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옹달샘이나 계곡을 흐르는 실개천에는 요즘 병으로 판매되는 그 어떤 식수보다 더 맑고 깨끗한 물이 넘쳐흐르고 동물원에서나 불 수 있을 온갖 짐승, 날짐승들이 지천에 널려있던 시절.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부족한 나머지 강추위에 얼어 죽고 잘 먹질 못해 굶어 죽는 사람들마저 존재하던 그 고달픈 와중에도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 맑은 공기를 마시고 살았던 덕분인지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는 대체로 착하고 넉넉한 편이었다.
농민들 대다수가 반 머슴 반 노예나 다름없는 가난한 소작농부의 삶을 살다 보니 애나 어른이나 늘 배 고플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가을 추수를 마치고 이듬해 봄까지는 휴식기간이었기에 장기와 바둑. 낚시나 사냥으로 소일하는 청년들이 있었고 겨우내 볏짚으로 밧줄과 가마니 짜기에 열중하는 알뜰 청년들도 있어 사냥잡기에 빠져 세월 가는 줄도 모르던 불효자 무리는 그들의 부모님 심기를 매우 힘들게 했다.
사냥감만 나타나면 저 혼자 다 알아서 처리하는 기특한 사냥매는 저잣거리 같은 데서 돈 주고 구입하여 키우는 것이 아니라 포수들이 직접 잡아서 키우고 훈련시켜야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복잡해서 절대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극한의 정성과 인내를 갖춘 자들만 가능했다고.
매 둥지는 보통 높은 나무 꼭대기에 아니면 바위산 절벽 같은 곳에 있어 찾는 일 자체가 어려웠고 어떻게 운이 좋아 새끼 매들이 있는 둥지를 찾았다 해도 알에서 갓 깨어난 아주 어린 상태도, 너무 자라 제 어미를 알아서도 안 되는 , 적절한 시기에 맞춰 어린 매를 생포 한 다음 고되고 지루한 훈련 과정 모두를 거쳐야만 비로소 한 마리의 보라매가 완성되는데 전문포수도 아닌 당숙께서 그 모든 과정들을 걸쳐 사냥매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됨됨이가 비범하고 특출 났음을 말해 준다.
사정이 그런데도 놀기에 바빠 농사일을 게을리한다는 이유 한 가지로 친척들 사이에서는 문중 망신 시킬 꼴뚜기, 내놓은 자로 찍혔던 것. 그분의 훤칠한 허우대를 보나 도무지 못하는 것이 없는 여러 가지 재간으로 보나 남보다 나으면 낫지 못난 점 하나도 없는 멋진 당숙을 보고 말이다.
연 싸움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지 않던 월등한 수직 상승의 기능을 갖춘 방패연도 그분이 직접 제작하셨고 물고기 잡는 덫도 그 어느 누구보다 잘 만들던 분이셨는데도 오직 그분의 가업(농사) 일에 태만하다는 이유 하나로 집안 말아먹을 자라느니, 저러고도 쉬 망하지 않는다면 자신들 손에 장을 지지고 말겠다는 끔찍한 말들을 해대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그분을 따라 매사냥 갔던 날은 날씨가 아주 좋았다. 바람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는 잠자리 한 마리만 날아도 눈에 띌 정도로 화창했고 굽이굽이 펼쳐진 구월산 자락들도 마치 눈앞에 잡힐 듯 선명했다.
점박이 사냥개가 앞서 가고 그 뒤로 팔 위에 얹힌 두건 쓴 매와 함께 가시는 당숙, 구운 옥수수와 물통이 담긴 보따리를 짊어진 나는 부지런히 쫓아갔다. 동네를 벗어나 추수 끝낸 논두렁을 따라 걷자 뽀르릉~ 뽀르릉~여기저기서 메추리 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논두렁에 앉아 이마에 맺힌 땀을 식히고 있던 바로 그때 푸다닥! 인기척에 놀란 장끼 한 마리가 황급히 떠오르자 두건 벗은 매도 비호처럼 날아올랐다. 그런데 사냥감이 주인 몫이라는 점을 확실히 아는 점박이 사냥개와. 제 것 인 줄만 알고 덮치기가 무섭게 막 쪼아 먹으려고 덤비는 사냥 매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굶주린 미물이 저 먹겠다고 애써 잡은 꿩을 잽싸게 탈취하려는 인간과 이번만큼은 기필코 살 한점 쪼아 먹겠다고 기를 쓰고 덤벼드는 매의 모습은 약육강식 세계를 매우 실감 나게 연출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꿩사냥은 반나절 가량 지속되었으나 처음 잡은 꿩 외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고 꿩 대신 메추리 다섯 마리로 만족해야 했다.
해가 서편으로 기울어 갈 즈음 우리 일행은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나는 복어알 잘 못 드셨다가 보름째 자리에 누워계신 큰 아버님의 수척하신 얼굴을 생각하면서 내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죽은 꿩 모가지 털을 매만지며 걸어갈 때 당숙님은 못 먹어 독 오를 때로 올라있는 매를 내게 맡기고는 풀숲으로 들어가셨다.
팔 뒤꿈치까지 오는 가죽 장갑 낀 내 팔에다 매는 앉혔지만 이놈이 내가 작다고 깔보는지 계속 꼼지락 대며 부리질 하려 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가죽 벙거지 쓴 매 대가리에 알 밤 한 대씩 매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느닷없이 활짝 펼쳐진 매 날개는 내 얼굴을 호되게 쳤고 깜짝 놀란 나는 매 다리를 잡고 패대기쳤더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짓 까불던 매는 땅바닥에 쭉 늘어져있어 뛰는 가슴을 안고 꼼꼼하게 살펴보니 매는 이미 죽어있던 것.
따스한 황금빛만 감돌던 저녁 들판은 한순간에 황량한 광야로 바뀌어졌다. 땅바닥에 죽어 늘어져있는 꿩 한 마리, 메추리 다섯 마리 그리고 방금 세상을 뜬 매 한 마리와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꼬리를 축 늘어트린 체 엎어져 있는 점박이 개 한 마리…
나는 곧 내게 닥쳐올 가혹한 운명에 발발 떨었다. 당숙님의 아줌마보다 더욱 소중히 여기시는 이 금쪽같은 보라매의 생을 내가 마감시키고 말았으니 이를 어떡하나. 농사일 마저 등한시하며 이놈을 잡아 키우고 훈련시키느라 얼마나 애쓰셨는데 난 이제 죽었다.
절망적 순간에 축 너부러진 매를 다시 내 팔 위에다 대충 얹혀 놓은 것은 심판의 순간을 조금이나마 늦추어보려는 본능의 발로였다.
“제가 들고 가겠시다”
“그래라”
바지춤을 추스르며 나타난 매 임자에게 부탁드리니 선선히 승낙하셨다.
얼마쯤이나 걸었을 까? 저녁놀이 짙게 깔린 아침에 잡은 꿩보다 더욱 실해 보이는 꿩 한 마리가 무거운 몸을 부여 안고 날아올랐다.
“야 날래 놓으라. 거 날래 놓지 않고 뭐 하는 거가!!
생각지도 않은 꿩 출현에 나는 절망했다. 당숙님은 거의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매 풀라고 난리신데 이미 숨 끊어진 매가 무슨 재간으로 날아가리오? 탐스런 장끼는 펄펄 뛰고 계신 당숙님을 뒤로한 채 언덕 저편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거 메이야? "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열 받히신 매주인의 목소리.
“이놈이 아니갔시다 “ 기어 들어가는 나의 목소리.
그때 성급하기를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당숙님의 복음과 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그놈의 멍청한 매, 날래 답쇠기라!"
아~ 세상에.. 어떻게 이런 좋은 기회가 또 올 수 있을까?
나는 매 발목을 꽉 부여잡고 젖 먹던 힘까지 보태어 땅바닥에 들입다 패대기 치니 매는 피까지 흘려가며 땅바닥에 납작 너부러지고 만다.
황급히 다가와서 사냥매의 처참한 최후를 보신 당숙님. 한동안 멍 하고 계시다가 날 한번 바라보고 하늘 한번 바라보고, 매 한 번 들여다보고 내 얼굴 한번 쳐다보시더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독백과 더불어 긴 한숨을 내쉬시고는 땅바닥 털썩 주저앉으셨다.
“어허 어드러케 이런 날벼락이. 무슨 아해가 이럴 수 있냐? 천하에 기막힌 일이로다"
그날 이후부터 날 보시는 당숙님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삶의 의욕을 약간 상실하신 눈으로 매우 측은해하는 그분 모습에도 도저히 사실을 말해 드릴 용기를 낼 수 없던 나는 끝내 문중의 ‘반편’(바보)이란 혹독한 평가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한 가지 위안은 있다면 당숙님이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던 매가 맹꽁이 조카 녀석에게 어이없는 죽음 당한 후 사냥은 물론 낚시까지 모조리 전폐하시고 오직 농사일에만 전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
마치 전설의 고향 이야기 닮은 이 사연은 오래전에 고인이 되신 친척 어르신께서 당신의 처조카 뻘 되는 나의 됨됨이가 당신이 보라매를 답쇠겼던 나이 때와 흡사한 구석이 많으시다며(😵💫) 어린 내게 들려주셨던 이북 이야기들 중에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