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남회귀선보다 남쪽 어느 지역에는 공룡들이 활보하던 때보다도 훨씬 더 이전 시대였던 중생기 때부터 지금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해 왔으리라고 추측되는 아주 괴상하게 생긴 소나무가 지금도 서식하고 있다.
1960년대 무렵만 해도 상당히 넓은 지역에 즐비하게 있었다는 이 소나무는 마지막 빙하시대 무렵에는 한반도 몇 배 면적과 맞먹는 넓이, 대략 백여만 평방 킬로미터 안에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고 하며 21세에 들어선지 이십 년도 더 지난 지금은 전성기에 비해 겨우 4%로 줄어들어(기후변화도 그렇지만 무분별한 벌목이 가장 큰 요인) 그대로 방치해 놓을 경우 얼마 못 가서 아주 멸종될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무늬도 아름답고 목질도 좋아서 건축과 가구 재료로 많이 쓰이는 이상한 모습의 소나무가 울창한 수풀을 이룰 수가 있었던 이유는 기후 토질도 잘 맞았지만 무엇보다도 고원지대이면서도 일조량과 강우량이 많은 그 지역 특유의 지형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는 것은 같은 나무를 다른 지방 다른 나라에다 심을 경우 나무의 모양이 아주 다르게 변질되는 퇴화현상을 보이다가 끝내는 열매조차 맺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이다.
브라질 남부 지역의 밀림지대는 물론, 초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거대한 버섯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우산 모양 같기도 한 신기한 모습의 소나무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 초원지대에서도 만날 수 있다.
소나무들이 밀집해 있는 숲 속으로 들어가 보면 이제 막 싹트고 나온 새싹 나무에서부터 대나무 굵기의 어린 나무, 그리고 직경 수 십 센티미터에서부터 크게는 몇 아름은 족히 돼 보이는 수 백 년 이상 묵은 침엽수들이 하늘 드높이 솟아있고 나무 밑둥치의 굵기와 중간지점 굵기가 거의 같아 마치 커다란 통나무처럼 보이는 몸통 위쪽에는 솔닢 뭉치들이 활짝 펼쳐진 커다란 우산처럼 사방팔방 수평으로 죽 뻗어나간 가지마다 듬성듬성 달려있다.
울창한 소나무 단지들 가운데는 수명을 다하여 바닥에 쓰러진 체 얼마나 오래됐는지 바삭 삭아있는 상태에도 짙푸른 이끼에 쌓여 바닥에 누워있는 높이 일 미터 길이 이십 미터 훌쩍 넘는 거대한 몸통 군데군데마다 개구리참외 만한 크기의 관솔들을 고스란히 드러낸 박혀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상아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전설의 코끼리 무덤을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킨다.
어릴 적에는 크리스마스 츄리 비스름한 모습을 지녔다가 한 삼사십 년 이상쯤 자라야 제 모습으로 변해 간다는 이 아름다운 소나무는 Araucaria angustifolia라는 학명을 가졌으며 성목이 되면 해마다 적게는 오륙십 개. 많게는 일이백 개의 (최대 기록은 900개 이상) 축구공 보다 조금 작은 '솔방울'들이 송송 맺히는데 속에는 도토리보다 두 배나 큰 거대한 '잣'들이 오십 개 정도 차곡차곡 쌓여있다.
맛은 일반 잣 같지는 않고 뭐랄까… 밤을 생으로 먹는 맛과 약간 흡사하면서도 쌉쌀하고 떫은맛이 도는 정도? 그래서 생으로는 먹기에는 쓰고 떫어서 주로 굽거나 쪄서 먹게 되는데 갓 쪄낸 대형 잣의 껍질을 벗겨내고 소금에 찍어 먹는 맛은 상당히 쫀득하고 고소하며 감칠맛까지 더해 그 오묘한 삭감이며 맛이며 다른 무엇과는 비교할 수 없을 독특한 맛을 지녔다.
게다가 백 개를 땅속에 파묻어놓으면 백 개의 싹이 나올 만큼 번식능력이 우수하지만 맛이 좋고 영양가 높은 열매가 땅으로 떨어지면 즉각 작은 짐승들과 새들의 먹이로 변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 이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정된 지역도 아닌 한반도 몇 배가 되는 드넓은 지역에서 열매가 땅속에 묻혀 번식할 수 있었는지는 오랜 기간 동안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가 까마귀와 아주 흡사하게 생긴 까마귀과에 속한다는 파랑새가 [현지어 gralha-azul, 영어 Azure jay 학술용어 Cyanocorax caeruleus] 번식의 요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머리도 나쁜 주제에 그저 욕심만 많다 보니 행여라도 딴 새들에게 빼앗길까 염려되어 숲 속 이 구석 저 구석에다 땅을 파해 치고 한 두 알씩 감춘다는데 새 한 마리가 한철 동안 저장해 놓고 못 찾는 열매 숫자가 자그마치 수 백개 이상.
땅속에 파묻힌 그것들은 비 한번 맞으면 싹트기 마련이고 더욱 자세히 설명하자면 그 이틀 전에 열심히 묻어놓은 열매들은 다음날 되면 잊어버리고, 어제 온종일 땀 흘려서 묻어놓았던 열매는 오늘 싹 까먹고......
이렇듯 욕심 많은 '파마귀'한 마리가 묻어놓고 까먹는 열매들이 한 해 동안에 적어도 수 백개 이상 된다고 가정해 볼 때 수십 수백만 마리가 작업할 경우 얼마나 많은 열매들이 싹을 트게 될런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겠다.
파랑새의 중요성을 뒤늦게 알게 된 브라질 당국은 절대 보호대상으로 지정하여 개수 증가에 무진 애를 쓰고 있다지만 오염된 환경으로 인해 쉽게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줄었다니 남의 나라 일이라 해도 상당히 아깝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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