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찌는 어느 일본 여염집에서 태어난, 우리의 진돗개와 많이 닮은 아끼다종 강아지 하치코의 애칭이다. 하찌의 일과는 강아지 시절부터 자기를 보살피고 키워준 주인 대학교수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전철역 출구 앞에서 앉아있다가 역 입구에서 걸어 나오는 주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 하지만 교수가 강의 도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하찌는 졸지에 외톨이 신세로 전락되고 말았다.
더 이상 개를 키울 수 없는 교수의 미망인이 가족이 살던 집을 처분하고 아들네로 들아가면서 하찌는 잘 보살펴 줄 만한 한 가정에 입양시켰지만 충성스러운 개는 일편단심 오직 옛 주인만을 그리며 지내다가 기어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찾아 가출하고 말았다.
집 없는 하찌는 무려 칠, 팔 년이라는 긴 세월을 비가 오나 눈바람 치나 오직 주인 나올 시간에 맞춰 전철역 입구에 엎드려 하염없이 기다리다 더 이상 나오는 사람들이 없는 아주 늦은 시간에 되돌아가는 행동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되풀이했으며 그러한 하찌의 애달픈 사연을 알게 된 한 기자로 인해 지역 일간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어느새 유명해진 하찌를 보려고 찾아온 인간들의 호기심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오직 영원히 오지 않을 주인과의 재회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하찌는 어느 해 겨울 눈 내리던 추운 아침, 항상 앉아 기다리던 바로 고 자리에서 차갑게 얼어 죽은 상태로 발견됐다.
하찌의 일과는 대부분 베일 속에 감춰져 있었다. 간혹 전철 인근 상점가에서 점포지기 노릇하고 있던 다른 바둑이들과 마주 앉아있는 모습도 보였으나 오래전 고인이 된 주인의 발자취 주변을 서성이며 쏘다녔을 하찌의 삶은 오직 "기다림"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이 던져주는 붕어빵과 어묵 조각으로 허기는 면할 수 있었어도 자신의 공허한 가슴만은 그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했을 불쌍한 개 하치코.
시종일관 전철 입구에 앉아 나오는 사람들 얼굴만 바라보다가 인적이 모두 끊어진 다음에야 기운 없이 자리를 뜨는 하찌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바라볼 수 없는 가여운 광경이었다는 목격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세월 흐름에 따라 몇 마리 안 되던 하찌의 동무개들이 혹은 늙어서, 또는 병으로 자취를 감추어 갈 때도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하찌의 모습은 이제 별로 신기하지도, 흥미롭지도 못 한, 마치 전철역 주변에 심겨진 가로수 모양 거리의 풍경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해 겨울 새벽.
출근길에 나섰던 사람들은 전철역 앞에서 하얀 눈 속에 파묻힌 하찌를 목격했다. 강추위에 숨 거두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주인 나오기를 기다렸을 반려견 하찌코.
만약에, 절대 그런일은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주인이 어떤 기적으로 나타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기를 키워주고 사랑해 주던 주인이 너무 그리워서 두 눈가의 털이 붉게 변색될 지경에 이르기까지 눈물 흘렸던 반려견 앞에 나타난다면 하찌는 과연 어떤 반응으로 그간의 그리움을 나타낼지 무척 궁금해진다.
동물적 본능으로는 도저히 해명 못 할 한 마리 반려견의 주인을 향한 일편단심.
돌아오지 않는 주인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숨져 간 하찌의 애달픈 사연은 영화와 소설 그리고 만화로 각색되면서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로 승격되었고 하찌가 늘 앉아 기다리던 전철역 앞에는 동상이 세워져 하찌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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