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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스토리

아빠의 연인

by Seresta 2023. 12. 11.

 

 

어린 시절의 추억은  늘 곱게 채색되어 좋지 못했던 기억들 조차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그런 추억들 중에는 무더운 여름날 동네애들과 놀다가 싸웠던 일들도. 언니 화장품 몰래 바르다가 들켜서 혼났던 일들도 꼽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낯 모르는  여인이  나타나 나의 이모를 자처하며 엄마 노릇까지 했던 사건은 어떻게 될까요?
 
다음 스토리는 동갑에다가 부모들의 고향마저 같은 내 친구가 어릴 때 겪었던 사연이지만 그에게 누 끼쳐줄 염려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 세상에는 이와 흡사한 사연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노래에 얽힌 사연 (호반의 벤치)-


 
어느 토요일 오전, 아버지와 버스 타고 그곳을 찾아갔던 때는 내가 초등학교 이학년에 올라가고  햇딸기가  막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니  아마도 늦은 봄이 아니면 이른 여름이었던 것 같다. 

아빠 손에 이끌려 동네 극장 건너길에 위치한 어느 제과점에 들어서자 대략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한 아줌마가 우리 부자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서 인사드리거라” 

 


진열대에 쌓여있는 형형색색의 빵들과 과자들에 정신 팔려있던 나는 아빠 말씀에 뒤늦게 인사 올렸다. 꾸벅, 안녕하세요.

 

그리고 아줌마를 보니 보통 엄마들과는 다르게 맑고 흰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 올림머리 모양새와 양장 옷차림이 멋지게 어울리는 영화 속 여인처럼 아름다웠지만 빵가게 안에 '물건'들 보단 못했던지 그날 저녁 쓰인 나의 일기장에는 아줌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오늘 아빠 따라갔던 빵 집에서 맛난 것들을 실컷 먹고 왔다”로 맺고 있었다.

 

아줌마는 빨개진 나의 얼굴을 몇 번이나 어루만져 주셨는데 바로 이 분이 아빠와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을 그때는 물론  몰랐었다. 그 후 몇 차롄가 더 만나고 나서 소낙비 내리던 어느 날 오후.  그녀가 노란 장화와 우비를 들고 학교로 오는  사건이 일어났다. 


급우들이 보내는 몹시 부러운 눈길 속에 나는 그녀의 호의를 한사코 사양하며 쏟아져 내리는 비속을 항해 뛰쳐나갔는데 그것은 쑥스러운 마음에서 그랬을지도, 어쩌면 살림에 바빠 단 한 번도 학교 방문을 못한 엄마자격을 대신하려는 그녀에 대한 본능적인 방어 의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녀는 한 달의 한번 꼴로 학교로 찾아와 단 한 번도 학교에 오신 적 없는 나의 엄마 노릇을 자처하며  본인  스스로 저 아이의 이모라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담임 여선생님과 이웃반 선생님들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내 게  그녀가 누구냐라는 질문을 던져 그냥 아빠가 아시는 아줌마라는 나의 대답으로 자신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켰고, 유난히 가는 눈을 가졌던  이웃반 여선생님은 아빠가 그 아줌마 댁에서 주무실 때도 있냐는 아이에게  차마 할 수 없는 야비한 질문으로 어른들의 세계를 모르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아줌마 가게에는 그 당시 귀한 물건에 속하던 축음기도  있었는데 그 시대 남녀들이 즐겨 듣던  가요 음반들이 자주 걸렸고 그중에서도 호반의 벤치 노래가 자주 흘러나왔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가요였던 것 같다.

우리 아빠가 어인 연유로 그녀의 벤치로  가게 되셨는지 알 길은 없지만  세상에 많고 많은 님들 중에  어쩌다가  그녀의 님이 되셨는지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혼란스러웠고 우리 반 아이들 보기가 부끄러웠다. 
 
남편을 육이오  난리통에 빼앗기고 나 보다 두 살 많았다는 아들마저 병으로 잃었다는  그녀.  남의 가정의 평화를 깨트리는 행실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싸늘한 눈총을 받았던  비운의 여인. 어쩌면 자신의 잃어버린 아들생각에  마치 자신의 아들인 양 따뜻한 정을 부어준 것은 아닐까?  
 
선생님들이 보내는 느끼한 눈총 속에서도 내 엄마 노릇을 그치지 않던 그녀는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신의 존재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셨던 어머니에게 찾아와 눈물로 사죄드렸단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들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을 하고 떠나셨다는  가련하신 나의 '이모님'..

 


“생각하면 그녀도 불쌍한 사람이었지. 나라고 속상하지 않았겠냐만 그저 참았지. 평생 동안 한 눈 파는 일 없이 오직 가정과 일만 아셨던 네 아버지였기에 그러다 말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그 여인이 스스로 그렇게 떠나가더구나. 공부도 많이 했다고 하고 인물도 참 좋았던 여자였는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네”  

차분하신 음성으로 그때의 사건을 회상하시는 어머니 얼굴에는  그 어떠한 분노나 원망의 그림자는 없으셨다. 하지만 아들의 나이 반백이 넘은 지금까지도 당신의 며느리에게 네 남편을 항상 조심하라고,  맘 놓고 살아서는 안된다고 누누이 당부하시는  모습을 뵐 때 아무래도 그때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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