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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성조기 휘날리는 우리 집

by Seresta 2024. 3. 23.

 

2년 전에 엘에이 동부 인랜드 지역, 조금 크고 작고 중간치 크기의 집들이 고르게 모여있는 주택 단지로 이사 온 우리 동네에는 평범한 백인들만 사는 줄 알았는데 막상 살면서 보니 중국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웠다.

대략 삼백여 가구의 동네 사람들을 인종별로 대충 나누어 보면 백인이 50% 중국인이 25% 필리핀인 5% 라티노 5% 아프리칸 미국인 5% 인도인 5% 기타 5% 정도로서 이 숫자는 내가 그동안 살면서 대충 추측해 본 치수 일 뿐 정밀한 조사에 의한 공식 통계는 아니다. 

이렇듯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동네라 그런지 공휴일로  정해진 독립기념일 같은 국경일이나 메모리얼데이 같은 기념 주간에 성조기 게양 된 집 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오히려 집 앞마당에다 튼튼한 알루미늄 국기게양대까지 설치하여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낡아서 헤어질 때까지 연중 성조기를 달고 사는 백인 가정집들이 훨씬 많이 보인다

그런 집들 가운데 국기 게양행위를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백인가정의 특권이라고 여기는 자들도 간혹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매일 국기와 더불어 살 수 있을 애국심 때문이리라.

 

 

사실 아무도 달려고 하지 않는 자국의 국기를,  대부분의 현지인들 조차 달지 않는 성조기를 아시안 가정집 게양대에 꼽는 행위는 무언가 어색하고 눈치가 많이 보이는 이유는 우리 집의 주변과 동네 전체를 둘러봐도 국경일, 기념일에 성조기 게양된 집들의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 대한민국 수호를 위하여 이역만리의 작은 나라로 파병되어 순국하신 수만의 젊은 미국 장병들을 생각하면 그런 감정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어 우리가 이사 와서 살게 된 작은집은 일 년에 두 번. 메모리얼데이와 독립기념 주간이 돌아올 때마다 동네에서 가장 먼저 성조기가 게양되는 집이 되었다.

 

 


작년도 메모리얼 데이와 미독립기념일 기간에 막다른 골목길  양편에 위치한 20채 집들 중에서 성조기 게양 된 집은 여전히 우리 집 하나.

 

특히 우리의 현충일 성격을 띤 메모리얼 데이에는 태극기도 나란히 게양해서  오고 가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끌었고 일부러 멈추고 바라보는 이웃에게는 한인들 모두는 한국전 당시 희생당한 수만의 미국 청년들을 추모하는 마음에서  지금 나와 같이 현충일만큼은 일제히 성조기를 계양한다고 말해주었다(전혀 아니지만 아무튼…ㅠㅠ)

 

 

 

육이오 전쟁 당시 수많은 미군 장병들의 희생을 야기시켰던 중공군 후손 중국계 주택들은 달 면목이 없어 그렇다고 쳐도 집안 중에 파병 나갔다가 순직한 미군이 있음 직한 주변의 백인 집들 조차 성조기가 보이지 않는 데는  내가 미처 모르는 이유가 있거나 국가 정책에 대한 불만 탓일 수도 있었기에 자국의 중대한 날에도  국기를 걸지 않는 혹시 나 모르는 이유도 있을지 몰라 구글 검색창에다 “국가 큰 기념일에도 국기 다는 집들이 매우 적은 이유는 뭐니?”라고 문의를 해봤지만 시원한 해답은 없었다. 

작년에 이어 또 한 번 돌아온  메모리얼데이  기간이  막 시작되던  이틀 전 오후 사다리에 올라 성조기를  달고 있는 나를 훔쳐보던 왼편 집의 시공무원 주인과  오른편 집 은퇴 목사님 내외분에게 묵례 인사를 보내자  그들은 환 한 미소로 답례를 대신하고는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던 어제 아침.



좌 우 이웃 양 집의 처마와 벽의 녹슨 게양대에 우리 것 보다 크고 깨끗한 두 개의 성조기가 달려 있었다 

 

그 많은 아시안 국가들 중에서 미군의 희생을 기릴 수 있는 민족은 과거 미군의 적이었던 중공군과 일제군. 그리고 베트콩 계 이민자들이 아닌  오직 과거 한국전과 월남전부터 지금까지 혈맹국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대한민국 이민자뿐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세 개의 성조기가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는 광경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감사와 자부심으로 가득 차올랐다.

202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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