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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스토리

뱃고동 갈매기 울음소리

by Seresta 2024. 2. 18.

 

지금과 같이 승용차와 항공기가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의 기차는 비록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따르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가장 저렴하면서도 먼 거리 운행이 가능했던 기차였고 육지와 크고 작은 섬들. 항구와 항구를  연결하는  소형 선박들이 그 시절 바닷가 주민들의 유일했던 교통수단이었다면  해외 여행자들은 무엇을 타고 바다 건너 먼 타국으로 갈 수 있었을까?

21세기가 한참 진행 중인 요즘 세상에는  국내 제주도엘 가나 해외 어느 나라를  가나 오직 항공기뿐이지만 나라 밖으로 나가는 일이 대단히 까다롭던 시절 중남미를 향 해 떠나는 이민자들의 유일했던 운반수단은 이른바 이민선이라고 불리던 대형선박이었다.


이민선이 정박 된 부산항 부두에는 떠나는 이들과 환송하는 이들로 가득 매워졌고  간판에 오른 선객들과 부둣가 송별객들 사이에 연결된 형형색색의 종이테이프는 슬픈 이별의 현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윽고 긴 뱃고동 소리를 신호로 예인선의 움직임에 따라  꽉 붙어있던 선박과 부두 간에 틈 사이가 조금씩 벌어져가며 바닥에 늘어져있던 종이테이프들이 서서히 당겨질 때면 그동안 참고 있던  인간들의 울음소리가 항구를 가득 메운 갈매기들의 울음 소음들과 절묘하게 어우러질 때  팽팽히  당겨진 오색 종이테이프가 하나둘씩 끊겨 휘날리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단장의 슬픔을 절감하던 이민자들 중에는 우리 가족도 끼어  있었다. 

 

부산항 떠난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이미 어둠에 깔린 교요한 배 선실 한구석에서 누군가가 틀었던 우리 가요 한 곡.  떠나는 사람들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표현했던 그 노랫말이 얼마나 절절하던지  나의 어린 심금을 크게 울려주었고 눈물을 쏟게 해 주었다. 

그때의 그 노래를  반세기 훌쩍 넘은 지금와 듣노라니  밝고 행복한 영원한 나라에서 고향산천을 보고 계실 부모님의 모습이 간절히 생각난다. 

 

내 가슴속 깊은 곳에 한폭의 명화로 각인돼 버린. 고국과 친척들과의 생이별이 서러워  눈물지으시던 어머님과 눈물을 감추시려 고개를 돌리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울지마라 부산항 

          1.   내 다시 너를 찾아 돌아오는 그날까지
               이별이 괴로워도 울지 마라 부산 항아 
               오륙도 파도 위에 등댓불같이
               새까만 눈동자에 이슬이 지면 
               떠나는 나도 울고 물새도 운다.

            2. 밤마다 부두마다 꽃다발이 휘날려도
                기약을 두고 간다 울지 마라 부산 항아
                우윳빛 안갯속에 이별이 슬퍼
                목메어 소리치며 몸부림치는 
                떠나는 나도 울고 물결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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