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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숫나비의 꿈

by Seresta 2024. 2. 2.

 

 

 

사교댄스라고 불리던 서양춤이 근래 들어와 스포츠댄스 또는 볼륨댄스라고 불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친목과 운동이란 본연의 목적을 저버린체 주로 불륜을 위한 도구로 쓰이는 일명 카바레 춤과 차별하려는 동기에서 인 듯하다.

 

일본에서 만들어 미국에서 리메이크 하여 공전의 히트를 쳤던 쉘 위 댄스  영화 속 주인공들의 특징을 보면 모두 단조로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려 춤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행복과 성취감을 느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서의 삶이란 스트레스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마음을 다스리고 절제하며 살려고 애를 써도 열받는  일 또한 생기기 마련이고 거기에 자녀들까지 합세하여 속상하게  해 줄 때 면 정말이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훌쩍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 때도 있다.

선척적으로 타고난 튼튼한 심장과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라면 또 모를까, 문득문득 치솟아 오르고 내리는 혈압 변동에 시달리다가 끝내는 이 글을 치고 있는 불쌍한 본인처럼 남은 여생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혈압약 복용해야 하는 고혈압 환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을 듯하다.

"조상 친척 중에 고혈압 환자가 없다니 유전 같지는 않고, 평범한 중생들 삶의 표본인 데다가 비만도 아니고. 담배는 이미 한참 전에 끊었고 술도 조금씩만 하는데도 이렇게 되었다면 아무래도 열 많이 받는 '그 무엇' 때문인 듯한데 안 됐지만 이제는 약을 복용해야겠는데."

솜씨는 별로 나쁘지 않은데도 제 진료실 하나 없이 이병원 저 병원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고 하는 의사 친구의 처방을 받고 보니 문득 산다는 것이 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빌빌하던 차에 삼 년 전부터 스포츠댄스를 배우고 있는 친구의 권유를 받았다. 

"스포츠댄스를  배워보라니까 그러네. 운동도 되지만 특히 스트레스 푸는 데는 아주 그만이야. 나도 그렇지만 우리 집 사람을 보면 사람이 다 변했어."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관심 있던 볼륨댄스. 본격적인 댄스 입문에 앞서 일단 스포츠댄스가 뭔지를 알아야 했기에 그런 장소 가기 싫다는 아내를 억지로 데리고 댄스대회에 참관자로 참석했다.

널따란 홀 안에는 과반수 이상의 동포 외 중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백인들도 참가한 다인종 무도회로서 턱시도와 드레스로 성장을 한 백 쌍 이상의 중노년 남녀들이 곧 시작될 무도 발표회를 위한 준비 스텝에 한창이었다. 

날개 펼친 나비모양 두 팔을 활짝 벌린체 빙빙 돌고 있는 어느 신사, 한 떨기 꽃과 같은 아름다움과 매력을 발산하는 어느 숙녀,  댄스홀에 모인 사람들 중에 어둡고 슬픈 기색을 띤 이들은 볼 수 없었다.
 
"정말  별천지네. 세상에 이런 곳도 다 있었네요." 안 가겠다고 떼쓸 때는 언제고 상기된 얼굴로 감탄사를 연발하는 마누라…. 준비되었던 식사를 마친 후 무도회가 시작되었다.

 

탱고로 시작해서 곧이어 빠소 도브레, 스윙, 차차차, 룸바, 삼바, 그리고 왈츠에 살사춤까지 다양한 춤을 선보였는데 사십후반의 육, 팔 청춘들의 열기는 대단했고 심지어 사회에서는 노인 취급이나 받으실 팔팔 청춘들의 정열도 젊은 사람 못지않았다. 

그들 중에  유난히 히프와 어깨를 흔들대는 한 쌍이 눈에 띄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한바탕 추고 들어온 친구는 저게 바로 카바레 춤이라고 누누이 설명한 것은 춤에 문외한들이 스포츠댄스를 카바레 춤과 동일시하는  풍조를 무척  싫어하는 까닭이다.

약 십 분 정도의 휴식이 끝나자 무도회를 주관한 사회자는 나와 같은 참관자들도 동참했으면 하는 멘트가 있었지만 내 곁에 앉은 마누라는 요지부동. 나에게 엉터리로 배운 막 춤 솜씨로는 절대로 나갈 수 없다는 것.
 
옳으신 마눌님 말씀에 냉수만 들이켜고 있을 때 친구의 아내가 되게 튀는 옷차림으로 시선을 끌었던 한 중국 여성의 손을 잡고 우리 테이블로 오더니 내게 춤 한번 춰보기를 권유했다. 

내가 이래 봬도 왕년에 람바다 춤까지 춰봤던 사람인데 그까짓 춤 못 출 것도 없지. 발끝에서 히프 바로 직전까지  터진  치파오 차림의 그녀를  따라 홀로 나아갈 제  등려군의 월광대표아적심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행복한 우연이었다 

춤의 달인과 스텝 맞춘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안면 몰수하고 마구잡이 춤으로 나아갈 때  역시 비슷한 수준의  막 스탭으로  몰라서 용감했던 날 감싸주던 참 멋진 그녀.  남편이 낯 모를 여성과 춤을 추는 광경을 바라보며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마음씨 고운 파트너님  덕분으로  중간 퇴장 없이 자리에 들어온 나를 보는 아내의 눈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아마도 소박했던  그녀의 용모 때문인 듯했는데 스탭을 몰라 당황해하던 나를 배려하던 그녀의 세심한 마음씨와  따뜻한 미소를 보았다면 마냥  느긋해 할 수만은 없었으리라.

그날 이후 제대로 된 춤에 대한 나의 생각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스포츠댄스는 평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있었고  춤추며 미소 짓는 그분들 모습마다 행복의 광체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볼룸 댄스라는 춤…..

 

결코 쉽게 입문할 수 없는, 노력한다고 되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타고 난 유연한 몸에  뛰어난 운동신경과  그 많은 스텝들을 숙지해야 하는 기억력과 인내심과 열정을 두루 갖추어야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무언의 아쉬움이 담긴 아내의 눈길을 피하며 스포츠댄스 입문을 무기한 연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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