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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노인의 수호천사 혹독한 추위가 기승을 부려대던 1951년도 한반도 겨울.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국군 측이 승승장구하던 전쟁은 예상치 못했던 대규모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토통일을 눈앞에 두고 아쉬운 후퇴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또 무슨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최 전방 어느 격전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정상사와 그의 동료들은 뼛속까지 스며 들어오는 추위를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 막사 내 피어놓은 난로 주위에서 차가워진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러다 소변이 급했던 정상사가 막사 밖 언덕 아래쪽에 막 도착하던 그 순간, 갑자기 엄청난 섬광이 동반된 폭음과 더불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막사와 그 안에 있던 모든 동료들 모두 산화되고 말았다. 밖에 나갔던 덕분으로 기적과 같이 목숨을 건진 정상사는 곧 다른 부대로 편.. 2024. 3. 21.
고물 자동차 랩소디 지진 위험지대에 세워진 미국의 남가주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광대한 지역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위성도시들은 바로 그런 위험성 때문에 10층 이상의 고층건물들은 얼마 되지 않지만 (서울특별시안에 세워진 고층 건물들의 일 퍼센트(1%) 정도), 이삼 층짜리 빌라와 단층, 또는 이층 단독주택들이 서울의 면적 605 km2의 140배가 넘는 87940 km2 광대한 지역에 펼쳐져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시설은 또 얼마나 한심한지 우리 가족을 비롯하여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캘리포니아에서 버스나 지하철 타 봤다는 사람은 만난 적도 본적도 없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등교와 하교는 물론이고 동네 마켓 갈 때에도 자동차 사용은 필수 가 되어 운전면허증 취득이 가능한 16세 부.. 2024. 3. 11.
새끼손가락의 아픔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 란 말은 아무리 많은 자녀들이 있다 하여도 그들에 대한 마음은 모두 같다는 의미 일 것. 그런데도 나는 그 말에 전격 동의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피를 나눈 혈육들이라 해도 부모 말 잘 듣는 자녀와 속만 썩여대는 자녀들 사이에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첫 번째 아기에게 쏟았던 관심과 정성의 분량 또한 그 후에 태어난 아이들에 비해 많을 수밖에 없는 까닭에서다 우리 큰 아들이 대학 갔을 때만 해도 그랬다. 유치원 가기 싫다고 징징 울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의젓한 대학생으로 성장한 우리 집 장남. 나는 너무 대견스러운 나머지 아들이 입학할 학교를 답사하면서 그 학교의 역사와 특성까지 시시콜콜 파악했었다. 그랬던 내가 우리 집 둘째, 딸아이가 대학 갈 .. 2024. 3. 9.
사이비 왕궁의 멸망 사람들은 꿈에 대하여 잠재의식의 표출,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미리 알려주는 계시라고 말한다. 평소에 꿈을 대수롭지 여기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처음 이사 간 집에서의 첫날밤의 꿈, 행운을 부른다고 알려진 돼지나 용에 관한 꿈만큼은 믿거나 믿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나는 어릴 적부터 별다른 의미가 없는 개꿈들을 꾸었는데 가끔 시리즈나 연재 형태로 꾸기도 했다. 가장 많이 꾸었던 꿈은 전깃줄 없어도 불 들어오는 전구알을 손에 들고 쏘다니는 내용이었고, 사춘기가 되어서는 커다란 소금자루를 등에 지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는 꿈도 자주 꾸었는데 꿈속의 괴로움이 현실의 괴로움과 똑같았던 그런 꿈은 언제나 내 몸 상태가 나빴을 때 나타나곤 했다. 내가 꾸었던 꿈 중에서 가장 기묘했던 사례는 날 저무는 낯선 도시에서 .. 2024. 3. 3.
은광마을의 달 밝은 밤 지금은 폐광이 되어서 얼마 되지 않는 작고 허름한 목조 건축물만 남아있어 유령마을로 더 많이 알려진 캘리코 은광촌은 로스앤젤레스에서 I-15 고속도로 남쪽 방향으로 대략 200km, 차량으로 두 시간 운행거리에 위치한 까닭에 주로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관광객들과 관광버스들이 휴식 삼아 잠깐 둘렀다 가는, 그래서 잠시 둘러도 좋지만 그냥 지나쳐도 별로 섭섭지 않은 준 관광지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아주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캘리코 광산은 서부 개척이 한창 진행 중이던 1881년을 기점으로 년간 1,200만 불 규모의 은 발굴량으로 엄청 큰 마을로 반짝 성장했다가 십 수년 지난 1896년, 은 가격 대폭락으로 한 시절 동네 개들마저 달러를 물고 다닌다고 소문났던 켈리코 은광촌은 급격한 쇠락의 길을 들어서.. 2024. 2. 28.
꿈이여 다시 한번 인생의 선배님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친구처럼 느껴지는 나의 좋은 선배 임형은 회갑을 목전에 둔 59세 신사. 불과 반백 년 전까지만 해도 마치 인생을 다 살은 듯 삭신과 기력이 쇠해진 모습으로 인생의 마지막 길을 기다리던 나이였겠지만 지금은 앞으로도 살아갈 날이 무수히 남아있는 예전의 중년인데 그분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이미 머리칼은 절반 이상 세어지고 이마와 목의 주름살도 뚜렷해졌지만 옷차림으로 보나, 청년 못지않은 해맑은 미소로 보나 사십 후반의 나이로밖에 보이지 않아 그분 또래분들로부터 많은 부러움을 받는 처지인데 젊음도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유지되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근력이 왕성하다 보니 이삼십 대 꼬마들과 어울려 축구공도 차고 마라톤 대회에도 여러 번 참가.. 2024. 2. 25.
반갑지 못한 해후 교통이 발달된 사회에서 살다 보면 한해에도 몇 번씩 장거리 여행을 하게 된다. 주로 사업상의 이유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휴가와 휴일을 이용한 관광과 휴식의 목적으로 여행할 때도 많다. 일단 집 떠날 마음을 굳히게 되면 교통수단부터 모색하게 되는데 비행기로 날아가야 하는 장거리 여행을 제외하고는 예전에는 버스와 기차 같은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했지만 요즘과 같이 자가용이 보편화된 시절에는 승용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비행기를 이용하기에는 짧은 거리이고 , 자동차를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되는 어중간한 거리가 여행의 목적지라면 아무래도 각 개인들의 사정과 기호의 따라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언뜻 생각하면 그래도 잠깐 타고 가면 되는 항공편을 이용하는 층들이 많을 것 같지만 이외로 온종일 달려야 하.. 2024. 2. 23.
뱃고동 갈매기 울음소리 지금과 같이 승용차와 항공기가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의 기차는 비록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따르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가장 저렴하면서도 먼 거리 운행이 가능했던 기차였고 육지와 크고 작은 섬들. 항구와 항구를 연결하는 소형 선박들이 그 시절 바닷가 주민들의 유일했던 교통수단이었다면 해외 여행자들은 무엇을 타고 바다 건너 먼 타국으로 갈 수 있었을까? 21세기가 한참 진행 중인 요즘 세상에는 국내 제주도엘 가나 해외 어느 나라를 가나 오직 항공기뿐이지만 나라 밖으로 나가는 일이 대단히 까다롭던 시절 중남미를 향 해 떠나는 이민자들의 유일했던 운반수단은 이른바 이민선이라고 불리던 대형선박이었다. 이민선이 정박 된 부산항 부두에는 떠나는 이들과 환송하는 이들로 가득 매워졌고 간판에 오른 선객들과 부둣가 송별객들 사.. 2024. 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