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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스토리

들장미 월계꽃

by Seresta 2023. 12. 3.

 

들장미(Austrian Briar Rose)

 

독일을 대표하는 가곡 들장미는 그 나라의 유명한 시인  괴테의 시 Heidenröslein에다 가곡의 아버지라 추앙받는 슈베르트의 곡, 그리고 어려서부터 교회 올갠 반주자와 성가대원으로 활약하며 많은 곡들의 작곡하다가 32 나이에 요절한 베르너의 곡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슈베르트의 Heidenröslein은 ‘월계꽃' , 베르너의 Heidenröslein는 ‘들장미’로 분류하여 가사마저 다르게 붙여서 아주 다른 노래로 만들어버린 흔치 않은 사례이다.
 
'월계꽃'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초등교 5학년 때 이사 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았던 우리 이웃집에 살던 영이라는 소녀.  체격은 나와 비슷했지만 한 살 더 많은 상급생이라 그런지 부끄럼 잘 타던 나하고는 달리 성격과 행동이 매우 개방적이었다. 

마주칠 때마다 말 걸어오는 예쁜 여자아이가 왜 그렇게도 부담스럽고 부끄러웠는지 나는 돌계단 입구에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소녀와 마주치지 않으려 동네 시장에 둘러 볼일도 없이 시간만 보내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천하의 숙맥이라고 해도 상대가 적극적으로 나오면 동무가 되는 법.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옆집이면서도 누가 살고 있는지 알지도 못했던 오공주 집안의 둘째 영이네 집안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우리 엄마보다 많이 젊어 보이는 엄마,  여중생 언니, 영이, 바로 아래 여동생, 중간 여동생, 그리고 막내 여동생이 보내는 열두 개의 눈총에 나는 인사도 못 할 만큼 온몸이 얼어붙었다. 
 
언제나  어수선 한 우리 집분위기와 완전히 다른 영이네 집. 잘 정돈된 꽃밭과 빨래 줄에 널려있는 소녀들의 울긋불긋한 옷, 거실 선반 위에 진열해 놓은 여러 모양의 목각인형들도 이채로웠지만 두 발로 굴러대는 풍금도 귀하던 시절에 검은색 피아노까지 있었다. 
 
영이엄마가  꼬마 손님 왔다고 커다란 사과를 주셔서 고마왔고 너무나 귀엽게 구는  막내 꼬마 동생이  얼마나 귀엽던지 집으로 돌아가기가 무섭게 아무 영문도 모르는 어머니에게 우리도  빨리 여동생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조를 정도였는데  하루는 우리 집에서 다음날은 그 애 집에서,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던 어느 주말, 영이네 집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월계꽃月季花, Rosa chinensis

 

 -방긋 웃는 월계꽃, 한 송이 피었네. 향기로운 월계 꽃, 힘껏 품에 안고서..."


처음 보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영이 모습. 노래에 맞춰 영이 바로 아래 동생의 춤추던 모습. 그 광경이  얼마나 아름답고 인상 깊었던지 지금도 월계꽃 노래 들을 때면 그때 그 장면들이 눈앞에 생생하다. 

항상 명랑하고 매사에 긍정적이던  영이. 부끄럼 많이 타던 나에게 다정히 대해주던 영이와 나는 그 이듬해 우리가 다른 동네로 이사하는 바람에 섭섭한 이별을 해야 했다. 

 

 

들장미 소녀는  사촌 형 결혼식에서 알게 된 형수님의 여동생으로서 나에게는 사돈 뻘 되는 소녀였다.  어느덧  아이의 탈을 벗고  어엿한 사춘기 소년이 된 나는  소녀의 머리칼만 봐도 가슴이 설레던 시기였는데도 어린 티가 줄줄 흐르는 여중생에다  그 시절엔 흔치 않던 커다란 안경까지 착용한 은주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피로연회때 그녀가 불렀던 노래 한 곡. “웬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꽃. 갓 피어난 어여쁜...." 한국말로 번안된 독일 가곡을 얼마나 맑게 그리고 청아하게 부르는지  무더운 여름날에 더위를 식히는 산들바람 같은 느낌이 들었고  우리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 통 털어 봐도 남동생들만 득실득실하던 내가 처음 보는 소녀로부터 난생처음 오빠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금방 정다운 오누이 사이가 된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끔씩 도서관도 같이 다니며 우정을 다져가는데 주위 친척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공부에 전념해야 할 나이에 어린 남녀가  같이 다니는 것도 옳지 않거니와  아무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라고 해도 사돈집 처녀와 어울리면 안 된다라는 집안 어른들 충고에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어차피 반대를 무릅쓰며 만나야 할 만큼 심각한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많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가며  피아노 잘 치고 노래도 잘하던 영이는 손주를 둘이나 본 할머니가 되었다. 춤 잘 추던 그녀의 동생은 자신의 '전공'과는 무척 다른 치과의사가 되었으며, 그렇게도 귀엽던 막냇동생은  종갓집의 맏며느리가 되어 바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이다.
 
혹시 다른 시대에 만났더라면  내 아내가 될 수도 있었을 은주는  내가 보기에도 아주 멋있고 착실한 남성과  결혼했고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몇 년 전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운 동네로 이사 와서 가끔씩 마주치기도 한다. 학창 시절에는 그렇게 청순하고 아기자기하던 사람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주 주책 많은 아줌마로 변신해 버렸다. 
 
이제는 대학 졸업반  딸 하나를 두고 사는 예비 할머니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마주칠 때면 내 집사람이  곁에 있건 말건 만약에 그때 우리 둘의 관계가 지속되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쓰잘데 없는 질문으로 나의  지난 일을 알 리 없는  마누라의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들장미(Heidenröslein)
 
Sah ein Knabein Rösleinsteh'n    
Röslein aufder    Heiden 
자아인   크나바인   뤼즐라인 슈 텐    
뤼즐라인 아우흐데르 하아이덴
 
War so jung und morgenschön      
Lief er    schnell es  nah zu seh'n        
 봐르 조 융      운트   모오르겐 쇤.       
리훼에르  스웨 낼에스  나아 츄 젠 
 
Sah's mit vielen Freuden. 
Röslein,  Röslein, Röslein rot.  
Röslein auf der   Heiden.     
쟈아스 밑  휘일렌  흐로이덴.    
뤼 슬라인 뤼즐라인 뤼슬라인 호오트. 
뤼슬라인 아우프데르 하이덴
 
Knabe sprach: "Ich breche dich.    
Röslein   auf der.   Heiden".     
크나베  쉬프라     이히 브뤠쉐   디히.   
뤼슬라인 아우흐데르 하아이덴
 
Röslein   sprach: "Ich steche dich.   
Dass du ewig denkst an mich.       
뤼슬라인   스프라    이히 스테쉐  디히     
다스  두.  이위그 댕스    안  미히
 
Und ich will's nicht leiden".   
Röslein, Röslein, Röslein rot. 
Röslein auf der  Heiden.    
운트 이히 뷜스.  니히 라이덴     
뤼슬라인 뤼즐라인 뤼슬라인 호오트. 
뤼슬라인 아우프데르 하이덴
 
Und der wilde Knabe brach’s.         
Röslein auf der Heiden.         
운트 데르 뷜데   크나베  브라흐스.       
뤼슬라인 아우프데르 하이덴 
 
Röslein wehrte sich und stach.        
Half ihm doch kein Weh und Ach.   
뤼슬라인 뷔르트 지히  운트 슈타그.        
할프 휘임  도흐 카인  비이   운 닥 
 
Musst' es eben leiden.      
Röslein, Röslein, Röslein  rot.        
Röslein auf der  Heiden.    
무스트  에스 이벤 라이덴      
뤼슬라인 뤼즐라인 뤼슬라인 호오트.  
뤼슬라인 아우프데르 하이덴
 
한 소년이 장미를 보았다,
들에 핀 장미꽃.
너무도 싱싱하고 해맑아
소년은 가까이 보려고 달려갔다.
기쁨에 겨워 바라보았다.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핀 장미꽃.
소년이 말했다: 널 꺾을 테야,
들에 핀 장미꽃!
장미가 말했다: 널 찌를 테야,
나를 영원히 잊지 못하도록.
난 고통받지 않을 거야.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핀 장미꽃.
거친 소년은 꺾고 말았다,
들에 핀 장미꽃.
장미는 자신을 방어하며 찔렀다.
하지만 외침 소리도 소용없이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핀 장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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