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이 많이 한가하던 시절. 그러니까 공부하는 것만이 어린 학생들의 전부가 아니었고 컴퓨터 게임도 전혀 없던 소년 소녀들의 장난감은 주로 유리구슬과 종이 딱지 및 고무줄등이었고 그 안에는 가끔씩 나무토막이나 시냇가의 자갈 같은 자연형태의 물질들도 끼어있었다.
세상이 모두 하얗게 변하며 길바닥이 꽁꽁 얼어붙는 한 겨울날에는 눈뭉치와 종이연. 나무팽이 같은 계절 놀이도구도 장난감 노릇을 톡톡히 감당하였는데 대가리 조금 큰 아이들 중에는 화약 딱총이나 고무줄 새총을 불법 개조해서 콩알만 한 돌멩이를 탄환으로 쓰는 쇠파이프 딱총, 고무줄 장력이 아주 센 새총을 들고 놀다가 다쳐서 그렇지 않아도 넉넉지 못한 살림에 시달리는 무모들의 속을 박박 썩여주었다.
병정 놀음 전쟁놀이 하는 과정에서 입게 되는 작은 사고 정도는 참거나 잠시 울고 나면 그만이었지만 받은 상처가 깊어 병원에라도 가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될 경우, 요즘과 같은 정밀한 손해배상 소송이 귀하던 시절의 높은 치료비용이나 약값은 몽땅 부모들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 옛날에도 태엽과 건전지로 움직이는 로봇이나 자동차 같은 고품격 고 가격 장난감들도 존재했다. 일반어린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오직 소수 부유층 자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물품이었기에 장난감 하면 역시 누구나 가질 수 있던 종이딱지 유리구슬이었다.
주 재료가 낡은 술병이나 사이다병으로 추측되는 유리구슬 대부분은 진초록 색을 띠고 있었는데 간혹 가다 수정처럼 맑은 유리구슬이나 다양한 색깔의 꽃 모양 형태와 플라스틱 조각이 삽입된 구슬들은 일반 구슬에 비해 열 배 내지 스무 배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모여 구슬치기 하는 광경이 방과 후 동네의 풍경으로 자리맥임 되던 어느날 오후. 크기는 여느 구슬과 비슷하나 낡은 베어링에서 축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속칭 ‘쇠다마’가 찬란한 빛을 반짝이며 그 단단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형형색색의 유리알들 사이에 끼어든 쇠구슬. 햇빛에 반짝이는 강철구슬은 유리알이 아무리 부딪쳐와도 밀리지 않았던 반면, 유리알들이 모여있는 ‘적진'을 향해 맹렬히 굴러가서 서너 개의 유리알 정도는 아주 간단히 튕겨내는 초능력을 갖고 있어 너 나 할 것 없이 '쐐다마’ 구하기를 갈망하였고 동네 아이들의 그런 열망은 언제나 한산하던 고철상에 애들이 몰려드는 기현상을 연출케 하였다.
드디어 유리구슬은 도태되고 쇠구슬이 판치는 세월이 왔다. 게다가 놀이 외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유리알과는 다르게 엿과도 바꿀 수 있는 쇠구슬은 화폐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어 골목 길바닥 위에서 튕겨 나오는 쇠구슬들의 불꽃은 보물쟁탄 전 열기의 상징이던 어느 날…
“쇠 구슬도 구슬 나름, 어차피 이기기만 하면 되잖아”.
이쯤 생각한 몇몇 녀석이 어디서 구했는지 무려 탁구공 만한 쇳덩이로 들고 나타나 작은 쇠구슬을 싹쓸이하면서 동네는 온통 쇠구슬 잃고 슬퍼하는 아이들 통곡소리들로 가득했다.
유리알의 낭만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무적의 ‘쐐다마’가 무척이나 부러웠던 나는 지금 까지도 탱크나 불도저 같은 캐터필러 무한쾌도 장착 차량들이나 요즘 뉴스에서 한창 떠오르는 파괴된 탱크 영상들, 특히 무한쾌도 무분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매우 큼직 한 쇠구슬, 축구공 크기의 거대 한 강철 덩어리를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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