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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지극히 고마운 삶의 루틴

by Seresta 2024. 3. 23.

 

 

 

공부하는 학생들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조식 후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점심 먹고 다시 또 공부하다가 집으로 돌아가 숙제와 예습 복습을 마친 후 저녁 식사 후 자유의 시간을 가진 후에 잠자리에 드는 삶이 날마다 반복되는 형태를 일컬어 일상적 반복’ 혹은 ‘틀에 박힌 일상' 뜻의 영어  루틴(routine)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은퇴 후  삶의  기간이 삼 년째 들어서는 나의 하루 일과 역시 매주  매 달 거의 판박이 같이 똑 같이 반복되는 전형적 삶에 루틴 성격을 띠고 있다.

삼 년 전, 동네에서 가장 작은 주택에 속하는 침실 셋 달린 이층 집으로 이사  온 우리 내외는 위층 방 두 개를  하나씩 나누어 쓰고 있었다.  그러다 2년 전부터 타주에 살던 딸과 손녀가 사위가 2년 기한의 해외근무를 핑계로  비좁은 우리 집으로 이주해 왔던 그날부터 난 서재 및 사무실로 쓰던 아래층 방으로 밀려났다.

벽에 붙인 침대  건너편 유리창문 밖의 푸른 울타리 나무들이 보이고 향긋한 꽃냄새가 스며드는  작은 공간. 가끔씩  불어오는 모진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고 몇 번 있었던 작은 지진 정도에는 흔들리는 느낌마저 들지 않는 나만의 쉼터. 소파로도 사용되는 침대와 피씨 모니터가 놓여있는 작은 책상과 의자 하나. 한쪽 벽 전체에 조립된 옷장이 있어 더욱 편리해진 아래층 작은 방은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나의 스위트룸으로 격상되었다.

 


 
은퇴와 더불어 예전의 집에 비해  절반 정도 크기의 집으로 줄여서 이사 나온 지 어느덧 삼 년째. 지금 집 보다 넓었던 이전 집에서는 오히려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못 입고 신을 수 없었던 의복과 신발 같은 소지품들. 
 
역시 쉽게 찾을 수 없어서 필요할 때마다 새롭게 구입해  사용하던 여러 가지 공구들과  각종 의약품들과 음식재료들과 여러 가지 서류들과 별로 쓸 일이 없는 온갖 가정용품들을 망라한 집안  물건들을 내가 쓰는 방을 비롯하여 집안과 차고와 뒷마당 창고 안에  완벽하게 정리하여  필요할 때마다 단 번에 찾을 수 있게 했더니  사는 게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른다.

그래서인가?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는 징표일까?
 
세상 모든 집들이 그렇듯 더울 때 시원하고 추울 때 따뜻한 작은  나의 집 안의  생활이  얼마나 좋고 편 하게 느껴지는지 바깥에 조금만 나가 있어도  쉬고 싶을 때 쉬고, 먹고 눕고 싶을 때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고 누울 수 있는 소박한 나의 집 나 만에 작은 공간이 그리워진다.

 

 

일 년 열두 달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삶에 루틴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려고 떠난 여행지에서  눈과 마음은 무척 즐겁고 행복한데도 내 몸은  집 보다 편 치 못해서 인지  이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언젠가 친구가 입원한 병원에 갔었을 때 나는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병실 복도를 걸어가며 폐쇄된 병실에서 사방이  흰색 벽으로 둘러싸인 침대에 누워  벽 색깔과 같은 하얀색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있는 입원 환자들 모습에 그날이 그날 같이 반복되는 루틴의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아프고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지극히 외롭고 쓸쓸한 양로병원 병실에 ‘갇혀서'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는 고령의 환자분들 모습에서 별 다른 재미도 없이 지루 할 수도 있는 루틴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지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한 달 전에 나와 더불어 삶에 루틴을 공유하는 우리 집사람이  샤워증에 바닥에 미끄러져 대퇴부 뼈에 작은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다. 별로 큰 사고가 아니었는데도 평소 골다공증 증세가 있었기에 입는 타격은 이외로 커서 그때부터  집안에서의  아주 작은 범위의 운신만 하고 있는 형편인데 앞으로 두 달 정도는 그렇게 지낸 이후 다시 세 달 동안의 재활 치료 기간을 더 해야 된다니 가벼운 사고 한 번으로 최소 반년의 제한된 삶을 살게 된 셈이다.
 
그로  인해 2년째 지속해 오던 왕복 7km 아침 산책도 중단됐고 손주들  돌 보는 일, 교회에서의 찬양대 활동마저 못하게 된 본인은 또 얼마나 속상하고 답답할까?
 
사고 당하기 이전 삶에 루틴:  아침에 일어나 산책 다녀오고 화초들 가꿔가며 손주들 돌보고 새롭게 시작 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던 아내의  평범했던 일상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삶인지를 뼈에 사무치도록 깨닫게 되는 요즘.  

 

이 한 생명 끝날 때까지 작고 협소할지라도 늘 편안한 나의 집. 남 들 보기에는 초라할지라도 포근한 이 보금자리에서 지내게 해 달라는 기도가  매 아침마다 되풀이되는 또 하나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Ma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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