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추위가 기승을 부려대던 1951년도 한반도 겨울.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국군 측이 승승장구하던 전쟁은 예상치 못했던 대규모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토통일을 눈앞에 두고 아쉬운 후퇴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또 무슨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최 전방 어느 격전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정상사와 그의 동료들은 뼛속까지 스며 들어오는 추위를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 막사 내 피어놓은 난로 주위에서 차가워진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러다 소변이 급했던 정상사가 막사 밖 언덕 아래쪽에 막 도착하던 그 순간, 갑자기 엄청난 섬광이 동반된 폭음과 더불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막사와 그 안에 있던 모든 동료들 모두 산화되고 말았다.
밖에 나갔던 덕분으로 기적과 같이 목숨을 건진 정상사는 곧 다른 부대로 편입되어 또 다른 백병전까지 동반되었던 중공군과 에 치열한 전투에 참가했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제 멋대로 쌓여 있는 어물전의 생선들 모양 전사한 동료들 틈 속에서 정신을 잃고 포개져 있다가 깨어난 정상사의 귓가에는 쓰러진 군군들을 확인사살하는 중공군들의 인기척들만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동료들의 찢긴 몸과 자신이 입은 상처에서 흘러내린 선혈로 뒤집어쓴 그의 몰골은 누가 보더라도 참혹한 주검처럼 보였으리라.
전투의 승자였던 중공군은 끝없이 널려있는 시신들을 뒤로 남긴 체 다시 남하했고, 그는 반나절 이상 쓰러져있다가 후방에서 나타난 부대원들에게 구사일생으로 구출되어 군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사단 병력이 투입되었던 그 전투에서 생존한 사람은 오직 정상사와 동료 십여 명. 수천의 사망자를 남긴 전투 현장에서 생존의 신화를 기록한 정 상사는 상당히 명이 긴 사람이었다.
막사를 강타하는 직격탄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 사람.
사단 병력이 전멸한 참혹한 전투에서 거뜬히 생존한 인간 불사조.
그러나 그의 끈질긴 생명 스토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총상을 치료하고 제대 한 정 상사는 어린 두 아이를 업고 이끌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그의 아내를 찾아갔다.
남편의 와전된 전사 소식에도 눈물 한 번 훔치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어야 할 만큼 절박했던 아내가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이 펄펄 살아 돌아왔으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왔을까? 참혹했던 전쟁이 끝나고 이십 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어느 날의 풍경. 시골에서 조그만 수박농장을 운영하는 정선생 댁에 찾아온 보험회사 직원은 아까부터 무언가를 애절하게 조르고 있다.
“아저씨! 우리 회사 덕을 그만큼 보셨으면 당연히 재계약하셔야지 이제 운전 잘 하신다고 이렇게 해약하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이제 지긋한 풍채를 지닌 노인으로 변모한 정선생은 꼭 일 년 전에 수박 운송을 위해 일 톤짜리 화물차량을 구입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백 프로 완전 보상을 해주는 고 가격의 보험에 가입했었다. 판매원 권고에 따라 필요 이상의 고가격대 자동차 보헙을 들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득을 보게 된 것.
자신의 수확한 수박과 이웃 농부들이 생산한 각종 채소들을 손수 운송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무려 두 번의 강한 측면 충돌과 한 번의 후면 충돌을 일으키며 적지 않은 금액을 그의 보험회사로 하여금 지불케 했는데 그때마다 자신의 화물차는 완전히 파손됐지만 운전하던 자신의 몸만큼은 언제나 멀쩡하여 조사 나온 보험 관계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했었다.
그런데 보험가입 시효만기가 다가옴에 따라 정선생은 아주 작은 규모의 보험으로 바꾸려고 했지 이전과 같은 고액의 보험을 들려고 하지 않았다.
일반 운전자들은 도저히 경험할 수 없을 별의별 사고들을 두루 섭력하면서 운전의 묘를 완전히 깨우쳤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온갖 애원과 협박으로 정선생의 보험 유지를 요구하는 보험사원 요구를 이길 수 없어 보험 연장을 승낙하고 말았는데 정확히 보험사 강권에 어쩔 수 없이 재 가입하고 사흘 후....
갓 길에서 홀연히 나타난 자전거를 피하다가 그만 길가 옆 큰 바위를 들이받으면서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다 와장창 전복되는 대형사고가 일으켰는데 이때도 가벼운 타박상만 입은 아주 멀쩡한 몸을 과시하여 동네 사람들의 찬탄을, 보험회사로 하여금 땅을 치게 했다는 후문이다.
허.... 저 영감님 적어도 백오십 살쯤은 무난하게 사실 양반이지" 정선생이 저지른 또 한 번의 대형사고소식을 전해 들었던 동네 사람들이 내쉬었던 탄식 같은 감탄이었다.
남들은 단 한 번만으로도 생사가 불투명할 그런 대형사고들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일으키면서도 별 탈 없는 정 선생의 기이한 생존능력을 운이 좋거나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 신기하고 이상했다.
그렇게 다시 몇 해가 흘러간 어느 날 오후. 정선생 댁 수박밭에서 김매기에 열중하고 계신 내외분 곁에서 빨간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깡충깡충 뛰노는 모습이 갈 건너 오이 밭에서 덩쿨 올리시던 우리 어머님 시야에 포착됐다.
노 부부가 저 편으로 가면 그쪽으로 뛰어가고, 이쪽으로 오면 같은 방향으로 나비처럼 춤추며 오는 귀여운 소녀. 평소 정선생 댁에 손녀가 있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으신 적 없는 어머니는 그날 저녁 정영 감 댁에 마실가셨을때 당신들 곁에서 재롱떨고 놀던 여자아이가 누구냐고 물으셨단다.
“오늘 낮 김 매실때 곁에서 뛰놀던 계집아이는 누구요? 못 보던 애 같던데… “웬 아이?" 별 걸 다 물어본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정선생 내외분 답변에 무엇에 홀린 것 같으셨다며 몇 번씩이나 되뇌시던 우리 어머니. 지금까지도 내가 그때의 사건을 물어볼 적마다 어머님은 당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셨던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재확인해 주신다.
정선생님 내외분은 독실한 가톨릭 신도분들이셨다. 전쟁을 피해 이북에서 남으로 내려오시다가 나라를 위해 자기 한 몸 바치겠다며 눈물로 애원하던 아내의 만류마저 뿌리치고 전장에 나갈 정도로 용감하섰던 분. 한평생 타인들에게 친절하던 정선생께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탈 없이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은 혹시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수호천사의 보살핌 덕분은 아니었을까?
올해 아흔둘 되신 정노인 님. 지금도 여전히 높으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손수 자동차 몰고 다니시고, 담장 수리도 본인께서 직접 하시다고.
2002년 5월
[[ 수호천사(守護天使, 라틴어: custos angelus)
개개인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천사이다. 수호천사의 개념과 그들의 계층은 5세기경 프세우도 디오니시우스에 의해 기독교에서 크게 발달하였다.
수호 천사에 대한 신학은 400년 이래 수많은 보완을 겪었으며, 사람마다 하느님이 지정해 준 수호 천사들이 지켜주고 그들의 기도를 하느님에게 전해준다는 것이 오늘날 동방과 서방 두 교회의 정통 믿음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서는 10월 2일을 수호 천사의 기념일로 제정하여 천사 공경을 권장하고 있다.
(출처 Wikiped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