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에 태어나 열두 살 조금 더 지나서야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그 나이에 이르도록 우리 집에서그다지 멀지 않던 뚝섬 인근의 한강수 맑은 물만 보고 살다가 나의 모든 시야각을 채워버린 하늘과 맞닿은 바다의 엄청난 위용. 세상을 온통 물로 가득 채운 듯한 짙푸른 물결 물결들의 일렁임을 처음 보던 순간 마치 고압의 전류가 온몸을 관통하는 듯했던 충격적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내가 바다를 난생처음 보고 놀랐던 시기에 엄청난 첫 경험을 겪은 일이 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안경 너머 펼쳐진 선명한 세상의 모습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사물을 바라볼 때 눈을 찌푸리게 되었고 햇빛살이 너무 강렬하게 느껴져서 사진 찍을 때는 아예 두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학교 자연시간에 배웠던 밤하늘의 떠있다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과 활 모양새와 비슷하다는 카시오페아 별자리는 고사하고 미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별들의 반짝임도 내 눈에는 보이질 않아 늘 답답했다.
이쯤 되면 당연히 시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건만 행 인지 불행인지 나 도, 안경 착용자가 없는 우리 가족들도 모르고 지냈으니 아무리 사는 게 바빠 식구 많은 집 아이의 시력까지 신경 써줄 여력이 없던 시절이라 해도, 지나치게 무관심했다는 비난만큼은 면할 수 없으리라.
작은 키로 인해 매 학년마다 앞자리로 배정되어 칠판의 분필 글씨 보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고 매년 시행되는 시력검사받을 때도 일종의 학력 시험으로 잘 못 알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시력 테스트에 일렬로 적힌 숫자들과 부호들을 외워서 검안받은 덕분으로 언제나 정상 시력 수치 1,2를. 어떤 해는 시력 1.5라는 최정상 시력을 평가를 받은 것도. 학교에도 우리 집안에도 안경 착용자가 거의 없다시피 하던 시대 상황도 나의 약한 시력을 인지하는데 지대한 방해 요소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사물을 볼 때마다 인상 쓰는 내 모습에 놀란 우리 큰 누나가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갔던 명동 어느 안경점에서 맞춘 안겨을 착용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창밖으로 바라보았던 세상은 그때까지 보아왔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투명한 세상이었다. 너무나도 맑고 깨끗하게 보이는 오색 찬란한 네온 불빛 사이에 나타난 또렷한 글씨와 그림들. 선명하게 드러난 형형색색 온갖 디자인의 불빛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나는 연신 탄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집에 도착 한 후 고개를 들어 바라본 밤하늘의 놀라운 실체. 말로만 듣던 은빛 은하수와 더불어 전 하늘 공간을 가득 메운 별들의 반짝임을 난생처음 보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는데 처음 바다를 봤을 때 느꼈던 엄청난 놀람이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 때문이었다면 시력 교정 후 새롭게 발견한 세상 모습이 내게 던져준 감동은 알면서도 몰랐던. 그런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마치 시각장애자가 개안 수술을 받고 처음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었으리라.
처음 느껴 보는 가슴 설렘.
처음 겪는 커다란 좌절감.
처음 오른 비행기 이륙 순간의 두려움이 동반되던 감동
첫사랑의 환희와 첫 이별의 슬픔.
내가 살면서 겪어 온 수많은 첫 경험 중에는 누구라도 겪으며 사는 필연성 경험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아무나 쉽게 겪을 수 없을 나 만의 특별한 경험도 있을 것이고 또 간절히 겪고 싶었지만 혹은 능력이 되지 않아. 혹은 기회가 닿지 않아 지나쳐 간 첫 경험들도 많을 듯싶다.
내 비록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고 입으로 맛보며 살던 아날로그 시절의 생동감은 없을지라도 온라인 영상을 통 해 간접적 체험을 할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에 많은 위안이 되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 삶에 오직 한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죽음이라는 첫 경험만은 무섭고 두렵게 다가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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