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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마지막 시험

by Seresta 2024. 1. 18.


그곳은 거의 변화가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주민들의 주업은 달걀과 고기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양계와 돼지 사육이었고   감 딸기 복숭아 같은 과일. 그리고 호박과 토마토 오이 고추 같은 채소 재배는 판매와 자가소비를 위한 부업이었다.


교통 요지도 못되고 별로 볼 것도 없는  한적한 그 마을에 한 젊은 신부님이 성당 주임으로 새로 부임해 왔다. 새로 온 신부님은 언제나 근엄한 자세로 일관하던 전임사제들과 모든 면이 달랐다. 기타와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고 스포츠에도 조예가 깊어 신자들은 물론이고 비신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호평을 받았는데 특히 마을 아이들이 많이 좋아했다.

신부님은 평일 날에도 성당을 개봉하여 동네아이들로 하여금 맘껏 놀게 해 주었고 장시간을 뛰어놀아 허기 진 아이들에게 잼 바른 빵과 우유를 먹게 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어떤 날은 신부님 밴 차량으로 동네아이들을 태워주시는 요셉 신부님은 마을 아이들에게 있어 단순한 신부님을 넘는 선생님이자 맘씨 좋은 형님 그리고 친구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해서 신부님이 되었는지 그리고 사제가 되어 무엇이 힘들고 무엇이 기쁘고 보람 있는지를  숨김없이 들려주어 자신들의 삶이 그다지 기쁘지 않은 촌 아이들을 격려해 주고 내일에 대한 희망도 심어 주는 사랑의 감화로 적지 않은 비신자 집 아이들마저 신자 되기를 원하였다. 

그렇게 생겨난 어린 신도들의 수가 늘어나며 성경 귀절과 기도문. 그리고 세례를 위한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수녀님의 일과도 바빠지면서  마을에는 일찍이 보지 못했던 현상이 나타나서 또 한 번 주민들을 놀라게 했다.

생겨난 이래 단 한 건의 신학교 입학 소식이 없는 작은 마을에서 한꺼번에 네 아이나 신학교로 진출하는 대이변이 일어난 것인데 그것도 갈 자격을 못 갖추어, 또는 아이 부모들이 허락 하지 않아 못 가게 된 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도 그랬으니 요셉 신부님이 베풀어 주는 사랑의 결과는 실로 위대했던 것.

과수원 집 둘째 아들 다니엘과 양계하는 집 막내아들 베드로, 그리고 트럭 운전사 집 첫째 아들 호세와 옷 수선집 미망인의 외동아들 라파엘은 몹시 부러워하는 마을 아이들 배웅 속에 유칼립 나무 그늘이 시원한 냇가와 잔디 깔린 운동장이 있고 기숙사 시설이 매우 좋다는 인근 도시 신학교로 들어갔다.

 

신학교 생활은 참 재미있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같이 너무 엄격하지도 않았고 공부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일과의 하나로 집에서도 하기 싫었던 학교 텃밭 가꾸는 일은 싫었지만 무더운 날 시원한 냇가에서 물장난도, 드넓은 잔디밭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도  자주 할 수 있어 좋았다. 


나만의 침대가 놓여있는 아늑한 기숙사 방. 때마다 먹게 되는 좋은 음식들. 고향집에서는 한 번도 경험 못 한 호사에 처음 몇 개월은 마치 천국에 들어간 듯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었으나  조금씩  지루한 공부 과정과 속세와 격리되는 삶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사춘기 나이에서 이성에 대한 감정을 억제하고 차단하는 일은 번식 본능과 의  전쟁을 의미했다. 

남성의 몸으로 태어나 가정 갖기 마저 포기해야 하는 가톨릭 사제의 삶.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신심 깊은 부모 가족들의 성원 속에서 사제가 되기를 소망하는 학생들 뿐 만 아닌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학생들도 적지 않았기에 처음 신학교에 입학하여 대신학교를 마친 후 수련 기를 지나 최종적으로 사제서품을 받는 학생은 극 소수에 불과할 만큼 신부님이 되는 길은 험하고 어려웠다.



라틴어 공부에 열중하는 와중에도 새롭게 유행되는 노래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던 다니엘은 입학한 지 일 년도 못 되어 집으로 귀여운 아들 생각에 밤잠 설친다는 모친의 눈물 어린 애원에 그만 신부 되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두 번째 '낙오자'는 이학년까지 잘 올라갔다가 수녀원에서 정성 것 담가 미사용으로 만들어 보관해 놓은 포도주를 훔쳐 마시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사제의 길을 접어야 했던 호세. 평소 공부는 잘했는데도 장난치기 좋아하는 그의 성품이 그만 화를 자초하고 만 것이다.

같이 들어갔던 네 아이 중에서 가장 똑똑했던 후안은 대학 진학을 눈앞에 두고 경제적으로 심히 어려웠던 집안 사정으로 포기해야 했던 안타까운 경우. 그동안 정들었던 교우들과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날 후안은 주어진 운명을 원망하며 크게 소리 내어 울어댔다는데 빼어난 용모로 인해 언제라도 사고 칠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그의 자퇴는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몰랐다.

같이 공부하던 고향 동무들은 그렇게 하나씩 모두 떠나가고 오직 베드로 학생 하나만  남았다. 어려운 집안 환경 속에서도 그가 끝까지 공부하여 대신학교로 진학해서 신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은총과 스스로의 노력 덕분이었을 것. 

고향의 요셉 신부님이 예정되었던 임기를 모두 마치고 외국으로 나가시자 다시 예전의 보통 신부님과 흡사한 평범한 신부님이 새로 오시면서 한 시절 동네 아이들이 되고파 했던 신학생 붐도 사라졌고 새롭게 불어 닥친 교육열정  현상으로 대다수 마을아이들이 큰 도시로 마을을 떠나면서 이제 고향 떠나 살고 있는 그 시절 그 아이들의 뇌리에는 한때나마 선망의 눈길을 보내게 하던 베드로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지워져 갔다.

베드로는 학교 과정을 모두 마치고 어느 산간마을 성당으로 진출했다. 본당 신부님을 도우며 현장 실습과 교구관리와 행정을 배우고 익히며 사제가 되기 위한, 어쩌면  가장 어려운 마지막 과정을 통과하기 위함이었다 

성장한 청년들의 탈 고향이 심각하여 총각 하나에 다섯 처녀가 있을 만큼 처녀들이 많은 그마을은 어느 곳을 가도 잔디 혹은 계단에 한가로이 앉아 노닥이는 처녀들 모두 아침 이슬 머금은 꽃잎처럼 예쁘고 청조했으나 금욕을 철칙으로 하는 사제 예비생들에게는 한 순간에 십 년 공부를 헛되게 할 수도 있는 사탄이자 폭발물과 같은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교회 행사가 잦은 수난절 부활절 성탄절 같은 명절이 오면 베드로 같은 청년 신학생들은 단연 마을의 주인공이었다. 


미사 올리는 성당 안에서나 성모님 상을 앞세우고 행진하는 거리에서나 늘 간절한 마음으로 신부님의 축복을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눈길을 금방 느낄 수 있었고, 여느 신자들의 경외심과는 또 다른 처녀들의 뜨거운 눈길도 그럴 때 가장 많아서 베드로는 그런 눈길을 느낄 때마다 가슴이 마구 뛰곤 하였다.

 

베드로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를 예비 신부님이 아닌 이성으로 바라보는 처녀들이 적지 않았고 그중 에서 두 주에 한번 꼴로 자기 집에서 자신과 또 다른 동료학생을 초대하여 식사 대접하는 마누엘 씨 맏딸이 가장 적극적이어서 베드로가 손만 뻗치면 쉽게 딸 수 있을 달콤한 열매 같았지만 그것은 가질 수도 먹을 수도 없고 또 그래서는 안 되는 금단의 열매나 다름없었다.

베드로는 그녀를 볼 적마다 함께 공부하다 지금은 속세로 돌아가서 여느 청년들과 다름없는 청춘을 구가하며 살아가는 세 친구의 모습들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소규모 양계로 삶을 이어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들 신부님 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알고 살아가는 부모를 생각하면 결코 다른 생각은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십 년 넘도록 신학교 울타리 안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며 살아온 베드로는 험한 세상을 헤치고 나갈만한 힘도 능력도 없었기에 오직 사제가 되는 것 만이 그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  한 여자와 혼인하여 가정의 보급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주 만났고 그러면서 마을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오누이 같은 순수한 관계인데도 신학 수련생의 완벽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마을 사람들은 신학생과 처녀의 만남을 결코 너그럽게  보려하지 않아 소문은 점점 과장되게 퍼져나갔고 신학 교장 신부님에게 까지 알려지게 되면서 베드로 신학생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랑하는 남녀가 결합하여 가정을 꾸미고 아이를 낳고 키워가며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고 그러면서 같이 늙어가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보람이며 축복이라면 나 역시 그런 대열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들을 다 포기하면서까지 꼭 사제가 돼야 하나?

 
베드로는 두 갈래 길에서 많은 번민이 있었지만 끝내 마지막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여 서품을 받고 어엿한 신부님이 되셨다. 세월이 흐르며 힘없고 가난한 신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부어주는 명사제로 변신한 베드로 신부님. 언젠가 그에게 감화를 주어 사제의 길로 들게 했던 요셉 신부님과 같이 믿는 집 아이 안 믿는 집 아이 가리지 않는 모든 어린이의 친구가 된 것이다.

 

한때 포기할 생각도 많이 했었지만 지금은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한 사람의 신앙인이자 사제로서,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는 베드로 신부야 말로 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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