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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스토리

그리운 강남

by Seresta 2024. 5. 7.

 

 

황해도 출신이신 우리 어머님이 아시는 대중가요는 정말 몇 곡 되지 않던 것으로 기억난다. 일제 감점 기와 육이오 전쟁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오남 이녀, 칠 남매를 낳으시고 그나마 부르실 줄 아는  가요는  명절 가족들 모임에서 부르시던   [그리운 강남]이라는 옛날 가요 한곡 일 뿐, 그나마 다른 가요를 알게 되신 것은  훗날 티브이와 비디오에서 방영되고 재생되는 가요 프로 덕분이었다. 
 
나는  우리 어머니 외, 다른 이들이  그리운 강남 부르는  광경을 본 적이 없고  라디오나 티브이 그 어느 방송 매체에서도 들었던 기억도 없어 혹시 어머님께서 스스로 작사 작곡하신 노래는 아닐까 라는 의문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또 흘러 인터넷  온라인 세상이 펼쳐지고 세상 모든 지식과 정보들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는  구글 검색엔진과 유튜브가 일상화되면서 집안에 백과사전이 모두 사라졌을 즈음 다른 사람이 부르는 그리운 강남을 처음 들을 수 있었고 1928년 일제강점기 때  김석송 작사  안기영 작곡,  노래 기생 출신 가수 왕수복이라는  가요에 얽힌 사연도 알게 되었다. 

 

칼날 추위가 지속되는 음력 정월,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입춘이 지나 이월마저 다 지나가면 어느새 봄기운이 돌기 시작되는 춘삼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때면 겨우내 얼어있던 나무에 움을 트게 하는 봄을 기다리고 그리는 내용이 담긴 노래. 
 
우리 민족 고유의 따뜻한 정과 향수가 깃들인 가사와 함께 아름다운 곡조,  아리랑 리듬과 닮은 정겨운 박자로 인해 노래가 널리 알려지면서 나라 잃은 민족의 주권 회복 염원이 담긴 노래라 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기도 했지만 해방 후 출판 됐던 '임시 중등음악교본'이라는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더욱 널리 퍼졌다.
 
그러다 해방 직후 이 곡의 작곡자가 월북하여 금지곡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구전민요처럼  조금씩 불려지다가 1988년에  월북 문인과 예술인 작품에 대한 금지 조치가 공식적으로 해제되면서 재 탄생 되었으나 시대와 동떨어진 가락과 무언가 촌스런 느낌의 가사 탓인지 이제는 아무도 부르지 않고 방송에서도 거의 나오지 않는 역사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아이러닉 하게도 대중음악에 대한 검열이 심한 이북에서는 단 한 번이라도 금지된 적이 없었고 지금 까지도 이북과 연변 같은 중국 내 조선족 자치 지구에서는 여전히 애창되고 있다는데 가만 북녘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리운 강남이 북조선의 금지곡으로 지정될 날도 멀지 않겠다는 느낌이 오는 것은 남쪽 것이라면 무조건 싫어하고 저주하는 북녘 기득권층의 피해의식 때문이리라.

 

잘 먹고 잘 입어서 신수가 훤한 남쪽 인간들이 오는 것을 싫어하는 데는 그들의 헐벗고 사는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떻게 남에서 만든 쌀과 라면도 싫고 남에서 만든 옷도, 제품들이 반입될까 전전긍긍해하며 반도 울타리를 넘어 전 세계가 알아 모시는 이른바 K 영문자가 달린  팝, 드라마, 영화, 가요 들을 몰래라도 보고 들을라치면 목숨마저 내 걸어야 할 정도로 “남쪽 것 들”에 치를 떨며 경기마저 일으키는 정신 병자들이라면 남녘 훈풍 강남제비라 해서 다를 리 없겠다는 생각에서다. 
 
혹독한 추위보다 더욱 가혹한, 대를 이어 가는 지독한 폭정에 시달리는 북녘 주민들의 남녘으로부터 불어 올 따뜻한 봄날에 대한  그리움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그리운 강남. 이순간에도  완장 찬 공안요원들이 한국드라마 몰래 시청하는 주민들 색출하느라 혈안이 된 부모님의 고향산천에서 여전히 불려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제목을 미처 몰라 찾아 헤매던 그리운 강남 영상물을 유튜브에서 처음 찾아들었을 때의 느낌은  이외로 차분했다. 1980년대 초 평양에서 제작된  위의 영상물은 해방 전에 유명 여배우로 활동하다가 월북한 문예봉이 할머니로  분장하여 아름다운 현악 연주, 고운 음성. 그리고 정확한 음정과 박자 등 무엇 하나 흠잡을 수 없을 만큼 잘 만들어졌는데도 내 어머님께서 부르실 때마다 느껴지던 그 애절한 사랑과 감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영상물 자체가 북조선 사회에서는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풍경.  유튜브 볼 수 없는 북녘의 형제자매가 아닌 남녘 동포 또는 해외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전물이라서 그랬을까? 
 
그리운 강남이 유일곡이셨던 어머님의 형제자매분들은 젊은 나이에 여러 가지 이유로 일찍 세상을 뜨셨다고 들었다.  외 할머님도 일찍 돌아가셨고 외할아버님은 피난 내려가시기 전까지 생존하셨다지만 결국 오래 못 사시고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생전 어머님의 시름 어린 모습이 눈앞에 어린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고 울부짖던 아들 하나와 친가 및 외가식구들 모두와 생이별하게 한 북녘땅 일당독재 세력들. 생명과 재물을 빼앗기고 가족들과 생이별한 천만 이산가족 가슴마다 천추의 한을  남긴 주범들의  폭정 치하에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억압된  삶을 살고 있는 북녘의 형제자매들...
 
얼마나 더 지나야 꽃피우고 강남 제비가  돌아오는 봄이 올까?

 

 

ㅡ그리운 강남ㅡ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에 어서 가세


하늘이 푸르면 나가 일하고
별 아래 모이면 노래 부르니
이 나라 이름이 강남이라네


그리운 저 강남 두고 못 가는
삼천리 물길이 어려움인가
이 발목 상한 지 오래라네


그리운 저 강남 건너가려면
제비 떼 뭉치듯 서로 뭉치세
상해도 발이니 가면 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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