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

지중해 크루즈 여행 [에필로그]

by Seresta 2025. 5. 7.

        


              
                            
[우리 집에 왜 왔니?]
                        
인터넷 초창기 시절 1990년  이전까지만 해도 바다 건너 다른 나라들의 풍물이나 사람 사는 모습이 담긴  관련 책자들은 서점가 매상의 한 부분을 담당했었다.  

그런데 유튜브 구글 챗지피티가 현대인 삶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면서 인쇄된 서적들은 단 시간에 폐지로 전락되면서 구시대 유물로 전락되고 말았으니   앞으로 세상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는지 겁이 덜컥 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제 아무리 가상공간과 인공지능의 역할이 확장될지라도 인간의 역할을 대체할 수 없는 분야는 반드시 존재하는 법.  초섬세한 센서나 최첨단 인공지능이라도 불멸의 영혼과 오묘한 감성을 소유한 인간만이 느낄 수 있을 감각은 대신할 수 없기에  돈 쓰고 심신의 고달픔까지 감수하며 여행을 떠나는 것이리라.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남미와 북미 지역에서 살아온 나에게 있어 처음 가 보는 유럽은 생소하지 않았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성당 및 다양한 건축물.  온화한 날씨. 푸르고 아지자기한 산하.  짠내  없는 지중해 바다는 처음 봐서 이채로웠지만 홈타운 엘에이 지역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꼬마 차량들과 좁은 골목 길만 색다르고 이채로웠을 뿐 사람들의 모양새도 거의 같았고  옷차림이나 음식들도 별다르지 않았고 현지인에게 끌려 다니는 강아지들도 내가 사는 동네 개들과  비교해 헤어스타일과 옷차림만 조금 달랐을 뿐, 다 같은 녀석들이었다 

아침 인사말 하나 없이  앞만 바라보고 스쳐가는 한 현지인  모습에  우리 동네에서 잔디 깎으러 다니는 라티노가 생각나며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실없는 인간처럼 보일까 봐 애써 참아야 했다. 

기항지마다 고유의 가치와 풍부한 미적 감각으로 무장된 유적과 건축물이 곳곳에 널려있어  많은 탄성과 감동을 자아냈는데  너무나 많은 관광객들의 쇄도 때문인지 머나먼 타국에서 자신들이 사는 도시에 남아있는 위대했던 문명의 흔적을 관람하고자 찾아드는 관광객을 반기지 않았다.  

미소 없는 현지인들의 표정에서 관광사업으로 돈을 벌면서도 관광객 배척하려는 시민들의 이율배반적 태도를 느꼈고, 법치국가라고 자화자찬하는 도시들 마다 소매치기 단속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치안부재 속에서  관광객 스스로가 각자도생 하지 못한다면  최악의 경우 신나게 웃으며 여행 왔다가 여권, 돈  껍데기 모두 날리고 울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끔찍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현실도 염두에 둬야 했다. 

어려서부터 유럽을 동경해 오던 나에게 말로만 듣던 유럽의 쇠락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프고 괴로운 일이었다. 유럽은 과연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비록 예전의 영화는 되찾지 못한다 하도 현상유지는 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상당히 어렵겠다는 해답을 나는 이번 여행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제 발로 찾아드는 관광객 보기를 중남미 마야 원주민 보듯 멸시하는 시민들. 아주 먼 나라에서 날아온 관광객들이 자신들의 조상들이  지어 올린 건축물을 보며 감탄사를 멈추지 못한다면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아는 기본적 상식 아닐까?


그런데도  고마워 하기는커녕 마을의 평온을  파괴하는 이방인들로  몰아붙이며 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구호 외치고 물총까지 마구 쏴댄다면 아무리 관광에 반 미친 상태라 해도 누가 격전지처럼 살벌하게 변질된 장소를 찾으리오?


오전 일찍 항구에 기항하여 오후 여섯 시경에 다음 기항지로 출발하는 과정에서 낮동안 기항 지와 인근 유적지 투어를 하고 오후에 승선하는 크루즈여행의  일과는 거의 같았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 후 선내 프로그램도 좋고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 내게 가장 좋았던 부분은 넋이 나갈 정도로 멋진 경관이 있는 식당. 그리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발코니 넘어 바라보는 바다였다. 조식에는 커피 한 잔 들고 떠오른 태양빛에 반짝이는 바다 물결과  유적지 항구를 바라볼 때 전해오는 짜릿한 감동에 전율을 느낄 수 있었고 어둠이 깃든 저녁에는 같이 만 있어도  좋은 우리 세 커플의  담소는 항상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런데 어지럼 증세에 민감한 아내의 뱃멀미가 이번 크루즈 여행의 복병이었다. 몰타에서 하선할 바르셀로나로 되돌아오는 이틀간 항해 중 배가 많이 울렁대어 멀미를 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잠복중이던 이석증까지 터진 것.  이 멋진 유람선 안에서 이틀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침대에서 누워 꼼짝 못 했던 것.  

 

그리고 세월에 따른 변화인지 아니면 바다가 달라서 그런지 오래전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삼대양 바다를 항해했을 때는 지독한 바닷물 냄새 때문에 매우 힘들었었다. 남아메리카 비글 해협 항해 때도  염도는 덜 했어도 짠 냄새는 났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녀온 지중해 바다에는 그런 바닷물 냄새를 느끼지 못해 좀 이상했다


가는 곳마다  구경거리 천지였던 기항지 도시들. 그러나 그 많은 명소들 중 일부만 보고 되돌아서야만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많은 인원이 함께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많은 출발지연 사고 때문에 짜증 나고 속도 태웠으나 다 지나간 일. 이 또한 그리움으로 승화되었다, 


엘에이 출발부터 돌아올 때까지의 10박 11일 동안 운명의 공동체였던 우리 세 커플. 기쁨과 감동과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어 좋았고 기대와 낙심과 짜증까지도 함께 해서 더욱 기억에 남을 지중해 크루즈 여행.  왔던 곳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또 다른 의미의 행복을 깨달았다. 세상에는 아름답고 즐거운 곳들이 많다지만 내가  편히 쉬고 항상 아름다운 곳은 작은 내 집뿐이라는 사실을.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일차: 지중해 크루즈여행  (0) 2025.05.10
9,10일차: 지중해 크루즈 여행  (0) 2025.05.07
영혼이 머무는 계곡  (1) 2025.01.05
여행지에서 무전취식  (1) 2024.04.26
은광마을의 달 밝은 밤  (0) 2024.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