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날개라는 말. 한 사람의 옷차림은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품격과 인격의 상징이라 할 수 있기에 인간 생존의 필수적인 의, 식. 주. 세 가지 중에서 옷을 먼저 꼽았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수많은 동물들 또한 나름대로의 주거공간이 있고 먹이를 구하며 생존하지만 의복만큼만은 오직 인류의 전유물. 지구상 수많은 생명체들 중에서 의복은 고사하고 나뭇잎 한 장 걸치고 다니는 동물은 전무하기에 그렇다.
불과 한 세기 전 만 해도 옷 한 벌 지어 입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옷 지을 가죽 구하기 위해 위험한 맹수를 잡아야 했고, 천 조각 한 뼘 얻으려 해도 먼저 농사짓고 길쌈하고 바느질까지 하는 수고를 해야 했기에 좀 괜찮다 싶은 의복들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신분을 나타내는 날개가 되는 건 당연했으리라.
물자들이 너무 흔해진 요즘세상에서 예전과 같이 헐벗고 다니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수명이 다하여 걸래로 쓰일 때까지 기워 입을 이유도 없거니와 엿과 바꿔 먹을 일도 없어졌으며 빨랫줄에 널려있는 옷마저 도둑맞던 풍경은 완전히 퇴색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 옷차림에 따라서 대우가 달라지는 풍토는 별로 변한 것 같지 않다. 아니 변하기는 고사하고 옷 대충 걸치고 다니면 대접 못 받는 차원을 넘어 경계의 대상이 될 만큼 악화되었다.
산업의 발달로 값싸고 질 좋은 의복들로 가득 차다 보니 거리에서 헐벗고 다니는 인간을 만나는 것은 외계인 만나는 것만큼이나 드물게 되었고 따라서 아주 비싼 명품이 아니면 옷 잘 입었다는 말도 못 꺼낼 만큼 매정한 세상으로 바뀌어졌는데 이는 의관정제를 매우 중요시하는 아시아권 국가들의 공통적 현상이기도 하다.
수년 전 친구와 사업차 고국 갔을 때 겪었던 에피소드.
상당히 오랜만에 고국나들이에 나선 나와 친구는 서울 동대문 시장 어느 한 점포에서 나는 크고 작은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국방색 낚시조끼와 우산 한 개를, 친구는 하얀색 바탕에 감색 바둑무늬가 잘 어울리는 운동복 세트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 입고 용인민속천에 놀러 갔다가 바로 그 차림으로 구매상담 선약이 있던 사무실 많은 강남으로 향했다.
미지의 고객을 위하여 호텔로 차를 보내주겠다는 회사 측의 호의를 사양한 우리는 회사 측 사람과 만나기로 했던 삼성동 전철역에 내려 공중전화부터 찾았다. 아무리 사전에 연락이 있었다고 하나 서로의 얼굴을 몰랐기에 우리들의 인상착의부터 알려줘야 했다.
-아- 예. 거기서 곧바로 나가시면 은행이 나오는데 그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곧 모시러...
예??!! 우-운동복? 바둑무늬 츄리닝 입으셨다고요??
또 한분은 우산에다... 나, 낚시 조끼를요?
아ㅡ 네... 아, 아닙니다.... 곧 도착하겠습니다.
갑자기 내릴지도 모를 소낙비를 대비하여 편한 차림으로 우산을 들고 나온 것이 뭐가 그리 기이하다고 거래 트고자 찾아가는 고객에게 놀람을 드러내었고 말까지 더듬거렸으며 몇 번이나 재확인했다.
은행은 전철역 입구 근처에 있어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입구 계단에 앉아 오가는 남성들의 옷차림을 바라보니 하나같이 양복의 넥타이 차림인 게 마치 펭귄 나라에 와있는 듯한 착시에 어지럼증마저 느꼈다.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는 우리를 아주 수상쩍게 바라보던 은행 경비원 눈초리가 날카롭게 변해갈 때 검정차 한 대가 멈춰 섰다.
회사는 커다란 빌딩 육 층에 있었다. 그런데 이게 다 뭐지? 적절치 못했던 우리의 옷차림 탓이었지만 사무실로 들어서는 우리를 보며 히죽대는 직원들, 어떤 여직원은 까르르 웃기까지 하니 그렇지 않아도 은행 앞에서 의심의 눈총 받은 것도 억울했는데 이 사람들이 정말!@# 우리가 받은 심적 상처는 꽤나 깊었던지 사장의 정중한 사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타인에게 혐오감 주는 이상 망측한 옷만 아니라면 아무 때나 아무 장소에서나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회에서 살던 습관 때문인지 강남스타일과 다른 옷 입었다고 의심받고 괄시받고서야 왜 많은 사람들이 비싼 돈 지불하고 좋은 옷, 명품 옷들을 입는지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다.
구매상담은 그런대로 잘 이루어졌지만 하나도 즐겁지 않았던 나와 친구.
우리는 현대사회에 동떨어진 두 남자였을까? 아니면 이상한 나라의 유인원이었을까...
저녁 대접하겠다는 회사 측 호의를 한사코 사양하고 사무실을 나가는 두 촌뜨기들 발길에는 힘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