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토록 무거운 껍질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거북이. 수족이 많이 짤막해서 걸음마 또한 느릴 수밖에 없었고 주름살만 많은 모가지는 그렇지 않아도 초라한 거북이의 자태를 더욱 볼품없게 해 주었다.
어쩌다 손과 발을 잘못 디뎌서 홀렁 뒤집어질 때면 누구의 도움 없이는 원상태로 되돌려질 수 없는 아주 난감한 경우마저 당하다 보니 거북이들 대다수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중에는 심각한 우울증세가 원인이 되어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는 경우마저 있었다는 비사가 거북역사책에도 나와있다.
사태가 그 지경에 이르자 종족의 미래를 심히 염려하는 몇몇 원로거북들이 모여 동족들 사이에 팽배한 굴절된 사고방식과 극심한 열등감을 퇴치하려는 의도에서 온 거북 무리들이 참여하는 거북 대잔치 체육대회 치르기를 결의하여 이듬해 즉각 실행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수영 종목에선 물방개플라이 스위밍 폼을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재연했던 개울 아래목 거북이가 우승했고 육상 부분 달리기 종목에선 밤나무 옆 연못가네 거북첨지집 둘째가 열띤 걸음마 도중 발톱 하나가 빠져나가는 것도 몰랐을 정도로 경주에 열중하여 승리를 쟁취했다.
때맞춰 불어닥친 비보이 열풍에 편승하여 새롭게 추가된 등딱지 맴돌기 종목에서는 뒤집힌 몸통이 별나게 통통하던 차돌바위 그늘집 막내 놈이 각각 금메달을 차지했으며 따로 마련된 부스에서 치러진 모가지 길이와 주름의 깊음을 대결하는 신체 부분에선 평소 거북족과 별문제 없이 지내던 얼룩다람족 중 한 마리가 사나운 매 발톱에게 낚아 채이려던 긴급한 순간, 자신의 몸을 던져 작은 다람쥐를 구출함으로써 의거북이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얻은 왕주름영감 넷째 가 값진 우승패를 높이 들었다.
단체 종목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을 거북 탑 쌓기를 이긴 팀은 거북 위에 거북 거북 거북 또 거북 거북... 무려 아홉 몸통이나 쌓아 올린 칠득네 막둥이 등껍질에 새겨진 육각 무늬 사이에 끼어 있던 단 한 개의 칠각 무늬 때문에 세상거북들로부터 칠득이네로 불리게 됐다는 내력을 가진 그 가족이 힘을 합하여 이루어 낸 쾌거였다.
그 외에도 미스 거북 선출대회. 상금으로 한 무더기의 혼합생선이 상품으로 걸린 등치기 천하장사 시합으로 거북 대잔치는 흥행에는 성공했는데 사기진작 면에서는 전혀 소득이 없다 보니 그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만 갔다.
달리기의 신기록이 시속 오백 미터에 불과하다면 토끼 사슴은 말할 나위도 없이 메뚜기나 벼룩이 같은 곤충 만도 못한 것은 쓰라린 현실. 그와 같은 초라한 결과에 크게 낙심한 몇몇 거북이가 심장마비,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사태가 속출하자 온 족속은 비상이 걸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모두 제풀에 몰살하고 말거야. 고착된 열등감을 치유하고 자신감을 찾을 수 있도록 체력과 체형을 극대화시키는 최신식 과학적 훈련방법을 도입하고 능력 있는 감독, 참신한 선수들을 양성하자.”
실력 좋은 감독과 체육계에 떠오르는 별이라고 인정받는 선수들이 속속 영입되었고 잘게 썰은 지렁이와 찐 굼벵 특식으로 선수들 체력 보강에 힘썼으며 심지어 보다 날렵한 몸매를 만들어 보고자 두터운 등 껍질 깎는 험악한 고통까지 감수했지만 고작 조금 튼튼한 거북이, 조금 날렵한 거북이 그 이상의 한계는 넘을 수 없었다.
미약한 대회 결과에 충격받은 지도층 거북들.. 얼마나 들 다급했는지 부화가 절반 진행 중인 거북알 노른자 부분에다 토끼 유전자를 접붙여 롱수족 거북개발 프래그램을 제시하였고 달리는데 방해되는 등판을 제거한 민 등 거북 개발론까지 나왔지만 어느 것 하나 실현될 가능성 전혀 없는 무의미한 탁상공론.
온 거북사회가 그렇게 한창 어수선하고 시끄러울 즈음 등껍질에 음양 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태극 거북이라 불리는 숫 거북 한 마리가 나타나 수십 세기 동안 내려오던 거북이의 열등감을 떨궈내고 자긍심을 드높이는 쾌거를 이뤄냈다면 가히 경동천지 할 사건이었다.
대동물 관계에 탁월한 수완을 가진 태극거북이는 그가 멀림픽의원회 측에다 맹렬한 로비와 저돌적 추진력으로 제안하여 추가시킨 '지능 달리기‘ 경기 규칙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달리는( 혹은 기어가는) 속도에는 전혀 관계없이 정해진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거나 날아가거나 혹은 걷거나 기어가야 했고.
*둘째: 경주중에 그 어떤 경우에도 잠깐 멈췄다 싶으면 본 동물 스스로가 퇴장해야 했으며(버티면 끌려나간다)
*셋째: 달리는 와중에서 (혹은 걷거나 기어가는 와중에서) 길가에 돋아난 각종 잡초들의 종류와 숫자를 파악하는 한편 코스 군데군데 은닉된 각가지 장애물들 피해 가야 했다.
이처럼 경기규칙이 상당히 까다롭고 기이했기에 아이큐 지수가 낮을 경우 복잡한 규칙조차 외울 수 없어 참가할 엄두를 못 낼 만큼 지능마라톤 경주는 애니멀림픽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 리기가 무섭게 가장 먼저 시작되어 수많은 동물들의 관심을 끌면서 숱한 이변들을 쏱아냈다.
강력한 우승 후보라고 각광받던 노루선수는 천천히 기어갈 방도가 전혀 없어 시작한 지 반시간도 체 못되어 울면서 포기했고. 역시 강력한 우승 후보 중에 하나였던 토끼 선수는 사태의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잽싸게 주저앉아 엉덩이 끌며 기어간 지 몇 분쯤 지났을까?
그렇게 탐스럽던 복실 엉덩이털을 몽땅 잃고 피투성이가 된 채 혼절하여 들 것에 실려나가는 사고가 터져 나오자 경기장의 모든 관객동물은 아연실색하며 극도의 긴장감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릴 때 유독 거북 선수들의 걸음마는 든든했고 굳건하였다.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보라! 저기 우리 선수들의 위용을. 모든 동물들을 압도하는 우리 거북용사들의 위대한 선전. 온갖 장애물을 아주 침착하게 피해 가는 선수들의 늠름한 저 모습을! 분초를 다투는 이 긴박한 와중에서도 주위에 돋아난 잡초들을 살펴가는 우리 거북만의 유연한 고개 돌림, 영리한 눈 빛, 은닉된 장애물을 피하고 넘고 기고 또 기어가는 믿음직한 저들의 발걸음은 우리 잔등 껍질만큼이나 든든하도다. “
경기중계를 방송하는 거북아나운서의 음성은 감격에 겨워 금방이라도 숨 넘어가려는 듯 마구 떨려 나왔고 객석 한편을 가득 메운 거북응원단의 함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장장 두 시간 동안이나 펼쳐진 지능 경기. 난다 긴다 하는 타 동물 선수들이 포기하거나 들 것에 실려나가는 등 적지 않은 희생물을 야기시켰던 지능마라톤은 그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거북 선수들의 완승으로 종료됐고 이는 거북 족속 건국 이래 처음 겪는 경사였다.
선수들의 주름진 모가지마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줄줄이 걸리던 순간, 기나긴 세월 동안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해 오던 거북들은 사전에 약속이라도 있었듯 일제히 흐느껴 울어댔고, 그들의 잔치는 하루 이틀 무려 사흘 동안 지속되었다.
온 동물이 지켜보는 애니멀림픽 개막식 경기에서 대승리를 거둔 그날 이후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거북이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주름진 목과 짧은 수족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고 온 족속을 짓누르던 고질적인 열등감도 거뜬하게 극복하였으며 열 잘 받는 급한 성격마저 결코 다른 동물을 깨물지 않는 온순한 성격으로 바꿔지면서 타 짐승들보다 보다 몇 배나 더 오래 살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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