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선배님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친구처럼 느껴지는 나의 좋은 선배 임형은 회갑을 목전에 둔 59세 신사. 불과 반백 년 전까지만 해도 마치 인생을 다 살은 듯 삭신과 기력이 쇠해진 모습으로 인생의 마지막 길을 기다리던 나이였겠지만 지금은 앞으로도 살아갈 날이 무수히 남아있는 예전의 중년인데 그분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이미 머리칼은 절반 이상 세어지고 이마와 목의 주름살도 뚜렷해졌지만 옷차림으로 보나, 청년 못지않은 해맑은 미소로 보나 사십 후반의 나이로밖에 보이지 않아 그분 또래분들로부터 많은 부러움을 받는 처지인데 젊음도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유지되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근력이 왕성하다 보니 이삼십 대 꼬마들과 어울려 축구공도 차고 마라톤 대회에도 여러 번 참가하여 4시간 오십 분대에 완주 한 경력도 있는 그는 2인승 독일제 스포츠카를 구매하는 바람에 친구들로부터 시집간 딸들 보기가 부끄럽지도 않냐는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그는 미소 진 눈으로 지긋한 풍채들을 지닌 제 또래 친구들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청춘시대로 돌아간 듯, 한 이십 년 젊게 살던 그분이 자신의 로맨스 행각으로 일을 내고 만 것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순서일 것, 그 연세에 빨강색 스포츠카 몰고 다닌다는 자체가 점잖은 할아버지의 나아갈 길은 아닌듯싶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아! 딸내미가 시집가 애 낳았다고 나마저 영감처럼 살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나는 그렇게 살기 싫어! “
하기는… 제 인생 제가 잘 알아서 사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보기가 좀 그렇다고 말하는 나 역시 속으론 무척 부러웠던 것이다.
임형 께서 젊은 축구 동호회원들과 함께 어울려 다닌다는 소문이 한바탕 돌고, 다시 어떤 아가씨 같은 젊은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을 직접 봤다는 목격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할 무렵, 바로 그 일로 인해 형수님과 대판 싸웠다는 소식을 염문의 주인공한테서 직접 듣게 되었는데 자신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불륜이 아닌 가벼운 데이트 몇 번 한 것이 전부인데 그걸 가지고 생난리들 친다면서 잔뜩 삐져 있었다.
“음~ 그러니까 플라토닉 감정이 섞인 로맨스였나 보군요”
“그렇지! 바로 그거야.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본 들 벌써 오십 후반이네. 가는 청춘이 아쉬워서 별다른 뜻도 없이 사춘기 식 연애 한번 한 것 가지고 그러는데... 그래서 내가 딴살림을 차렸나? 그렇다고 남의 가정을 망쳤나. 정말 너무들 하네 그래!”
그분의 ‘순수한’ 재 청춘 꿈은 결국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채 사라지고,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적색 찬란한 스포츠카마저 서슬 퍼런 마누라님 손에 낙엽처럼 처분되고 말았다.
때는 바야흐로 사십 대 후반부터 퇴물 취급당하는 장년들의 수난 시대. 완벽한 사회 규범에 벗어난 행동을 했던 임형을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주책없고 철없는 사람이라고 흉봤지만, 나이를 초월하며 살아가던 그분의 모습은 가는 세월에 속절없이 쳐져 가는 우리 모두 선망의 대상이자 우상이었다.
아 ~ 아쉽다 우리의 히어로 임형이여....
그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싶었던 것이다. 절대로 되돌이 킬 수 없는 아름다운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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