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에이 공항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하루하루 그날이 그날처럼 지내는 것이 습관화되어 어디에 떠나는 것 마저 귀찮아하던 내가 미처 예정에도 없던 유람선을 타게 된 데에는 순전히 평소 친분이 두터운 두 분의 권유 덕분이다.
한인 여행사에서 주관하는 크루즈 여행에 온유한 성품에 절제된 삶을 살며 가정에 충실한 두 내외분과 함께 한다면 상당히 편안하고 여행이 되리라는 점도 잘 알고 있었으나 도무지 어디를 떠나기 귀찮아하는 집돌이 성향이 짙은 나였기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핑곗거리를 궁리하고 있을 때 그래도 나보다는 조금 나은 집사람의 결단으로 이번에 안 갔더라면 평생 못 가봤을 멋진 장소들을 보고 돌아왔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여행을 결심하여 실행에 옮기고 떠나기까지 모든 절차는 일사천리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예정된 날짜 시간에 맞춰 엘에이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우리와 함께 떠날 가이드, 삼십 명의 미주 한인들과 합류했고 그중에는 동부 뉴욕에서 오신 몇몇 분도 섞여있었다.

여행자의 꿈을 싣고 이륙한 에어버스는 13시간 순항 끝에 경유지 마드리드 공항에 착륙한 우리는 즉각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 환승해서 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그리고 입국 수속 마친후 출구를 나와 한인 현지가이드와 앞서 나왔던 사람들과 합류하여 인원수를 헤아려 보니 한 사람이 모자라 다시 한번, 그리고 두 번 헤아려 봐도 합계는 마찬가지. 그제사 일행 중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자기 아내가 카트 밀면서 자기 뒤를 잘 따라오길래 먼저 나와 뒤돌아 보니 사라졌다는 것.
가이드와 여럿이 실종자 찾아 나섰지만 한번 사라진 비운의 여성은 좀처럼 나타날 기미가 없어 모두의 가슴을 떨리게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모자라서 예정되었던 구엘 공원 투어에 차질을 빚을까 걱정하던 차였다.
단 한 사람의 행방모연으로 공항 밖에도 못 나가고 있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기에 출구옆 한 모퉁에 모여 속 타는 가슴을 쥐어짜고 있었을 때 들려오는 복음과도 같은 소리. ”여기 찾았어요” 저만치 한 중년여성이 짐 가득 실린 카트를 밀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크루즈 선박안에서 셀폰을 쓰려면 날마다 12유로씩 지불하면 된다. 그런데 고작 통화나 메시지 전송에 쓸모 있을 3G 짜리 구린 와이파이 구입을 위해 바가지 요금 지불하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날마다 바뀌어지는 기항지에서의 셀폰 사용을 위하여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러야 할까?
그래서 인솔자 가이드 외, 일반 크루즈여행자들은 현지 식당이나 카페에서 와이파이로 연결하여 잠깐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보니 인솔자 밖으로 나오는 그 순간부터 셀폰은 100퍼센트 사진 영상 찍는 기계로 변하면서 한눈팔다가 행렬에서 떨어지면 바로 그 순간부터 서로 찾아다니느라 생난리를 피우게 되는 것}
일행은 더 늦을세라 허겁지겁 준비된 버스에 올라 목적지에 도착해 뒤늦은 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전경이 펼쳐 보이는 언덕 위 구엘 공원에는 스페인이 낳은 명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했다는 수십 체 주택들과 여러 건축물과 기화요초로 꾸며져 있어 늦은 오후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입장하려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현지가이드는 날치기 소매치기 조심을 몇 번씩이나 당부한다
그런데 도둑들이 얼마나 많으면 버스 출발 때부터 공원 입장을 기다리는 지금까지 가이드의 소지품 주의 경고를 들어야 하나.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이 들어야 하나?

처음에는 가이드의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잦은 주위보에 도가 넘는다고 여겼지만 만일에 누가 여권 돈 도둑 많은 상황을 상상하니 안전 여행에 책임이 없을 수 없는 가이드 입장에서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인솔하는 사람 중에 누가 소매치기에게 여권 돈 몽땅 도둑맞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니까.
한 시간 남짓 걸린 관광을 모두 마친 우리 일행들. 버스에 올라 예비된 식당으로 출발하려는데 사람 하나가 모자란단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안 보여 내막을 알고 보니 이번에는 한 여성이 공원을 나와 버스에 잘 올랐는데 함께 걸어오던 남편이 안 보인다는 것.

남녀 역할만 뒤바뀌어졌을 뿐 상황이 아주 흡사한 조금 전 공항에서의 악몽이 되살아나서 모두가 하얗게 질려있기를 십여 분 만에 우리, 현지 두 분의 가이드 얼굴을 까맣게 물들인 남자 주인공이 버스에 오른다. 공원에서 나오다가 발목이 삐끗하여 잠시 쉬다 오느라고 늦었다는 것.
여정 첫날부터 이렇다면.....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는 않았어도 남은 일정들 제발 아무 탈 없기를 기원하는 듯 버스 안의 무거운 침묵을 깨려는 듯 누군가 짤막한 기침소리를 내었다.
바르셀로나는 청결하고 정돈된 도시였다. 우아하고 클래식한 건축물, 잘 차려입은 거리의 시민들, 처음 와 보는데도 괜스레 친숙하다는 느낌을 받는 도시라 마음에 들었지만 시내 도로 폭들이 상당히 좁고 공기도 탁 한 편이라 조금 갑갑했다.
스페니쉬와 조금 다른 까딸란 (catalan) 언어를 동시 공용어로 채택한 바르셀로나는 비단 언어뿐만이 아닌 문화와 역사도 스페인과 달라서 여러 차례 독립을 원했고 실제로 독립을 선포한 적도 있단다. 비록 유럽 국가들의 반대 내지 무관심 속에서 일방적으로 선포된 독립의 꿈은 못 이루었어도 언제라도 뛰쳐나가려는 징조는 가는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생김새도 같고 언어가 달라봤자 쌍방이 소통되는 사투리정도에 지나지 않는데도 굳이 다른 언어라며 공문서와 공항 내 안내문에서부터 거리의 도로명 가게의 간판까지 굳이 알파벳 글자 한 두 개 다른, 그러나 발음은 흡사하여 차이가 별로 없는 언어에다 알파벳 문자마저 다르게 사용하는 모습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고, 국가와 국가사이에 경쟁이 치열한 작금의 상황에서 분열의 집념을 포기 못 하는 바르셀로나 시민들 정서에서 어째서 유럽의 역사가 전쟁과 파괴로 얼룩지게 됐는지 알 것 같았다.
현지교포가 운영하는 한국식당의 음식은 훌륭했다. 운행 중에 잘 먹지도 못하고 수면도 부족한 상태에서 두 번의 실종 소동과 강행군에 지쳐있던 일행은 입에 쩍쩍 붙는 김치찌개와 불고기로 잠시 잃었던 입맛과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고 우리는 호텔로 들어가 유럽의 첫날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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