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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어느 반려견의 눈물

by Seresta 2024. 4. 30.

 

하찌는 어느 일본 여염집에서 태어난, 우리의 진돗개와 많이 닮은 아끼다종 강아지 하치코의 애칭이다.  하찌의 일과는 강아지 시절부터  자기를 보살피고 키워준 주인 대학교수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전철역 출구 앞에서 앉아있다가 역 입구에서 걸어 나오는 주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 하지만 교수가  강의 도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하찌는 졸지에 외톨이 신세로 전락되고 말았다.

더 이상 개를 키울 수 없는 교수의 미망인이 가족이 살던 집을 처분하고 아들네로  들아가면서 하찌는 잘 보살펴 줄 만한 한  가정에 입양시켰지만 충성스러운 개는 일편단심 오직 옛 주인만을 그리며 지내다가  기어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찾아 가출하고 말았다.

 

집 없는 하찌는  무려 칠, 팔 년이라는 긴 세월을  비가 오나 눈바람 치나  오직 주인 나올 시간에 맞춰 전철역 입구에 엎드려  하염없이 기다리다 더 이상 나오는 사람들이 없는 아주 늦은 시간에 되돌아가는 행동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되풀이했으며 그러한 하찌의  애달픈 사연을 알게 된 한 기자로 인해 지역 일간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어느새 유명해진 하찌를  보려고 찾아온 인간들의 호기심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오직 영원히 오지 않을 주인과의 재회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하찌는 어느 해 겨울 눈 내리던  추운 아침,  항상 앉아 기다리던  바로 고 자리에서 차갑게 얼어 죽은 상태로 발견됐다.

 


하찌의 일과는 대부분 베일 속에 감춰져 있었다. 간혹 전철 인근 상점가에서 점포지기 노릇하고 있던 다른 바둑이들과 마주 앉아있는 모습도 보였으나 오래전 고인이 된 주인의 발자취 주변을 서성이며 쏘다녔을 하찌의 삶은 오직 "기다림"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이 던져주는 붕어빵과 어묵 조각으로 허기는 면할 수 있었어도 자신의 공허한 가슴만은 그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했을 불쌍한 개 하치코. 

 

시종일관 전철 입구에 앉아 나오는 사람들 얼굴만 바라보다가 인적이 모두 끊어진 다음에야 기운 없이 자리를 뜨는 하찌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바라볼 수 없는 가여운 광경이었다는 목격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세월 흐름에 따라 몇 마리 안 되던 하찌의 동무개들이 혹은 늙어서,  또는 병으로  자취를 감추어 갈 때도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하찌의 모습은  이제 별로 신기하지도, 흥미롭지도 못 한,  마치 전철역 주변에 심겨진 가로수 모양  거리의 풍경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해 겨울 새벽. 

출근길에 나섰던 사람들은 전철역 앞에서  하얀 눈 속에 파묻힌 하찌를 목격했다. 강추위에 숨 거두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주인 나오기를 기다렸을 반려견 하찌코.

 

 

만약에, 절대 그런일은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주인이 어떤 기적으로 나타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기를 키워주고 사랑해 주던 주인이 너무 그리워서 두 눈가의 털이 붉게 변색될 지경에 이르기까지 눈물 흘렸던 반려견 앞에 나타난다면 하찌는 과연 어떤 반응으로 그간의 그리움을  나타낼지 무척 궁금해진다. 


동물적 본능으로는 도저히 해명 못 할 한 마리 반려견의 주인을 향한 일편단심. 

 

돌아오지 않는 주인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숨져 간  하찌의 애달픈 사연은 영화와 소설 그리고 만화로 각색되면서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로 승격되었고  하찌가 늘 앉아 기다리던 전철역 앞에는 동상이 세워져 하찌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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