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이야기

만주 벌판의 참게

by Seresta 2024. 3. 26.

 

 

만주에서 거주하다가 해방 후 고국에 돌아온 분으로부터 들었던 실제 이야기 

내게 만주 이야기를 들려주신 그분 집안은  영남 어느 지방 한 곳에서 대대로 거주하던 토박이셨는데 갈수록 격화되던 일제 탄압을 피해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북간도로 이주하신, 그 시절 먹고 살길이 없어 피난민 형태로 만주로 따났던 대부분의 이주자들과는 동기가 다른 일종의  정치적 망명이었다고.

그분의 일가가 정착한  곳이 만주 어느 지역이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없었지만 불모지나 다름 없던 광활한 갈대 벌판을 고향땅 팔아 마련했던 자금으로 아주 헐값에 구입하여 몇해를 걸쳐 흙탕물만 흐르는 인근 강물을 끌어오는 대역사 끝에 벼농사 가능한 수전답으로 바꾸어 벼농사 시작했던 첫 해부터 대풍년 들었을 만큼 기름진 옥토로 만드는 데 성공했단다

 

 

그 광대 한  농장의 땅이 얼마나 기름졌었는지 벼를 심으면  살 오른 쌀 한 톨이 둘러 쌓인 벼 껍질을 툭툭 뚫고 나올까 맘 조렸을 정도로 실 하였고 옥수수 한자루도 얼마나 크고 뚱뚱 했던지 성인 남성 팔뚝 만 하여 아무리 배가 고팠어도 한개 이상 먹을 수 없었을 정도로 땅이 기름진데다  기후마저 알맞다 보니 모든 작물들이 기형적으로 크게 자랐다는 것.

 

 

 

끝이 보이지 않는 광대한 농장. 전답 곳곳에다 수로를 설치하여 홍수나 가뭄의 재해가 전혀 없고 심지어 그 흔한 병충해도 없는 천혜의 농장이었으나  모가 한창 자랄 무렵 논에 기어들어와 깽판 놓는 참게무리와 멧돼지들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은 약점이 있었다는 그분 말씀에 나는 가까스로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과장이 없을 수 없는 지난날의 이야기라 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떨구고 웃는 내 모습에  그분은  불 같이 화를 내시며  밖에 계시던 부인까지 불러들였다.  “이 사람 지금 내가 뻥 치는 줄 아는데 임자가  한 마디  하소” 

 

그러자  즐겁지 못한 표정을 지시던 부인께서 썩 내키지 않는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답하셨다.

"벼 한 톨과 옥수수자루가 그렇게 까지 크지는 않았지만 농사 하나만은  정말 믿기지 않게  잘되었다는 말씀 몇 마디로 남편의 분노를 즉각 잠재우고는 다시  농사에 큰 피해를 입혔다는 참게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셨다.

 

참게들이 창궐하면 논바닥 전체가 부글 부글 끓어오르는 물처럼 온갖 야단 법석들을 다 떨었는데 그 숫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미처 헤아릴수도 없었다고.

 

한섬들이 항아리를 수로 요소 요소에다 묻어 놓고 하룻밤만 지나고 나면 거품 문 게들로 가득 채워질 정도로 많이 잡혔는데 참게로 가득 채워진 항아리에다 펄펄 끓고 있는 간장을  붇고 뚜껑만 닫아놓으면 며칠 후 게 등판 한 개만 있어도 밥 한 공기 후딱 비운다는 천하의 맛 좋은 간장 게장이 되었다고. 

 

 

더욱 놀라운 건 게장으로 변한 게들이 얼마나 흔하고 많았으면 나중에는 몸통들은 그냥 버리고 오직 등판 속에 깔려있는 게의 내장과 알을 긁어 모은 단지가 매년 몇 개씩이나  생산 됐다니 진성 참게장 먹기  쉽지않은 요즘과 같은 세상에선  꿈같은 이야기다.

까마득한 옛날 발해국 시절부터 우리의 조상님들이 거주하셨고 개척하셨다면 비옥한 만주 벌판 또한 독도와 더불어 태고적 부터 한민족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그래서 언젠가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대한나라의 곡간을 가득 채울 우리의 땅이다. 

 

'삶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새 생포 작전  (0) 2024.04.04
서울 별곡  (1) 2024.03.28
멍에 벗은 삶  (1) 2024.03.25
난감 한 선물  (1) 2024.03.24
일 달러의 가치  (0) 2024.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