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선배는 아무개라는 말을 자주 함으로써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미스터 김의 학창 시절은 반 평균에서 약간 밑 도는 성적으로 공부 못 하는 학생으로 분류되었다.
평소 학교 선생님들 및 급우들 과의 관계도 무난한 편이었고 가정 형편도 나쁘지 않은 상황인데도 공부를 못했다면 분명 그만이 아는 남 모를 사정이 있었으리라.
그가 지방 대학에 나와 군복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취직 전선에 뛰어들었으나 변변치 못한 경력 때문인지 친구들은 모두 취직하고 더러는 짝을 만나 가정도 이루는데 오직 미스터김 만이 취직을 못하여 부모님의 속을 태워주었던 그가 친척의 후원으로 취직 한 곳은 유통업계에서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는 회사였다.
그런데 그가 취직 할수 있던 이유가 창업주의 조카 뻘 되는 영업부장이 부서직원들을 못살게 군다는 소문 때문이라는 말이 사내에 파다했을 정도로 미스터김의 간판은 변변치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는 드디어 취직하여 그 간의 백수 설움을 만회하려는 듯 각별한 각오와 무서운 열정으로 적응을 해 나갔고 그의 그런 열성근무 덕분인지 입사한 지 삼 년 만에 과장을 거쳐 부장자리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면서 삶도 안정되고 저축도 다달이 늘어갔다.
그렇듯 살만해 지니까 이번에는 마땅한 결혼 상대자가 나타나질 않아서 자신과 부모님의 속을 썩여주었다. 안정된 직장에다 저축도 꽤 있어. 사람 성실하지 성격마저 좋은 미스터김은 누가 보더라도 참 좋은 신랑감인데도 미간과 눈가에 새겨진 주름과 안경착용의 부작용으로 살짝 돌출된 두 눈이 딱 어항 속에 흑붕어 눈깔을 연상케 하는 바람에 선 만 봤다 하면 커피 한 잔으로 끝내다 보니 그의 선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항상 짧았다.
미스터 김은 지방에 새로 신설된 상점에 점장으로 가게 되었다. 결코 승진이라고 볼 수 없는 전근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반겼다. 다람쥐 채바퀴 돌 듯하던 일상생활에 변화가 생기게 되어 좋았고 무엇보다 새로운 환경에서 운명의 짝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어떤 기대감 때문이었다.
사람은 종종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는데 정말 그의 연분은 그의 숙소와 길 하나 건너편에 위치한 식당 안에 숨어있긴 했다. 자체 건물에서 한정식 식당을 운영하는 최 사장님에게는 미혼의 딸이 셋이나 있는데 그중에서도 첫째는 혼기가 꽉 차서 넘칠 지경인데도 시집을 못 가서 조만간에 노처녀 대열에 들어설 차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빠 랑 가장 많이 닮았다는 첫째의 관한 이야기를 들은 미스터김은 반드시 짝을 찾고야 말겠다는 각별한 각오 아래 주말 단 하루 재외시킨 월화수목금토 한 주일에 엿새 동안의 저녁식사를 꼭 최사장님 대박식당에서 해결하는 공로를 인정받아서 창 가 바로 옆 자리를 전속 배정받는 강력 단골로 변신했다.
그런데 곱상한 부인과는 다른 주인장님의 두툼한 코가 이 집의 인기 메뉴인 보쌈 용 수육의 재료의 코를 연상 케해서 아빠 닮았다는 맏따님을 마음에 담은 노총각의 마음을 심란 케 해주었다.
어느새 그가 식당에 출근 도장 찍은 지도 어언 넉 달.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거의 개근하다 보니 가끔 나타나 부모를 돕는 둘째와 막내는 몇 번 봤는데 유독 회사 다닌다는 첫째 딸은 단 한 번도 볼 수 없어 암암리에 자신의 여자로 표적 삼은 총각의 조바심은 날로 늘어갔다.
그러다 비 내리던 어느 날 오후, 식당에 막 도착하여 쓰고 있던 우산을 접고 들어가려던 순간 몇 걸음 앞 식당에 길바닥에 고인 빗물에 미끄러져 펑 젖은 바닥 위에 엎어져 어쩔 줄 모르고 있는 한 여성을 목격 한 즉시 달려가 일으켜 주었고 그녀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급히 나가다가 문밖에서 넘어져 다시 돌아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아프고 창피해서 죽겠는데 갑자기 웬 녀석이 다가오더니 제가 날 언제 날 봤다고 허리를 덥석 잡아 안더니....." 그녀의 신경질은 거기서 뚝 끊어졌다. 어기적대며 들어오는 미스터 김을 보았음이다. 그는 방금 전에 상황을 즉각 재현하며 결사적으로 변명했다.
“어! 절대로 아니에요. 저는 다만 이렇게(양손을 허공 속에 그려진 가상의 여인 허리춤에다 대며) 잡고 올렸지 누굴 껴안거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총각의 어설픈 재연 시도가 조금 웃겼는지 뾰로통 해 있던 그녀가 샐쭉 웃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이 집 큰 딸의 모습. 숱 많은 단발머리에 하얀 피부. 게다가 두 눈 마저 맑고 아름다운 미녀가 아닌가?
혹시나 해서 처녀의 코를 봐도 아빠 돼지코와는 완전히 달라서 첫눈에 홀딱 반해버린 미스터김. 벅차오른 감격을 못 이겨 이성마저 마비된 노총각 미스터김은 모녀 앞에 털썩 꿇고는 무엇에 홀린 듯 집안의 내력과 자신의 이력을 고 하고는 엽기적인 청혼을 했다.
"이러저러해서 결혼할 준비는 다 되었는데. 그래서 집에서도 빨리 가라는 재촉이 심한데도 마땅한 배필이 없어 이날까지 독신으로 살아오다가 이 댁 따님이 과년하다는 소문을 듣고 몇 달 전부터 작심을 하고…“
갑자기 목이 메어오는지 하던 말을 중지하고 죄지은 사람 모양 고개만 떨쿠고 있는 미스터김의 어깨는 떨리고 있었다.
"이건 또 뭐지? 난 당신이란 사람을 처음 보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 누굴 아무나 집적대도 되는 여자로 착각한 듯한데요 사람 잘 못 봤어!”
“얘야 네가 좀 참으렴 이 청년 우리 집 단골손님이란다.”
“야! 거기 무슨 소란들이냐?”
“아빠! 여기 이 이상한 사람 혼 좀 내줘요”
난생처음 받는 프러포즈를 생판 모르는 사람. 첫눈에 봐도 호감 가지 않는 생소한 남자로부터 받는 황당한 상황에 어이없고 약이 올라 잔뜩 부어오른 딸은 옷 갈아입기 무섭게 독기 어린 눈초리로 낯선 청년을 한번 째려본 다음 휘잉~ 나가버렸고 최 사장 내외분만 식탁 위에 엎드린 총각의 초라한 뒷모습만 물끄러미 보고 있다.
“저 총각 사거리에 새로 개장된 상점의 점장이라고?”
“몇 번 가봤는데 맞아요”
"볼품은 없는데 성실한 구석은 보여”
“당신 혹시?”
"임자는 좀 가만있어요. 그 아이 성격이 어디 보통이래야 말이지. 그 아이가 맞선 본 게 벌써 몇 번째야?”
“그게 다 당신 닮아 그래요. 그 불같이 성급한 성깔 하며 거친 말투 하며. 오죽하면 온 동네에 소문이 다 났겠수.”
"그런 말 마시오. 그래도 뒤끝은 없고 마음도 너그러운 아이지. 그나저나 이제는 보낼 때가 되었어.”
시간이 조금 지나고 호젓한 식당 안에도 손님들이 몰려온다. 옆 테이블에는 한 무리의 남녀가 앉아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원샷을 연발하고 있고, 앞 테이블에도 한 쌍의 젊은 부부가 어린 딸과 함께 음식 먹기에 열중하는, 옆에도 앞에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앉아있건만 저 혼자 앉은 손님은 언제나 그랬듯 노총각 한 사람.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깊은 감격 속에 얼떨결에 튀어나온 청혼, 이제 몽상에서 깨어나 제정신 갖고 앉아있는 자리가 마치 바늘방석 위에 앉아 있는 듯 몹시 괴롭고 슬퍼서 칵 죽고 싶은 생각만 가득 차오른다.
꼴좋다! 내 주제에 청혼은 무슨 얼어 죽을 청혼." 스스로를 마구 학대하면서 박차고 나갈 기회만 보고 있을 무렵, 그 집 막내딸이 미처 주문하지도 않은 늘 먹는 요리에다 돼지수육 한 접시와 뜨겁게 데운 정종 한 병을 곁들어 가져왔다.
"오늘은 엄마가 그냥 보내드리라고 했어요. 울 언니 좀 까다롭게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은데.... 아저씨 잘해보세요 그래야 저도 빨리 시집가죠."
그제야 고개를 든 노총각, 감사와 부끄러움으로 눈까지 빨개진 미스터김에게 저 편에 앉아있는 주인 영감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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