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삼 년 전부터 한인타운 내 작은 아파트에서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든 남편. 결혼 후 십수 년 동안에는 아내와 딸에게 성실한 남편, 멋진 아빠였는데 어느 순간 도박에 빠져들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가더니 급기야는 집을 비롯한 가산 모두를 탕진 한 체 타주로 떠났고 그녀는 생존을 위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처음 취업을 시도한 곳은 봉제 공장이었지만 기본 실력 없이는 일할 수 없어 다시 아는 사람의 소개로 취직된 것이 동포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그런데 쉬워 보였던 웨이트리스 일은 많이 힘들고 고달팠다. 점심, 저녁, 매 식사 때마다 한꺼번에 밀려 들어오는 손님들을 발 빠르게 안내하여 식탁 배정하고 주문하는 일도 미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지만 마치 사흘 굶다가 온 사람들 모양, 자리 앉기가 무섭게 주문에서부터 반찬 물 시중 재촉받는 것은 강한 인내심과 요령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기본 예의는 지켜주고 가벼운 실수 정도는 넘어 가 주었지만 날마다 한 두 차례 정도 나타나는 무례하고 몰상식한 손님들에게 시달 릴 때면 자리에 푹 주저 않고 싶을 만큼 맥이 풀리곤 했다.
여고생 딸까지 두고 있는 중년 여성에게 반 말투에 느끼한 눈길마저 보내는 무례한 군상들. 몰상식할수록 수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팁 액수도 너무 인색해서 삶이 고달픈 여인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녀가 온갖 맹수들이 활개 치는 정글 속에서 생존을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었을 때 가정을 버리고 떠났던 그 사람은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도박병을 치유해 보고자 무작정 생판 모르는 도시에 정착해서 특별한 기술도 없이 그렇다고 가진 재산도 없던 그 사람이 삶의 도피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택시 운전이었다.
한 주 걸러 낮과 밤으로 교대 근무하는 택시기사 일은 무척 힘들었지만 가정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보고자 혼신의 힘을 다해 가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조금이라도 절약하려는 마음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차를 몰았지만 이것저것 다 제하고 남는 액수는 얼마 되지 않았기에 빠른 재기를 갈망하는 그를 좌절케 했다.
그러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늦은 밤. 모처럼만에 많은 탑승객들을 맞이하여 오랜 시간 동안 운전 하고 택시회사로 돌아가던 중, 지하 전선 공사를 위해 도로 한 편에 파헤쳐놓은 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대형사고를 당했다. 구덩이 앞에 경고판이 서 있었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강한 비바람 속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가족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하고 떠나갔던 남편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변고 소식을 받고 보니 그렇게 미워했던 감정은 어디로 가고 그녀 가슴에는 오직 커다란 슬픔만 가득 차 올랐다.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딸과 함께 사고 난 도시로 날아갔다.
정신없이 모든 장례일정을 마친 모녀는 사고의 책임이 있는 도로 공사 측 변호사로부터 거액의 합의금 제의를 받았다. 상상을 뛰어넘는 거액 보상금에 대한 놀람이 가시기도 전, 이번에는 택시회사 측에서 고인 앞으로 들어두었던 보험금이 있으니 유족 측에서 속히 찾아가라는 편지도 날아왔다.
불행과 동시에 찾아온 행복. 갑자기 들이닥친 엄청난 부는 하루하루 간신히 살아가던 식당 종업원 성연 씨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며 먼저 주거 환경이 변했고 돈이 없어 2년제 시립대학에 갈 예정이었던 딸의 진로가 명문 사립대학으로 바뀌어졌다.
지금은 주정부 산하 복지기관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에 전념하고 있는 그녀의 삶. 박봉의 식당종업원에서 정기예금 및 금융투자 은행에서 VIP 고객이 된 그녀의 인성은 어렵던 때나 부유해진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은 없고 오직 한 가지.
종업원 서비스가 아무리 늦어진다 해도 재촉하는 일 없고. 웨이트리스에게 깍듯이 존칭 존대 하며 계산서 위에 상식 이상 액수의 팁을 얹고 나가는 식당 매너만 달라졌을 뿐이다.
살아서는 미움과 원망이 대상이었다가 죽어서 감사와 그리움의 대상으로 바뀌어진 그 사람. 이 또한 운명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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