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차: 지중해 크루즈 여행
[제노아(제노바) 포르토피노]
인류의 역사를 바꾼 콜럼버스와 전설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고향 제노아 아침. 발코니 밖에 그려진 항구 앞의 풍경은 흐린 날씨에 보슬비까지 오고 있어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조식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 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인 현지 여성가이드가 손에 쥐고 있던 작은 깃발을 흔들어 보였다. 일행은 제노아 인근 유명한 휴양지 포르토피노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이동하면 시간과 거리가 단축되고 걸을 필요도 없는 페리 선편이었다. 그러다 거센 바람에 비가 많이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해 운반선 대신 여러 대의 밴을 이용하기로 변경했다고. 버스에서 하차한 일행은 한참을 걸어 사전 연락받고 대기 중에 있던 6인승 승합차에 나누어 탔다,
포르토 피노 가는 단선 도로는 두대가 나란히 달릴 수 없을 만큼 비좁고 커브길이 많았다. 직선구간이 거의 없는 커브 연속의 내리막길. 차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포르토 피노의 환상적 경관. 저 아래 둥근 해변 따라 작고 큰 집들이 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마치 언젠가 엄청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반지의 제왕 요정들 사는 동네를 같이...
밴 승합차는 아담한 마을 입구에 도착했고 우리는 수용성 물감으로 채색된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대도시 광장 사이즈 밖에 안 돼 보이는 아주 조그만 다운타운을 돌아다녔다. 처음 와보는 장소인데도 전혀 생소하지 않아서 언젠가 와 보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오래전에 시청했던 유로피안 영화 속에 한 풍경 일 수도 있고 어쩌면 포르토피노 마을에서 촬영된 어느 영화 한 장면과 실제 모습이 오버랩 됐을 수도 있겠다.
이 자그만 마을에도 볼 곳은 많았다. 해변 언덕 위 성당의 탑. 아담한 해변가 따라 세워진 상가건축물들. 궂은 날씨로 방문자 별로 없는 한적한 해변가 카페들. 우리 세 내외는 언덕 위 성당 탐방을 포기하는 대신 해변가와 붙어있는 텐트 쳐진 노천카페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보슬비 안갯속에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일체가 된 수평선을 바다를 바라보면서 별스럽게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그렇지 않아도 몽환적인 주변 경치가 현실이 아닌 꿈속의 세상 같은 환각마저 일게 한다.
꿈속의 마을 포르토피노 투어를 마치고 제노아 시내로 돌아온 우리는 조금 한적한 거리에 위치한 일식 식당을 찾았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아무도 없는 텅 빈 식당 안에서 인상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중국 여인이 반색을 하며 자리를 안내했다. 주위를 돌아보자 엄마 아들 딸, 그리고 안쪽 주방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아빠.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 같아 보였다.
본래 일본 음식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나였기에 점심으로 초밥세트 담긴 접시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그런데 모양새는 분명 초밥 형상이나 맛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처럼 다 먹어치운 사람들은 몇 안되고 대부분은 밥은 놔두고 위에 얹힌 생선만 떼어먹는 어린아이 식사를 하고 있다. 한두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거의 모두가 그런 식이다 보니 우리들 식탁 위에는 남겨진 밥알 뭉치들로 도배가 되어서 중국인 가족 얼굴 보기가 심히 민망하여 죄진 사람 모양 고개를 숙이고 나와야 했다.
그럭저럭 점심을 마치고 십여분 정도 걸어 대기 중에 있던 버스에 올랐다. 이번에는 일행 전원이 좌석에 앉아있었기에 곧 떠날 것을 확신하며 기다렸지만 버스는 마치 자신의 네 바퀴가 아스팔트에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무언가 또 잘 못 되었다는 느낌에 버스 내부에 착석한 사람들을 헤아려 보니 우리 가이드가 없어 내막을 알아보니 우리와 한 식탁에서 식사하셨던 노인께서 기념품 가게에서 구입한 물건을 자기가 앉았던 의자 곁에 놓고 나왔다가 버스에 착석하여 안전벨트를 착용할 때 불현듯 자신이 구입했던 선물 봉지를 식당에 놓고 나왔음을 뒤늦게 알고 찾아 줄 수 있냐고 가이드에게 부탁한 모양.
그리하여 우리 가이드가 두고 나온 물건을 찾으러 간다고 도보로 왕복 20분 거리를 뛰어서 10분 만에 되찾아 오는 기록은 세웠는데 잃어버린 시간은 되찾을 수 없어 이래서 연세 높은 노인장께서 홀로 여행하시는 게 아니다라며 많이 원망했는데 바로 그날 저녁식사 때 본의 아니게 폐 많이 끼쳐드렸다면서 6, 7명씩 앉아있는 식탁 위에다 비싼 와인 한 병씩 쏴주셔서 많이 죄송했다.
흐린 날의 제노아는 멋 이 있었다. 시민들의 평균 소득도 높은 북부 이탈리안 도시답게 정장 차림의 신사숙녀들도 많이 보였다. 쇼핑거리를 가로질러 버스가 도착 한 곳은 페라리 광장. 우리는 주어진 자유 시간을 이용하여 어느 가체에 들어가서 화장실도 다녀오고 광장 골목 거리를 걸으며 주위도 구경하고 광장 앞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도 몇 컷 찍었다.
이태리 반도 북부 주요 항구 제노아(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사용하는 영어 표기) 혹은 제노바(이태리 자국 언어 표기)는 중세기에 바다의 지배자란 별칭으로 명성 떨치던 제노바 공화국의 후신이기에 도시 곳 곳마다 숱한 역사와 전통과 애환이 깃든 명소들이 수두룩 하다고.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짧은 스케줄 관계상 수박 겉핥기 관광밖에 할 수 없어 아쉬움도 많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