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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스토리

고향의 푸른 이끼

by Seresta 2024. 3. 28.

 

 

대부분의 우리 집 이웃들은 한 두 종류의 애완동물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주로 개와 고양이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간혹 가다 토끼나 앵무새를 키우는 집들도 있어요.

이태전에는 몇 집 건너 집에서 공작새 두 마리를 떡 하니 들여놓았다가 생김새와는 달리 몹시 시끄러운 울음소리로 인해 그만 공작들이 동네에서 쫓겨나는 불상사도 있었죠.

 
이렇듯, 집집마다 애완동물을 키우다 보니  우리 집 아이들도 어디서 귀여운 개나 한 마리 얻어다 키워보자고 졸라대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겪어야 할 슬픈 이별이 싫어 동물 키우기를 단호히 거부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산책 다녀오신 어머니께서  동행하셨던 이웃 할머니들로부터 물고기가 지진예측 할 줄 안다는 정보를  들었다며 우리도 어항 들여놓자고 강력 요구하시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키우기 쉽다고 알려진 아프리카산 물고기 몇 마리를 사 왔습니다.

 

 

꼬랑지 부분이 무척 예쁜 작은 물고기들이 매 아침마다 모이 떨구어주시는 어머니를 향해  아양 떠는 모습에 진작에 물고기 키우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래려 주변 사람들에게 애완붕어의 장점을 설파했습니다.
 
“무언가 마음이 답답하면 붕어나 한번 키워보게.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게 아주 살 맛이 난다니까.  이왕이면 번식 잘하고 키우기 쉬운 아프리카 산 물고기가 좋아."

 

이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물고기 키워 보기를 권면하던 얼마 전까지의 내 모습은 누가 언급했다는 물고기 전도사, 바로 그 모습이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어항 한 개에다 물고기 세 마리로 시작되었던 우리 집의 물고기 키우기는 수놈용 어항 두 개와 암놈용 어항 한 개 도합 세 개의 어항과 열다섯 마리의 물고기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이렇게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게 된 이유는 수놈일 경우 서로 맹렬히 물어뜯는 특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물고기 들여다보는 재미에 빠져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다 보니 어느덧 이른 겨울이 되어 방안에 온도마저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절약과 근검의 본을 주시는 울 어머니는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 켜는 것을 반대하시고 집안이 썰렁해지는 겨울날에도 하루 종일 틀어봐야 얼마 나오지도 않는 가스 경비를 아끼시느라 히터도 못 틀게 하시니  그저 어항 속 물고기들만 안 됐지요.
사시사철 적당한 온도의 물속에서 살던 놈들이 졸지에 차가운 물속에서 갇혀 사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그러던 오늘 아침 모이도 먹지 않고 발발 헤엄치던 짓도 더 이상 하지 않고 그저 어항 바닥 속에 너부러져 있는 꼴을 보고 일 나갔다가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온 내게 어머님께서 이르시기를... "
내 잘 못 으로 그만 모조리 죽이고 말았구나” 

 

물고기들이 몹시 추위를 타는 것 같아서 어항에다 뜨거운 수돗물을 ‘조금’(조금이 아니라 꽤 많았던 것으로 추정됨) 부어 넣었더니 몽땅 죽어버렸다는... 

 


 
소싯적에 사랑하는 개가 차에 치어 죽은 그날 이후부터, 그러나 한참 지나 큰 마음먹고 키우던 토끼가 사랑하는 아들 손가락을 깨무는 바람에 다시는 애완동물 따위는 키우지 않겠노라고 작심했었는데 주위 환경에 속아 물고기에게 정 부치고  살다가 또  험한 꼴을 보고 말았네요.
 
이제는 누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절대로 애완동물은 키우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잘 보살펴준다고 해도 언젠가는 이별해야 하는 동물. 가뜩이나 이별이 흔한 우리네 삶 속에서 동물에게 까지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뜨거운 물 세례를 받고 죽어간 우리 집 물고기들... 어쩌면
따뜻한 고향 강물 속의푸르고 푸른 이끼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green green moss of home         Feb.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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