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착륙 직전 기내 창 밖으로 바라본 엘 칼라화테의 첫인상은 장엄한 산들과 호수들 위용에 눌린 얌전한 모습.
상주인구 25,000명의 이 작은 도시는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 로스 글래시아레스 국립공원 Parque Nacional Los Glaciares 빙하와 호수로 가는 입구에 세워진 이 도시는 하얀 만년설로 뒤 덮인 안데스 산맥의 설산들을 배경으로 좁은 강으로 연결된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큰 호수 아르헨티노 호수 (Lago Argentino)
두 번째로 큰 비에드마 호수 (LagoViedma)와 폭 5km, 높이 60m의 위용을 자랑하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 Glaciar Perito Moreno 이외에도 거의 오십 군데의 크고 작은 빙하가 모두 자동차 거리 반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전국 각지에서 날아오는 제법 큰 규모의 공항도 있어 버스로 세 시간 남짓 거리 파타고니아의 명산 피츠로이의 마을 엘 찰텐 마을로 향하는 중간 기착지 역할도 하는 중견급 관광도시로 성장하면서 지구촌 산악인 및 여행자들 사이에 잘 알려진 명소로 격상되었다.
도착 첫날 뒤뜰이 프랑스 화가 밀레의 그림들의 배경을 연상케 하는 호텔방에다 짐을 풀어놓고 다운타운에 나갔는데 임자 없는 개들이 얼마나 많은지 걸을 때마다 길바닥에 누워있는 개를 피해 다닐 정도였다. 덩치만 클 뿐 순한 행동거지와 또랑또랑한 착한 눈망울로서 여행객들의 적선을 바라는 거리의 개들. 한여름에도 몸이 떨릴 정도로 추운 이 거리 어느 곳에서 밤을 지새우는지 궁금하면서도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송년을 보내는 여행객들로 분주한 가로수 우거진 거리. 처음 만나는 장소지만 다시 또 오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꽤 늦은 저녁인데도 여전히 밝은 거리의 사방을 둘러보며 호기심과 어떤 아쉬움에 한 걸음, 두 걸음, 아끼는 마음으로 걸었다.
칼라파테 이튿날 아침 우리 일행은 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 내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향하는 투어 버스에 올라 출발 한 지 반시간만에 아르헨티노 호수 항구에 도착하여 빙하로 떠가는 유람선에 승선했다.
관광객들로 빼곡 채워진 유람선은 Los Angeles city 보다 넓은 1,466 km² 면적에 길이 125 km. 최대 20 km 폭에 평균 깊이 150m의 바다 같은 호수 위를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출발한 지 반시간 지나자 호수 양편 산들의 눈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한 시간쯤 지나니 눈 덮인 산들 사이에 하얀 빙하의 모습과 호수 수면 위에 군데군데 떠있는, 빙산이라기에는 너무나 작고 떠있는 얼음이라고 부르기에는 엄청나게 큰 ‘작은 빙산’들과 어우러져 영상에서나 볼 수 있던 극지대의 장면들을 고스란히 재생하고 있었다.
도저히 현실 같지 않은 환상적 세상. 짙은 안갯속에서 드러내기 시작하는 형이하학 적 경관에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것 같아 선실에서 나와 뱃머리 간판으로 나아가려는데 바람이 얼마나 강하고 차가왔던지 나의 몸 전체를 일순간 얼려버리는 것 같아 황급히 선실로 되돌아왔다.
호숫가 항구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배는 빙하 근처에서 멈췄고 선내 관광객들은 사진 찍느라 아우성이었다. 산 중턱서부터 내리깔려있는 백색의 거대한 빙판. 빙하와 빙하 틈새 사이에서 살짝 드러낸 얼음 덩어리의 파란 색상을 어떤 물감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사전 예약할 당시 빙하 위 왕복 세 시간 코스의 트래킹도 신청했지만 65세 미만이라는 나이 컷라인에 걸려 선상투어로 만족해야 했으니 세상에 10km 정도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도 걸을 수 있을 체력을 지닌 내가 나이 들었다고 거절당한 관광코스는 또 처음.
빙하 바로 앞에서 반 시간 정도 머물렀던 유람선은 선수를 돌려 항구로 되돌아왔고 세 사람으로 형성된 우리 알행은 이튿날 아침, 버스로 세 시간 거리에 위치한 산마을. 산악인들이 세우고 발전시킨 아담한 청정 관광도시. 파타고니아의 상징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섯 봉우리들 중에 하나로 꼽히는 피츠로이산을 보기 위해 엘 찰텐(El Chalten)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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