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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일 달러의 가치

by Seresta 2024. 3. 23.

 

요즘  미국에  이민 와서  지금까지 운영해 오던 공장과 창고를 정리하는 중이다. 산업과 유통의 혁신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존의 재래식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도저히 살아남지 못한다는 현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기 때문.
 
남들보다 잘하는 것도 없고  특별나게 열심히 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큰 부족함 없이 잘 살아왔기에 이십여 년 동안 사용해 온 여러 가지 기계들과 부속들을 거의 폐품 수준으로 정리하는 와중에서도 일터를 떠나는 슬픔보다 그동안 우리 가족들의 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는 감사함이 많았다.
 
어제는 공장 한 모퉁이에  쌓여있던 종이 서플라이 일체를 리사이클센터에다  폐지로 넘기려고 미니밴을 끌고 나갔다. 인보이스가 전산화되면서   쓸모가 없어진  열 박스 가량의 인보이스 노트들을 비롯하여    열댓 박스 분량의  각가지 서류들과  인터넷 발달로 말미암아 더 이상 읽지 않는 서적들까지 몽땅 실었더니  얼마나 무거운지 차량의 스프링이 납작해질 정도.
 
실을 때 도움을 주었던 공장 직원에게  감사의 뜻으로 20불을 건네고  가장 가까운 장소로 찾아갔더니 폐지는 취급하지 않는다 하여 다시 종이까지 받아준다는  20마일 거리 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현장에는 이미 오십여 명의 판매자들이  빈 깡통 병과 플라스틱 제품들이  담긴  한두 개의 박스를 앞에 놓고  줄 서 있었지만 나는 야  차량 한가득 싣고 나온 특별 판매자. 

 

담당 직원의  안내에 따라 먼저  큰 저울로 가서 자동차의 무게를  달고난 다음 내용물 하치 장소로 이동했다. 상자가 아닌 일반 폐지 가격은  그곳에서도 최하로 취급되는 파운드 당 겨우 일 센트!!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0,01 가격대의 물품을 거래해본 적이 없어 도대체 얼마나 나올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일단 짐부터 내려야 했기에 짐 내릴 장소를 찾으려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일반 파지는 본인들 스스로가  내려야 한다며 컨테이너와 흡사한 철제 쓰레기 통 위치를 알려주었다. 

 

나는 즉시 미니 벤 안에 가득 실려있는 종이박스들을  꺼내어 철제 박스 안에 처넣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일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허리와 어깨에서 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구슬땀 뻘뻘 흘려가며 간신히 내려놓은 다음,  다시 차량 무게를 재고나서 마치 큰일을 치러낸 양 뿌듯한 심정으로 돈 받는 창구 줄에 섰다.

 

앞의 앞줄의 라티노 아줌마가  십여 달러의 판매금을 받았고 아르메니언으로 추측되는 중년 남성이 역시  십몇 달라의 돈을 쥐고 나간 후 드디어 막대한 량의 물품을 한 차량 가득 싣고 온 나의 차례. 

 

계산 담당하는 라틴계 아가씨가 나의 차량 번호를 확인한 후,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5불짜리 한 장과 25 센트 10센트 5 센트 짜리 은전 세 개를 금액에 어울리지 않는 거창한 계산서에 싸인을 요구한 후 내게 건네는 순간, 나는 머리에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파지가 헐값이라도 그렇지 1080파운드나 되는 종이값이 도무지 $ 5,40??


계산이 잘못된 것 같다는 나의 항변에  말없이 계산서의 1080 lbs X ½ cent = $5,40를 지적해 주는 인상 좋은 아가씨로부터  본래 가격 파운드 당 일 센트의 절반 가격인 파운드 당 영점 오 센트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사기까지 당했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 담당자는 일 센트라고 했는데 어째서 반센트로 내렸나고 따졌더니  일순간  표독스런 표정으로 돌변한 케시어 왈..

“파지의 가격은  항상 변함. 싫으면 다시 싣고 가셔도 됨”
 
어차피 큰돈 바랬던 것은 아니지만 한 짐 잔뜩 실어다 내려놓고도 시가의 절반, 한 끼 식사 값도 못 되는 돈을 들고 나오는 기분은 너무나도 어이없고 허무했다. 

 

몇 달라를 벌기 위해  온종일 폐품을 모으고, 수집품 판매를 위해 줄 서는 사람들이 즐비 한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부자 나라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미국 땅 안에서도 한 끼의 식사값도 못 되는  적은 액수를 얻기 위해  종일 토록 애쓰는 이들의 고통을 잊지 않고자 낮에 받아 넣은 오 달러 사십 샌트를 계산서와 같이 액자에 넣어 컴퓨터 책상 벽에 걸어놓았다.  
 
201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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