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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시간여행자의 고국 방문

by Seresta 2023. 11. 24.

 

해외 한인 신분으로 처음 모국 방문했던 때는 전년에 터졌던 외환위기가 거의 극복되어 가고 프랑스 월드컵 대회가 한창이던 1998년 유월 초였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서울 한강의 건너편 일대가 과수원과 채소밭 일색이었던 시절, 어린 나이에 부모남 따라 이민 나갔다가 무려 33년이나 지난 사십 중반의 나이가 되어  고국방문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면 세상 모든 영상물들이 모여있다는 유튜브에서 조차 쉽게 찾을 수 없을, 거의 타임머신으로 한순간에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 수준의 고국 나들이였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듯싶다.

엘에이 공항을 떠났던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했던 시간은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였고 모든 입국 수속 절차를 마치고 예약된 호텔이 위치한 신사동으로 가는 택시에 올랐을 때는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이었다.

퇴근길 승용차들 및 버스들마다 가득가득 실려있는 승객들과 길가를 오가는 행인들의 새까만 머리칼 물결에 절로 나는 탄성을 금할 수 없었고 택시가 신호등 앞에서 정차하기가 무섭게 줄지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의 별 차이 나지 않은 체격과  엇비슷한 생김새와  옷차림들이 신기했을 정도로 나는 이미 다양한 종류의 인간들과 인종들이 모여 사는 환경에 길들여진 이방인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완전히 다른 도시처럼 변해버린 서울 하늘 아래서 지난날 내가 살던 때의 모습을 찾으려 예전에 살던 동네 일대를  샅샅이 돌아보았지만 기억 속의 모습과 일치되는  장소는 단 한 군데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다니던 초등학교 건물과 조회가 열리던 운동장의 황당한 변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생소한 건물들로 채워져 버린 교정 뒤편에 태곳적부터 솟아나 있다가 쑥돌 채석장으로 사용하던 일명 돌산으로 불리던 작은 뫼 정도가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가 꿈이 아닌 실체라는 점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꿈에서 갓 깨어난 사람 모양   마음마저 몽롱해진 나는 학교 교무실을 찾아   업무 중에 있던 학교 직원에게  나의 재학 당시의 교적 열람을 부탁했지만 너무 오래된 교적들은  없으니 담당 교육청에다 문의해 보시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반나절 넘게 걸었어도 찾을 수 없던  옛 동네 모습들.  마치 딴 세상에 살다 온 사람모양 정신 나가있던 내가 냉엄한 현실로 돌아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동네 어느 다방 안에서 들었던 사장과 종업원 간에 대화였다. 

몇 시간 내내 물 한잔 마시지 않고 걷다 보니 목이 타올라서 탐방 목록 상위에 끼어있는 다방을 찾으려니  카페 간판을 단 신종류의 찻집들만 눈에 뜨일 뿐 다방이란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커피와 우유와 쌍화차를 비롯하여 다방에서만 판매하던 다양한 차들.  설탕과 크림을 넣어서 달콤해진 커피에다 날 계란 노른자를 넣고 입 맛에 따라 참기름까지 한두 방울까지 첨가됐던 K-모닝커피는  암묵적으로 다방 출입이 금지되었던 그 시절 어린이들의 로망이었다.

 

카페 간판을 단 찻집들만 눈에 뜨일 뿐 기억 속의 다방 간판은 보이질 않아서 단념하려던  바로 그때 무슨 다방이라는 글자가 붙은 간판이 기적처럼 나타나는 게 아닌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 듯 반가운 마음으로 입구에  들어서니 다방은 계단 아래층 지하실에 위치해 있었고 널찍한 실내에는  다량의 탁자 소파들로 꾸며져 있었다

따가운 햇볕아래서 장시간을 걸으며 땀 깨나 흘렸던 터라 얼음 넣은 미숫가루 음료 한 컵을 주문하여 단번에 마시고 다시 커피 한잔을 주문해 놓고 여유를 가지고 사방을 돌아보자니 한가한 시간대라 그런지  넓은 다방 안에는 오직 방금 들어온 나. 그리고 맞은편 저리에 앉아서 서류뭉치를 앞에 두고 계산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오십 대 여인뿐이었다. 

커피 잔 들고 온 여종업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예전에 이 지역 어디쯤에서 살던 사람인데  너무 오래되어 그런지 어디가 어딘지 몰라 도저히 못 찾겠고 지형조차 변했는지 이 근방 큰 길가에 있던 큰 건물이었던 극장마저도 못 찾겠다. 학교 가는 길목에 있던 높다란 돌계단만은 분명히 어디엔가 있을 법 한데  어느 쪽으로 가야 찾을 수 있을지 조언을 부탁하니 이십 중반쯤으로 보이는 그녀의 대답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했다.


자기는 이 동네에서 나서 자란 토박이라 웬만한 장소는 잘 아는데 언급하신 장소들은 전혀  본 기억이 없어서 모른다는 것.  그리고 출입구 카운터에 앉아있는 중년 여사장에게 가더니 나를 힐끗힐끗 바라보면서 쏙닥이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대놓고 사람 쳐다보는 모습에 기분  나빠진 나는 절반도 못 마신 커피를 남기며 계산서를 요구하던 순간,  맞은편 구석 자리에서 계산기만 두드리던 중년의 아줌마가  말하기를  방금 거론하신 동네 집들은 대형 아파트 단지 공사로 인해  몽땅 철거되어 집 터까지 몽땅 밀어졌고 극장은  오래전에 과일과 채소를 주로  판매하는 마켓으로 바뀌어졌다가 지금은 재개발을 위해 폐쇄되어 방치 중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비록 이 동네에 살지는 않았지만 어렸을 적 이모님네가 이 근방에 사셨기에 자주 왔었노라고. 그래서 그 시절 모습을 기억했노라며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 작년 초 정도만 오셨더라도 많이 변형되긴 했지만 축대 높은 집들의 면모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고마운 정보를 알려준 중년 여인에게 감사의 말을 드린 나. 그런데 서둘러 계산을 끝내고 입구를 향 한 계단을 오르는 와중에 들려온 종업원과 여사장 사이에 오가는 대화 내용이 기관이었다.

“처음 보는 저 손님 많아봐야 사십 초반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데 수십 년 전 동네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뭘까요”? 
“옷 입은 모습을 보면 해외교포 같은데 비행기만 타면 당일  날아오는 세월에 저렇게 오랫동안 나가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어느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가 풀려나온 장기수? 어쩌면  북한 간첩 일 지도 모르겠네."

나가는 손님 등 뒤에서 전과자 간첩 운운했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행동이 무언가 수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그녀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문득 젊은 어부가 낚시에 걸린  거북 형상으로 둔갑한 용왕 딸을 풀어준 대가로 바닷속 호화 생활을 누리다가 옛 모습이 사라진 삼백 년 후 세상으로  돌아와 망연자실했다는 우라시마 타로 사연이 생각나서 옛 흔적 찾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고국의 동포들과 똑같은 머리칼 피부 색깔을 지녔고 같은 언어와 문자와 문화를 구사하고 공유하지만  표현 방법에 있어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문화와 풍습이 다른 환경에서 다져진 습관 때문 일 것이다.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행인들에게 인사를 건네었을 적에 무표정하고 냉담한 반응을 받은 이유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어딘가 불량스럽게 보이는 나의 청바지와 흰 티셔츠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삼십여 년 만에 찾았던 나의 고국.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의 모습들은 자유로워 보였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어디를 가더라도 나의 비슷한 사람들 내 친구들과 닮은 사람들만 만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그렇게 수십 년 만에 시작된 고국 방문은 그 이후 이, 삼 년 간격으로 반복되면서 처음 느꼈던 생경감과 이질감은 많이 사라져서 좋기는 한데 처음 방문했을 당시 느꼈던 감동과 감격마저 사라져 가는 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