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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스토리

산장의 사내

by Seresta 2024. 4. 14.

 

몇 해 전에 아내를 잃어 홀아비 신세가 된 그 사람은 슬하에 아들 둘 두고 있는 중년 사내이다.  사람이 유순하거나 차분하여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오죽 좋으련만 지나치다 싶은 그의 독선적 성격 탓으로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나 친구가 없어 그래도 그를 아껴주는 주변인들의 마음을 심란케 하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은  남들도 다 좋아할 것이라는그의 확고한 믿음은 언젠가 위암 수술받고 갓 퇴원한 친구 집으로 문병 가면서 사들고 갔던 선물 내용에서 극명하게 나타낸다. 

 

수술 회복기간 동안 맹탕 같은 국물, 별 반찬 없는 밥만 먹는 친구가 안돼보여서  평소 그가  가장 좋아하여 자주 먹는, 느끼한 속을 화끈하게 풀어주는  너구리 라면 한 박스였던 것. 
 
한국 성인 여성의 평균 신장보다 작은 키에 어깨만 잔뜩 넓은 그의 신체적 자랑거리는 학생 시절에 배운 권투 덕분으로 군살이  볼록볼록 붙어있는  오른편 주먹이었다.

그래서인지 누구를 만날 때마다하지 자신의 단련된 오른편 주먹 위를 왼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상대방의 어깨너비와 손등을 주시하는  버릇이 있었고 나를 처음 만났을 때도 작고 빈약한 나의 양손을 주시하며 의미 모를 미소까지 지었던 별 난 위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가을, 그와 내가 가입한  동호회에서 주최하는 산악 야유회에서 나는 그 사람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그날 참석했던 이십여 커플 중에 홀로 참석한 사람은 그 사람 하나뿐이었으니 아무리 단단한 주먹을 가진 소유자였어도  널따란 그의 어깨는 가련해 보일 만큼 처져있었다.

 

 

거친 성격 탓으로 친구 하나 없는 사내. 그나마 자신을 이해해 주며 챙겨주던 아내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뜨고 두 아들마저 타주로  독립해 나간 뒤부터  그의 독불장군 행각은 더욱 심화되었노라며 그를 잘 안다는 누군가가 귀띔해 주었다.

가을 나뭇잎들이  샛노랗게 물들여진 호젓한 호숫가 산장에서  소박한 축제가  시작되었다. 챙 달린 헝겊모자를 쓰고 기타를 뜯는 여인과  온몸을 흔들면서 팝송을 부르는 남성.  

까만 점 하나 없이 노랗게 물들여진 이파리를 손에 들고 고엽에 관 한 시를 읊는  여성.  

이마에 하얀 띠를 두르고 인생무상을  무반주 창으로 노래하는 반 백발의  여인. 

 

 

모두가 한가닥 하는 솜씨들로 인하여 축제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어 갈 때   서편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 사람. 거칠고 무례한 언행을 마다 않는 사내가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섰을까?

그가  주위를 한 번 돌아본 후 앞으로 나가 섰을 때  한 것 달아올랐던 산장은  즉각 이전의 고요한 적막한 광야로 급변하였다. 


꽤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가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내의 관 한 이야기를 몇 마디 하다 말고 옛 가요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이외로 너무 잘 불러서 남들이 무엇을 하던 구석에 앉아 딴청 피우던 몇몇 사람들마저 그를 바라보았다.
 
열띤 호응 속에서 자신감을 얻은 한 남자의 처연한 노래. 어쩌면 쓸쓸한 산장의 분위기와  그렇게 어울려지는지  듣는 이들 모두가 애써 망각 속으로 보냈던 지난날의 애상들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그의 열창은 어느 순간 낮은 흐느낌으로 바뀌어지더니 끝내 박수 소리 하나 없이 종료되고 말았다. 이름 모를 몇몇 물새들이 나는 고요한 산장에 고개 숙이고 서있는 사내에게 어떤 이는 어깨를 다독여 주었고  손수건을 꺼내 들고 나온 여인은 그의 두툼한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하지만 평소 무례한 행동으로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던 나. 쇠망치로 그의 돌주먹을 부수는 끔찍한 상상마저 했었기에  너무 했었다는 속죄의 마음만 보냈을지언정 나가서  위로해 줄 만한 용기와 의욕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들 덕분인지.

아니면  노래 부르다 말고 흐느껴 울어 동정심 유발 한 덕분인지  한 여인과 인연을 맺어 행복한 삶을 구가하게 된 한 사내의 스토리를 두고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면 무리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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