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뮤직 스토리

비오는 거리

by Seresta 2024. 5. 11.


며칠 전부터 강한 바람이 불어대더니 비가 올라고 그랬나 봅니다. 긴 여름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남가주 일대에  다운 비가 오는 게 과연  몇 달 만이던가?  
몇 시간 주룩주룩 내리 붇던 비는 잠시 멎었지만 하늘 전체가 잔뜩 흐려있는 것을 보아 오늘은 종일토록 비 내릴 기세입니다.

 

거리에는 많은 자동차들이 제 집을  찾아 물보라를 피우며 달려가고, 보도 한 편에는 우산 쓴 라티노 여인이 조심스레 몰고 가는 세 아이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이 정겨운데 건너편 버스정류장에는 한국 할아버지 할머니로 추측되는 두 내외분께서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시고, 근래 들어와서 자주 보이는 누렁개 한 마리가 걸어가는.. 주둥이 언저리의 희끗한 점들만 빼면 진돗개와 흡사한 바두기.

 

타인종 행인들에게는 두 귀와 꼬리를 바짝 세우며 경계하다가도 유독 동양계 행인에게만 눈가에 힘을 빼고 꼬리까지 흔드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한인 집에 살다 나온 개 같군요

 

잠 은 어느 지붕 아래서 해결하는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면 꽤나 부지런한 개입니다. 길 건널 때도 횡단도로 앞에서 신호등 바뀔 때까지 차분히  앉아있다가  인간들 틈에 끼어 횡단하는 노련함도 보이는  여늬 개들처럼 전신주나 나무 밑동에다 한쪽 다리를 치켜들고 방료 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인적이 없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길바닥에서 태어나 자란 미천한 개가 아닌 여염집 반려견 출신이  분명합니다.

 

 한 동안 어느 검둥개와 어울려 다니기도 했지만 요즘은  다시  혼자 다닙니다.  모름지기 동무개와 삶의 방식 차이 때문에 헤어지지 않았으면 부랑개  단속차량에 검거되어 보호소로 실려갔겠지요.


나는 처음 그 개를 봤을 당시 어떤 관록마저 엿보이는 개의 주인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한 울타리 안에 살던 가족의 일원이었고 기본자세만 봐도 주인 눈 밖에 날 행위는 삼가였을 반려동물을 지붕도 보금자리도 없는 길거리에서 떠돌도록 방치하였는지. 

 

하지만 나의 그런 생각은 며칠 전에  누렁이가 보여주었던 일련의 행동을 본 다음부터  바깥세상 동경심에 의한 자발적 가출로 변경됐어요 
 
어느 날 아침 커피점에서 나오다가 녀석과 마주쳤고 그날따라 몰골이 몹시 안 돼 보여  들고 있던 도나스를 건네자 냉큼 받아먹었으나 그 이상의 행동; 입양을 바라는 마음에서 꼬리를 흔들며 애타게 바라본다거나 제 머리 쓸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넙죽 엎드리는 행동도 하지 않고 마치 무슨 볼 일이라도 있는 양 신호등 쪽으로 바삐 걸어갔으니 말입니다.
 
가출의 원인이 무엇이 되던 매서운 추위도 없고, 고기를 탐내며 덤벼드는 견육 매매단도 없을뿐더러 재미 삼아 돌던지는 개구쟁이들도 없는 엘에이기에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겠습니다만  도시마다 떠돌이 개들을  체포해 가는 공공기관이 있다는 말도 들었고, 특히 민폐가 심한 불량 개들은 신고만 하면 즉각 달려와서 잡아간다니 아무리 밖에서의 삶이 좋다 한 들 끼니 거를 일 없고 비에 젖어 추위에 떨 염려 없는  따뜻한 집 반려견의 삶보다는 못하겠지요.

 

그런데 이와 같은 나의 생각이란 집 나온 개의 본심을 몰라서 나온 노파심에 지나지 않을 것이 개 팔자가 상 팔자라고  온 거리를 제 집 마당 삼아 활보하는 누렁 바둑이는  오히려 일 년 열두 달, 집과 사무실에만 갇혀 사는 내 팔자를 딱하게 여길지도 모르니까요.

 

'뮤직 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강남  (0) 2024.05.07
살아 돌아온 바나나  (0) 2024.04.23
산장의 사내  (0) 2024.04.14
메기 & 메아리  (0) 2024.04.01
고향의 푸른 이끼  (1) 2024.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