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달라지는 것들이 적지 않다. 먼저 외모가 변하고 취향도 달라지게 된다. 믈론 사람들 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 식성과 취향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영화만 하더라도 언제부터인가 늘 즐겨보던 액션물 및 SF 공상장르에서 보다 현실적인 드라마 혹은 르포 다큐물로 바뀌어졌고 소문난 맛집 탐방을 위해 장시간 기다리기, 먼 거리 운행마저 마다하지 않아 식도락가라는 말까지 들었던 내가 조금만 방심해도 살이 찌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한 끼 잘 먹고 난 후 불어난 체중 원상복귀를 위해 두, 세끼 절식을 해야 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귀찮아서 그냥 집에서 간단히 때우게 되었다면 노래 또한 다를 리 없다.
유년시절에는 동요를 꽤 잘 불러서 어린이 합창단 입단을 꿈꾸었다가 국내외 가곡 및 애창곡들에 심취되면서 합창단에서 성악가로 바뀌어지더니 변성기를 지나며 언제부터인가 팝송 마니아로 변신되면서 친구들과 록밴드까지 결성했던 나. 하지만 예전에는 듣기 조차 싫었던 트로트 뽕짝 장르를 즐겨 듣게 된 계기는 내가 어릴 적에 고국을 떠나 근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했을 당시 어느 한적한 식당에서 들었던 가요 한곡과 친구들과 어울려 갔던 노래방에서 있었던 해프닝이었다.
나는 엘에이에서 살다가 고국으로 되돌아가 살고 있는 두 친구와 연락이 되어 무려 이십몇 년 만에 재회하는데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예전의 모습들은 쉽게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있었다.
고교 졸업 후 가족들 따라 이민 갔다가 십수 년 만에 들어와서 살고있는 한 친구는 이미 그때부터 나이와 걸맞지 않게 행동거지가 듬직했던 탓으로 본명보다 '영감'이란 별명으로 통했었고 또 다른 친구는 대학생 시절에 인생에 의미를 곱씹어 보겠다며 학업까지 중지하고는 공동묘지로 들어가 이년 남짓 동안 무덤지기 노릇하다가 결국 졸업도 못 한 현대판 철학자였다.
약속했던 시간을 조금 넘겨 도착한 호텔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 하나 같이 새까만 머리에다 엇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의 모습들에 고국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은 나를 놀라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어디에 있을까? 좌우를 살피고 있을 때 웬 두 '영감'들이 저편 구석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앞서 도착한 '묘지기'는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오십 중반의 모습이었고 조금 뒤에 왔다는 '영감'은 옷차림을 보나 행동거지를 보나 환갑을 넘기신 상 영감 같이 보여 도저히 말을 놓을 수 없을 지경. 그래도 옛이야기의 꽃을 피우다 보니 잠시 서먹했던 감정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야 자식 임마 연발하는 예전의 그 관계로 되돌아갔다.
소주가 곁들여진 꽂게 탕으로 저녁을 마친 우리 일행은 거리의 불빛들이 아름다운 신사동 밤거리를 걸었다. 영감이 아무 데나 들어가 술 한 잔 하자고 했지만 그 많은 유흥업소들 중 우리와 같이 나이들은 사람들이 갈 만한 장소는 없는지 한참을 헤매다가 찾아들어간 곳은 어느 노래방이었다.
사람도 별로 없는 이른 밤 찾아든 손님들을 향해 위아래를 훑어보는 여종업원들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헤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 화제라도 날 경우 속절없이 불에 타 죽을 가능성이 가장 많아 보이는 구석진 방을 배정받아 종업원 뒤를 따라가는데 이방 저 방 안에서 젊은 아이들이 불러대는 노랫소리가 매우 시끄러웠다.
좁은 방 안으로 들어간 우리 세 친구는 맥주를 마셔가며 그 시절에 즐겨 부르던 동요 몇 곡을 시작으로 흘러간 가요도 불렀고 완숙해진 연령을 과시라도 하듯 타령과 민요도 부르며 조금씩 흥이 올라갈 무렵 우리는 호출도 안 했는데 여종업원이 들어와 마이크 볼륨을 멋대로 낮추는가 하면, 애꿎은 환풍기를 틀었다 껐다 하는 모양새가 이제는 그만 나가 달라는 뜻처럼 느껴져 몹시 불쾌하였다.
그만큼 노셨으면 이제 슬슬 나가 달라는 무언의 시위 같았는데 그런다고 스스로 기어 나 갈 한국인들이 어디 있으리오? 우리 묘지기의 그 노래만 아니었다면 우리들의 여흥은 업소 측에서 뭐라던 말던 밤새도록 지속되었을 것이 뻔하다.
나와 영감이 마이크를 주고받으며 노래 부를 때에도 눈 게슴츠레 뜨고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날리면서 노래 부르기를 사양하던 묘지기가 두 번째 맥주병을 비우고 난 후 자신의 18번을 들려주겠다며 벌떡 일어나 노래방 기계에도 없는 곡이라며 마이크마저 사양하곤 지그시 감았던 두 눈을 번쩍 뜨는 것과 동시에 엄청나게 큰 목청으로 표효했다.
"간-다~! 간다-아~! 나-는, 간-다아~~~북망~산 천 머얼 다 더니, 거언 너 산이....
장례행렬을 인도하며 수많은 조객들의 눈물을 터트렸다는 선창. 아- 누가 인간 목소리가 작다 했느뇨?
구슬프고 청승맞은 곡소리에 나와 영감 입이 크게 벌어져 갈 때 황급히 뛰어들어온 마담과 여종업원도 할 말들을 잊고 서로를 껴안은 체 벌벌 떨고 있었다.
“이게 다 뭐니 어머머, 이게 뭐야! 영업 초장부터 이 무슨 날벼락이래”
우리는 즉각 먹고 마셨던 안주와 술 일체를 서비스 받는 조건으로 그곳에서 쫓겨 나왔다.
한참 무르익어가던 우리들의 여흥은 산산조각 나 버렸고 흥겨웠던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되었으며 기고만장하던 우리들의 기상과 자존심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패잔병 같은 몰골이 된 우리 일행은 길가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얌전한 자세로 뜨거운 국수를 먹던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고, 웃음은 금방 폭소로 이어졌다. 눈물이 날 정도로 웃어대던 우리는 문득 현실로 돌아오며 다시 서글퍼졌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고국의 밤거리, 불빛 호화찬란하던 서울의 밤거리는 결코 중년들의 것은 아닌 듯했다.
199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