따라 다른 도시에 잠깐 볼 일이 있어 둘러서 가다 보니 아들이 뽑아 놓은 지도와는 다른 길로 가게 된 것이다.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곧바로 내려가면 간단할 것을 일단, 동쪽으로 가서 , 다시 남쪽 방향으로 돌아서 가려니 긴가 민가 마음 한구석에 작은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 도시의 단 하나밖에 없는 종합대학교인 만큼 무조건 그 도시에만 도착하면 쉽게 찾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샌디에이고 란 도시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고 게다가 막내가 갈 대학은 이름만 샌디에이고 일 뿐 거기서 한참 떨어진 라호야라는 엉뚱한 도시에 위치했던 것.
어디가 어딘지 도저히 알 도리가 없어하는 수 없이 주유소로 들어가 학교의 위치를 물으니 참 안되었다는 표정을 짓던 아줌마 한 분이 엉뚱한 길로 빠졌다며 찾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도착 마감 시간은 이미 십 분이나 지났는데 우리는 3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헤매고 있던 것이다.
시간은 늦어졌는데 갈 길은 멀고 그래서 속이 마구 타오르는 나. 거칠게 차를 몰며 주눅 들어 고개 숙인 막내에게 신경질 내봐도 불타는 가슴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거의 한 시간이나 지체된 후 목적지에 도착했고 아이는 건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주차할 수 없는 도로변에다 잠시 차를 세워놓고 그저 착하고 순하기만 하지 꼼꼼치 못한 막내 녀석을 생각하자니 괘씸한 심정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막내는 어려서부터 마음이 무척 여린 아이였다. 유치원 때부터 싸우는 꼬마 동무들을 열심히 말려주는 평화의 사도 노릇을 곧잘 하여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었을 만큼 착했고 지금까지도 형과 누나가 모두 떠난 텅 빈 집안에 홀로 남아서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는 귀염둥이자 어린 머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로서의 배포가 부족한 것이 나의 불만이었다.
대학에 들어가도 집을 뜨지 않는 한국과는 달리 이곳 아이들의 대학 입학은 졸업 후 독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어떻게 보면 부모 품 안에서 떠나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거리가 가까울 경우 잦으면 두 주에 한번 적어도 몇 달에 한 번씩은 다녀가지만 시일이 지나갈수록 자신들 환경에 익숙해지고 적응되어 간다.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대학원이나 취직할 직장을 찾아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살다가 배우자를 만나 저들의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대학입학은 이미 독립을 의미하는 것.
많이 늦었는데 제대로 찾아 들어갔을까? 아들은 학교에서 하룻밤 자야 하고 우리는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내일 돌아와야 했다. 하룻밤의 이별을 앞두고 막내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겨우 등록을 마치고 일행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며 차 안에 두고 내린 짐을 가지러 오겠으니 차 세운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 아이의 작은 음성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나타난 애를 보려니 눈동자가 눈에 띄게 붉어졌고 눈가의 눈물자국이 번져있는 것을 보아 한바탕 운 듯했다.
"이거야 원! 야 남자 녀석이 울긴 왜 울어?"
"늦어서 못 들어갈까 봐, 그리고 제 잘못으로 아빠만 고생하신 것 같아서..."
"너 그래 가지고 기숙사 생활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니, 용돈은 있냐?"
"엄마가 주셨어요."
"받아라."
받기를 한사코 사양하는 아이에게 쓸데도 없는 지폐 한 장을 쥐어주고 떠나는데 차 백미러의 비친 막내아들의 모습이, 아무도 없는 텅 빈 주차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 모습이 무척 안쓰러워 가슴이 메어져 왔다. 자동차는 학교를 빠져나와 곧바로 고속도로로 진입했는데 가만 보니 아이가 만든 지도대로 딱 맞아떨어지는 게 아닌가? 내가 착각을 한 것을 공연히 아이 탓만 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은 내내 우울했다, 오후 일곱 시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떠있는 태양은 드넓은 바다를 온통 은색의 광채로 변화되는 환상적 광경을 펼치고 있었지만 나의 눈 망막에는 얼마 후 내 곁을 떠날 막내의 모습만 어른거렸다.
공부할 필요가 없던 옛날, 자식 손주들과 함께 대가족을 이루고 살던 그때가 좋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떨어져 살게 되었을까. 울적한 기분 전환을 위해 한국 방송을 틀 자 ’님이 오시는가’라는 우리의 가곡이 흐르고 있었다.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먼 길 님이 오시는가.....”
아름다운 바다와 도로 저편의 평화로운 목가적 풍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조수미 씨의 곱디고운 음률.
나는 나의 새끼손가락도 엄지 못지않은 아픔을 절절히 느끼며 눈물을 떨구었다.
2002.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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