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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로운 경험

사라진 보물

by Seresta 2023. 11. 2.

 

다국적 농약 회사에 들어가 새로 개발된 농약과 비료 목록을 들고 남미 오지로 다니다 보니 때로는 궂은비 만나 보름씩이나 발 묶인 적도 있었고  인디오 부락도 들어가 봤다. 덕분에 잊지 못할 추억들도 적지 않고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으면서도 가억속에서 지우고 싶은 추억은 내가 어느 인디오 부락에서 그곳 주민들로부터 몰매 맞은 사건이다.
 
어느 농장을 찾아가던  길에 우연히 알게 된 문제의 그 인디오 부락은 마치 한 세기 전의 시대로 들어가는 착각을 자아냈을 만큼  외딴 마을이었다.

전기도 없고 작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비포장 오솔길로 연결되어 있어  볼 일 없이는둘러 갈 이유가 없는 이곳을 내가 찾은 이유는 잠시 둘렀던 주유소에서 돠는 이 일대 강에서는 사금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모습도 다른 이방인이, 그것도 국적도 다른 외국인이 사금이 정말 강가에 깔렸는지 알아보겠다고 인디오 마을에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저 그곳에 인디오 족속들이 살고 있다니까 한번 보고 싶어 들어간 것뿐이었다. 
 
마을에 들어가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배타적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물 한잔 건넬 아량도 없는 듯했다. 벌거벗지만 않았을 뿐 원시인의 삶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그들의 집이라고 세운 건축물도 볼품없었고, 일궈놓은 푸성귀 밭을 보면 마치 어린애들의 장난같이 아주 엉성했지만 길가에서 주운 돌도끼는 쇠도끼 못지않은 예리함을 보여주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런데 한 손으로도 충분히 쥘 만한 크기의 이 돌도끼는 그들의 집집마다 마당 한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돌 연장 무더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돌도끼, 돌 칼, 돌그릇, 심지어 돌로 만든 삽에 이르기까지 돌 표면을 차돌처럼 매끈하게 다듬어 놓은 돌 연장들은 그러나 지금의 인디오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아득한 옛날, 누군가가 만들어 쓰던 것들을 지금의 인디오들이 밭 일구다가 나온 돌들을 주워서 한 군데로 모아놓은 것이라 했다.
 
" 밭 가는데  많이 힘들었다. 이것들 때문에. 우리가."
 
그들에게는 한낱 밭 가운데에 있어 김매는데 거 주장스러운 잡 돌이었고 밥벌이하다 말고 딴짓하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가치를 몰라보고 기껏 길에서 주운 돌도끼 한 개만 달랑 들고 마을을 벗어났으니 말이다.
 
그리고 또 한 세월이 지났다. 친구 하나가 우리 집 책 장 한 구석에 버려져있던 돌도끼를 보더니 매우 귀중한 역사적 유물이라며 유심히 관찰하는 꼴을 보고 그런 돌 어디에 가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고 했더니 친구의 눈이 둥그레졌다. 때는 바야흐로 골동품들의 전성시대. 잘만 하면 엄청난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돌도끼 수준이면 도매값으로 치더라도 개당 오백 달러는 너끈히 받을 수 있으니 돌 연장 가지러 가기를 재촉했다. 인디오들에게는 처치하기에도 곤란한 잡 돌들, 깨끗이 청소해 주는 대가로 일만 개만 주워 와도 10000 x 500$= 까악! 일순간에 오백만 달러를 번다는 계산이 나왔다.

 

나는 친구와 총이익금에서 6:4 비율로 나누기로 합의하고 다시 문서를 작성하여 쌍방이 사인하고 공증까지 마친 다음 우리는 황금향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자 흥겨운 노랫가락이 절로 나왔다. 비행시간 내내 내 몫으로 챙겨질 '삼백만 달러'를 [집 한 채의 가격이 고작 십여만 불 하던 이십 년 전의 가치] 어떻게 투자할지 궁리하다 보니 어느새 착륙 준비에 들어간다는 스튜어디스의 안내방송이 울려 나왔다.
 
우리는 작은 트럭을 빌려 타고 목적지로 출발했다. 하루 반 걸려서 돌 보물이 쌓여있던 그 인디오 부락 입구에 도착했는데 오솔길밖에 없던 부락에는 제법 넓은 신작로가 깔려 있었고 전깃줄도 보였으며 작은 캐누만 오가던 강에는 콘크리트 다리까지 놓여 있었으니 겨우 육 년 만에 천지가 개벽된 셈이다. 이웃 마을이 콩 농사로 크게 발전되면서 덤으로 발전된 듯했다.
 
큰 길이 닦이고 동네에 전기가 들어왔다면 좋은 현상이지 문명과 단절된 삶을 고수할 이유는 없겠지만 문제는 우리들의 보물, 그 많던 돌 연장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데 있었다.


 
"아니, 여기 그렇게 많이 쌓여있던 있던 그 돌 들은 다 어디에 있나?
"큰 기계에 넣어 모조리 부쉈어. 저기 저 다리 공사할 때. 시멘트랑 섞어 썼다. 근데 왜?."
 
예전에 쌓여있던 돌무더기의 행방을 묻자 앞니 빠진 중년 인디오가 두 팔로 한아름의 부피를 표현하고는 다시 양 손바닥으로 마주치며 돌 깨던 시늉을 하더니 마지막으로 거칠게 만든 다리를 지적하면서 왜 무슨 유감이라도 있냐는 듯이 인상까지 그어가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쯤에서 조용히 돌아섰다면 적어도 매 맞는 봉변만은 면 할 수 있었을 것을, 백만장자 꿈을 너무도 허망하게 놓친 친구는 그만 이성을 잃고 히스테리를 부려댔다. "아이고 이 바보 멍청이야. 그래 어디 쓸데가 없어 다리 놓는데 썼냐? 
 
아무리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길길이 뛰며 소리쳐대는 행위, 다 자기 보고 그런다는 것을 알아차린 인디오가 뭐라고 고함을 내지르자  건장한 사내들 넷이 앞집 옆집에서 튀어나오더니 단단한 사탕수수대를 몽둥이 삼아 마구  내려치는데 속도가 얼마나 빠르던지 바람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 자리에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아 있는 힘을 다하여 도망치는데도 집요하게 쫓아오면서 매질을 쉬지 않는 성난 인디오들. 서슬에 몇 대 얻어맞은 나와 친구의 등판은 금세 피투성이로 변했다. 마침 가까운 곳에 트럭이 서있었길래 망정이지 까딱 잘못되었으면 외딴 마을의 원혼이 되었으리라.
 
눈먼보물 얻으려다 매만 잔뜩 맞고 되돌아가는 친구와 나는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할 말은 많았기에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몰골을 겹눈질 하며 속으로만  읇조렸다.
 
'야 인마!너 때문에 돈만 쓰고 고생하고 매까지 맞고 돌아가는 거 알기는 아냐? “
'아무 말도 마라 자식아. 거기가 어디라고 주둥일 함부로 놀려 화를 자처했냐.'
 
일확천금의 꿈은 시대를 잘 못 만난 탓으로 허망하게 사라졌지만 그나마 단 한 개 갖고 있었던 돌도끼마저 몇 번 이사하는 통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보물 더미를 몰라봤던 본인이나, 그것들을 성가신 잡석으로 취급했던 인디오들이나 모두 똑같은 바보들이겠지만 친구를 잘못 만난 죄로 돈만 쓴 체 매만 실컷 맞고 돌아온 친구에게는 지금까지도 미안한 생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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