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날씨가 제법 추워지기 시작하던 지난겨울 초였다.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일찍 일터에 도착한 나는 차를 세우려고 건물 뒤쪽으로 갔는데 웬 홈리스 한 사람이 문턱에 기대어 잠자고 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곤히 잠든 그를 차마 깨울 수 없어 자동차를 길가에 세우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며 그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지만 어떻게 된 인간인지 해가 중천에 오르도록 일어날 줄 몰랐다.
그대로 놔두면 하루 종일 그러고 있을 것 같아 큰 소리로 불러봤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길래 다시 그의 몸을 흔들어봤지만 노숙자는 꼼짝도 하지 않아 혹시 이미 숨을 거둔 사체가 아닐까 싶어 통나무 굴리듯 굴려봤더니 그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던 노숙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한바탕 욕설을 퍼부운 다음 사라졌다. 그리고 이틀 후....
언제나 깨끗하던 뒷문 앞에는 매 아침마다 한 무더기의 더러운 쓰레기와 인간이 갓 싸놓은 똥 무더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이 일터에 도착하여 커피나 느긋하게 마시고 있어야 할 그 시간에 역겨운 쓰레기와 배설물부터 치워야 했으니 노숙자 한번 잘못 건드린 대가가 그렇게 혹독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그 자가 상당한 수고가 필요할 분량의 쓰레기를 일주일에 세 번 또는 네 번 꼴 정도로 끌어다 놓고 보기만 해도 몸서리치게 하는 형태로 죽어있는 두 마리의 쥐까지 늘어놓았다면 이것은 보복 차원을 넘는 위협행위로 봐야 했다.
약 잔뜩 오른 마음 같아서는 당장 붙잡아 두들겨 주고 싶었지만 요즘은 바야흐로 작은 손찌검 하나에도 고소로 인하여 패가망신까지 이를 수 있는 무서운 세월, 치미는 분노를 삭이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상대는 경찰에 신고해 봤자 별 소용도 없을 신분이기에 조금은 굴욕적인 화해정책을 쓰기로 했다.
퇴근하면서 바나나 한송이와 오렌지 봉지를 문 앞에 놔두고 이튿날 아침에 출근했더니 두고 갔던 과일들이 사라진 대신 매아 침마다 사람 환장케 했던 쓰레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음료수와 과자와 캔디를 놔두었고 그 이튿날 아침 전날 두고 갔던 식품들도, 그리고 쓰레기들도 없이 깨끗한 상태로 있었다.
그리고 사흘 째 되던 토요일 오후 전날과 비슷한 식품과 음료수를 두고 이틀이 지난 월요일 아침에 나와서 보니 이번에는 놓아두었던 그 상태대로 남아있었고 그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에도…
그러다 말없이 사라졌던 그가 보름 전, 거의 반년만에 뭔가 잔뜩 실려있는 수레를 끌며 다시 나타났다.
그동안 어디서 무엇하고 지냈는지 행색이 훤해졌고 구걸하는데 많은 도움을 될 것이 분명한 큼직한 개 한 마리도 데리고 있었다. 그와 나는 서로의 눈을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하고 지나치다가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는데 그가 나타났던 그다음 날 아침, 문 앞에 검은색 운동화 한 켤레가 얌전하게 놓여있었다.
비록 새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신을 만한 운동화가 왜 그곳에 놓여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쉽게 풀렸다. 개를 앞세우고 길 건너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음이다. 그렇게 첫째 날에는 운동화, 둘째 날에는 삼십 년도 넘게 쓴 것으로 보이는 중고 텔레비전, 그리고 그 다음다음 날에는 해변가에서나 사용할 수 있을 울긋불긋한 우산이 들어오더니 어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낡은 나무 걸상 한 개가 놓여있었다.
그가 두고 간 물건들을 모두 쓰레기로 처리하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아- 정말 까무러칠 것 만 같은 이 내 심정. 어떤 복 터진 사람들은 복권까지 당첨된다는데 난 도대체 무슨 죄를 얼마나 많이 지었길래 처치 곤란한 선물 들만 들어오는지….
July.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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