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잔잔한 바다 위로 저배는 떠나가며 노래를 부르니 나폴리라네.
황혼의 바다에는 저 달이 비치이고 물 위에 덮인 하얀 안갯속에 나폴리는 잠잔다.
산타 루치아 잘 있어 서러워 말아다오. 즐거운 나그네는 이 밤이 기쁘건만
나폴리 떠나가는 이 배는 가슴이 아프리라. 산타루치아 잘 있어 서러워 말아다오
위의 [먼 산타루치아] 이태리 가곡의 구절들은 원제 이태리 가곡 Santa Lucia Luntana를 한국어로 번역한 가사로서 정든 나폴리를 떠나는 뱃사람들의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나폴리의 관 한 또 다른 가곡 산타루치아, 돌아오라 소렌토로 보다 인지도가 낮아서 음악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노래 일 듯 싶다.
그런데도 나폴리 갈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던지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나폴리가 이태리 항구도시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시 어른들도 잘 모르던 먼산타루치아를 곧잘 불렀기 때문인데 나는 이 노래를 초등교 오 학년 시절, 이듬해 여름 한강에서 수영하다가 물에 빠져 죽은 급우로부터 전수받았고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나폴리에 거는 기대는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 여섯 시쯤에 출항하여 이튿날 아침 일찍 입항하던 여느 때 보다 다르게 오늘은 정오, 한낮에 도착할 예정이다. 뷔페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형 창 밖에서 전개되는 여러 섬들의 그림 같은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조식을 모두 마친 우리 일행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드넓은 프롬나드 광장에서 커피도 마시고 여인들은 강사의 지도에 따라 라인 댄스도 추고 사내들은 다가오는 나폴리 산하를 바라보면서 크루즈 입항을 기다렸다.
폼페이 시가지 전체를 흔적도 없이 매장시킨 왕년의 무서운 화산 베수비오 산을 배경으로 해안선 따라 드넓게 펼쳐진 항구 도시의 아름다운 경관은 기대했던 것만큼 엄청나지는 못했어도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나폴리 찬양에 열을 올렸는지 알 것 같았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점심때 다 되어 입항이 예정되었던 크루즈선박 스케줄에 따라 시내 관광 시간은 고작 네 시간 정도, 선박 부패식당에서 중식을 마친 일행은 부두 앞 도로변에서 대기 중에 있던 한인여성 현지가이드와 합류하여 폼페이로 향했다.
질주하는 버스 창 밖에 비친 건물들은 서울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철거되었을 노후 아파트의 행진이었다. 외벽 떨어져 나가 벽돌이 드러나는 흉한 몰골. 베란다 난간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진 옷가지들. 개발 도상국 도회지에서나 볼 수 있을 색 바랜 건물들의 초라한 모습들을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하던 나폴리가 이렇게 된 이유는 이태리 당국의 무관심, 이 지역 사람들의 낙관적 성격으로 좀 게으른 구석이 있는 데다가 지금은 잠복 상태에 있지만 언제 또 활성화될지 모르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이 두려워 새 건축물, 공장시설 같은 부동산 투자를 꺼리는 풍조 때문이라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폴리항 일대 많은 부분이 오래전에 지어진 그 상태에서 재건축도 안 하고 페인트 칠도 안 하고 보수도 안 하는 것 같았다. 가난한 남과 부유한 북 경제 차이를 극복 못하는 이탈리아의 현실을 감안해도 한 시절 전 세계 삼대미항 중에 하나였던 나폴리가 어떻게 현상유지 하나 제대로 못 해 나와 같이 어려서부터 흠모해 오던 이방인의 마음을 착잡케 하는지. 나폴리 외곽 벌판의 푸른 초원이 잡초가 무성한 폐가의 마당처럼 보였다.
버스에서 나와 화산재에 묻혀있던 장소를 향해 걸어가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밀려다니는지 관람객 난리를 피해 도주 중에 있는 피란민들의 행렬 같았고 입장을 위해 줄 지어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고 했던 바르셀로나 가우디 성당 인파보다 더 많아 보였다.
요즘과 같은 성수기에는 주 칠일 개미굴에 개미들처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쇄도한다는 관광객들. 본래 자그만 마을 폼페이 인프라로서는 감당할 여력이 없어 하루 이만 명을 제한시켰다는데도 이 정도 수준이라면 현지인들의 관광객 배척행위도 이해된다.
당국은 돈 버는데만 정신 팔려서 도로와 사설 확장은 소극적으로 일관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농사지으며 평화롭게 살던 현지인들에게 돌아갈 것. 대체로 온순한 사람들이니까 아이들 장난감 물총 피켓 들고 시원하지 성질 급한 딴 나라였다면 산탄총에 화염병 들고 나타났으리라.
한참의 기다림 끝에 돌 길과 돌 담, 사이사이마다 잡초가 돋아나 있는 폼페이 거리에 들어서기 전까지 남들 모르는 나 만의 계획이 있었다. 무구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폼페이 돌길을 걸으며 온갖 사연이 새겨져 있을 집터와 지붕 없는 벽면의 돌 하나하나 쓸어도 보고.
예전 유곽 방에 놓여있는 작은 돌침대에 누워도 보고, 해일처럼 쇄도하는 뜨거운 화산재에 공포에 떨다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죽어갔을 석고 형상들 앞에서 묵상도 하면서 어리석은 중생들의 타락을 화산불로 응징한 신의 분노와 죄인의 고통스러운 종말을 실감 나게 느껴보려던 나
그런 순진천만 했던 기대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불어오는 돌풍과 맞서 계속 전진하지 않으면 등뒤에서 바싹 붙어 밀려오는 행렬에 뒤로 밀리는 살벌한 현실 앞에서 철저히 무너져 내렸다.
기다란 행렬 따라가면서 사진 몇 컷 찍고 거시기 전혀 닮지 않은 유곽 돌담 벽에 솟아난 돌부리 한 번 처다 보고, 구글 검색창만 치면 즐비하게 떠오르는 석고로 본떠 만들었다는 그 많은 형상물은 어디로 갔나? 친구 내외분이 이십 년 전에 왔을 때는 사방에 널려있었다는 그 석고물이 몽땅 사라졌다면 폼페이는 가보나 마나. 석고형상 없는 폼페이는 고무줄 빠진 팬티요 호두 없는 호두과자나 다름없기에.
그까짓 가옥 뼈대나 돌조각 돌부리 몇 개 보려고 저 먼 곳에서 찾아올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나부터라도 폼페이는 걸렀을것이다.
그래도 일말의 염치는 남아있었던지 한 구는 있었다. 거의 다 빠져나갈 때쯤 어느 작은 집 마당 한가운데에다 보물단지 모시듯 두꺼운 유리관속에서 엎드려진 석고시신 하나. 이게 무슨 루블 박문관의 모나리자라도 되는 듯 감격한 표정을 지어가며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도 많았다. 관광객 우롱하는 관계당국의 치사함에 약이 바짝 오른 나는 지나치며 힐끗 째려본 것이 전부. 그리고 밖으로 나가 우리보다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과 합류했다.
이제는 누가 누군지 서로 다 아는 상황. 이번에는 신통하게도 모두 모여있었다. 여성가이드도 와 있었고 지난번의 전과님들 모두 와계셨는데 아뿔싸. 우리 가이드님이 왜 아니 보이실까, 다행히도 두 분 가이드 사이에 통화가 연결되어 한-참만에 합류할 수 있었다.
곧바로 버스에 올라 그렇게 멋지다는 소렌토를 향해 출발했건만 안타깝게도 가는 도중 관광을 포기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현지인 버스기사 말에 의하면 지금과 같이 도로가 심하게 밀리는 상황에서는 도저히 제시간에 다녀올 수 없다는 것. 크루즈 선박의 출항시간은 칼처럼 정확해서 제시간에 못 도착하면 절대로 못 들어간단다. 승선 놓친 선객들이 제 아무리 울고 불고 통곡해도 배는 닻 올리고 떠나간다는 것. 유람선 놓칠 경우 다음 기항기 까지 보트나 혹은 택시나 항공편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에 아무런 항의도 할 수 없었고 선박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는 고요한 침묵만이 맴돌고 있었다.
여행 백미로서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나폴리, 폼페이 그리고 소렌토. 이 세 군데 저명한 관광지를 단 반나절 만에 돌아볼 수 있다는 기대감은 정녕 꿈이었을까? 저 멀리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는 베수비오산 일대 목가적 풍경을 바라보며 편안함과 안락함을 표방하는 크루즈 여행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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