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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로운 경험

이민자의 보은

by Seresta 2023. 10. 17.

 


통상적으로 제한 속도 65마일 도시 주변의 순환 도로는 프리웨이로(freeway) , 제한속도 70~75마일의 도시를 벗어나는 도로는 하이웨이(highway)로 구분되는데 미국 내에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위성도시들이 많은 캘리포니아주의 시민들은 프리웨이 운전이 일상화되어 있고 미국 정착 후 지금까지 엘에이 카운티에서 살고 있는 나 역시도 예외가 아니라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Freeway 도로를 들쑥날쑥하며 지내는 중에 있다.

명칭은 고속도로지만 제한 속도는 교통체증이 없는 상태의 실제 평균 속도가 70~80마일 보다 한참 낮은 55마일이다 보니 대다수 운전자들 모두 상습적 속도위반 운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은 죄다 쌩쌩 질주하고 있는데 나 홀로 교통법 지키겠다고 서행운전을 일삼다가는 심각한 추돌사고 당 하게 될 확률은 그렇지 않은 타 운전자들. 빠르던 느리던 교통 흐름에 따라가는 운전자들보다 몇십 배 이상 높아질 것이 불 보듯 환하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의 운전은 속도가 빠른 만큼 사고도 잦아 내가 포착했던 사고 순간들만 해도 수십 건이 넘어가는데 대부분의 경우, 앞 차의 뒤를 바싹 붙어 따라가다가 추돌하거나 추돌을 피하려 옆 차선으로 삐져나가려다 그 차선에서 질주해 오던 자동차에 받혀 속절없이 뒤집히거나 받히는 힘에 밀려 또 다른 차를 들이박는 사고였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고 현장을 목격할 때마다 하고 또 하게 되는 생각이 있으니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인간은 무슨 큰일이 났다고 앞에 차 뒤를 죽자 사자 붙어가는 운전자들. 그런 차들을 옆 차선에서 보면 많아야 자동차 한 대 간격 거리밖에 되질 않는다.

 

어떤 가미가제 운전자는 앞 자동차 범퍼와 이, 삼 미터의 간격을 두고 70마일 속도로 달려가는 판국이니 한마디로 바짝 붙어감으로써 이미 자신의 생명까지 맡긴 앞차가 대형사고를 칠 때 자신도 따라서 칠 각오가 돼 있지 않다면 도저히 흉내조차 내지 못할 엽기적 운전 습관인데 문제의 심각성은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하는 위험천만한 운전으로 타인들의 안전운행 마저 훼손하는 그런 운전자들이 무진장 많다는 데 있다.

사고의 원인을 내가 모는 자동차가 아닌 정신 나간 자가 모는 자동차에서 비롯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나는 그래서 자동차 핸들을 잡는 순간 나의 시선은 정면에 50%. 나머지 50%는 양 옆 차선들과 백미러를 통한 후면을 수시로 점검하며 운전하는 습관을 들인 덕분으로 여러 차례나 사고 직전에서 피해 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내 뒤를 바싹 붙어 오는 차가 있을 경우 기회를 보아 다른 차선으로 옮겨가며 뒷 차를 앞으로 내보내고 양 옆의 두 차선 좌우로 오가며 달리는 차량들 대부분은 음주 운전 아니면 졸음운전 중에 있기에 그런 차량이 내 옆으로 몇 차선, 혹은 저만치 앞에서 떨어져 달릴지라도 언제 일어날지 모를 다중 충돌 대비를 위한 공간 모색하느라 잔뜩 긴장하게 된다.

언제나 조심스럽게 운전하는데도 걸핏하면 사고 내거나 당하는 운전자들도 있다. 그분들의 특징을 보면 한결같이 교통법규를 지나칠 정도로 잘 지키는 것과 타 운전자들 또한 자신들처럼 교통 법대로 운전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

사정이 그렇다 보니 저만치 신호등 파란 불빛이 노란빛으로 바꿔지는 순간 급정거를 시도하다가 뒤차에 추돌당하는 일이 빈번하고 빨강 불 신호동만 바라보다가 파랑 색깔로 바뀌어지는 즉시 상대방 운전자가 어련히 잘 지키지 않으리 라는 확고한 믿음 아래 확인도 하지 않고 출발하는 낙천적 운전 방식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자동차 운행 바닥이란 매우 유감스럽게도 무법적으로 운행하는 불량차량들도 활개 치는 정글과도 같은 곳. 잠깐 사이에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막 바꾸어진 신호등 앞에서도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달려오던 속도에 속도를 더하여 옆 신호등 앞에서 대기 중에 있던 운전자를 위협하며 그대로 지나치려던 자살 특공 차량에게 옆구리를 받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렇듯 운전자들의 방심과 이기심으로 비롯된 사고가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불행한 고통사고로 악화되면서 일하러 나갔다가 혹은 누구를 만나러 나갔다가. 심지어는 토요일 오후 맥도널드 샌드위치 사러 나갔다가 아빠가 햄버거 빵이랑 아이스크림을 기다리고 있는 어린 자녀들과 영영 만나지 못하는 엄청난 비극을 방지하려면 무조건 조심에 조심을 더 하는 것 외 다른 방법은 있을 수 없다.

고속도로를 운행하다 보면 가끔 트래픽 브레이크라고 순찰차량 지붕 위에서 빨강 파랑 불빛 번쩍이는 도로 경찰차 한대가 도로 전방에서 좌우로 지그재그 운행하면서 자동차 흐름을 급감시키는 광경을 보게 되는데 주로 도로 전방 특정 지점에 떨어져 있는 트럭 뒷칸에서 떨어져 나간 박스나 가구 같은 사고유발 가능성 물체를 치우기 위한 완전 정지를 위해. 또는 교통흐름이 지나치게 빠를 경우 사고예방 차원의 속도 저하를 위한 일련의 방법인데 매우 효과적이고 그럴 때의 커다란 선글라스 쓴 경관들의 모습이란 언제나 봐도 위엄이 있고  근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딱 한번! 앞으로도 다시는 하지 못 할 오직 나만의 트래픽 브레이크를 엘에이 순환고속도로 엘에이 다운타운에서 대략 이십 마일 정도 떨어진 210 freeway 몬로비아와 파사데나 중간지점에서 실천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보름달 빛이 유난히도 밝았던 2002년 여름. 당시 엘에이 인근 도시 글렌데일시에 살고 있던 나는 딸아이를 리버사이드 대학 기숙사로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일요일 어두운 밤의 프리웨이는 헤드라이트 불빛만 오고 가는 한적한 밤길. 리버사이드 W 60번 도로를 타고 거의 반시간 가량 결려 다시 W 210 도로로 순환하여 질주해 나가는데 하늘 높이 오른 보름달빛이 그렇지 않아도 나른했던 내 몸을 더욱 처지게 했다.

 

졸음을 쫓으려 듣다 만 시디플레이어를 작동시켜 볼륨을 올려 들으면서 가다 보니 어느새 605 도로를 건너 도로 우편에 자동차 딜러들 불빛이 환한 두아르테 시를 지나 먼로비아에서 아케디아로 막 진입하던 그 순간. 저만치 웬 낡아빠진 검은색 자동차 한 대가 도로 왼편 카플 라인 바로 옆 차선에서 대각선 맨 오른편 차선 방향으로 흔들거리며 달려가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중앙 차선으로 들어오는가 싶더니만 다시 카플 라인 방향으로 긴 대각선을 그리며 굴러가는 순간을 포착했던 나.

무엇에 씌어서 그랬는지 느닷없이 그동안 많이 보아왔던 도로 순찰차량들의 지그재그 운행을 본 따서 내 차의 비상 깜박등을 켜고 고대로 답습하자 뒤에서 달려오던 차량들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속도를 줄였고 내 차를 고속도로 정 중앙 위치에 옆으로 막아 세우자 5차선 가득 메운 뒤에 차량들 모두 비상등을 켜고 멈추는 대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에 한 껏 고무된 나는 무슨 교통경찰이라도 된 모양 차에서 나와 카플 차선 벽에 부딪쳐 정차하고 있는 사고차량에 다가서니 웬 아프리칸계 중년 아줌마가 자신의 머리를 핸들을 잡고 있는 두 손 사이에 파묻은 상태로 있었다.

얼마나 크게 놀랐는지 얼굴이 짙은 잿빛이 되어 반 실신 상태로 있는 그녀에게 아무 탈도 안 났으니 오른편 갓길로 가라고 지시하자 아무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놀란 아줌마. 자신의 차를 갓길로 옮기는 동안 나는 수많은 자동차 불빛의 하이라이트로 환하게 밝혀진 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사고 차량이 무사히 옮겨졌음을 확인 한 나는 내 자동차에 올라 출발하자 수십 야드 뒤편에 나란히 서있던 자동차들도 출발했는데 악 이삼 마일 동안 나 홀로 앞서 가고 뒤 편에 차량들이 5차선 나란히 간격을 두고 따라오는 별 희한한 광경(천하의 꼴불견)을 연출하다가 이내 정상으로 되돌아갔는데 나중에 가만 생각해 보니 하도 뻔뻔스러운 내 행동에 뒤따르던 운전자들 모두가 비번 중 교통경찰관쯤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완전히 미치지 않고서야 거기 가 어디라고. 내가 누구라고 겁도 없이 위험천만한 프리웨이 한복판에서 겨우 4기 통 캠리 자동차로 도로 순찰차 흉내를 다 냈단 말인가.

도로를 막고 활보 했을 때는 정신이 없어서 전혀 몰랐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서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나 홀로 운전하는 주제에 빠르게 달려야 할 카플 라인에서 오십마일 정도로 기어가고 있었고 액셀 밟은 다리는 또 얼마나 떨리던지 도무지 운전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간신히 갓길에다 비상등 키고 잠깐 세워놓았다가 파사데나 시내에 들어가 주유소에서 가스 채우고 커피 한잔 하면서 가까스로 진정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여 조금전의 영웅담을 신나게 설파하는 남편을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집사람. 평소 참견하기 좋아하는 내 성격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까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기가 막혀서 잘했다는 말도. 쓸데없는 일 했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있는 아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변명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만약 그 순간 그 곳을 지나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내가 차량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어떤 사태로 번져갔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엉뚱한 한마디 “우리 가족을 자유롭고 자녀들의 미래가 있는 이 땅에서 살게 해 준 미국에 대한 보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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