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아기 입양 작전
지구촌 많은 나라들 중에서 미국만큼 입양을 많이 하는 나라도 드물 것 같다. 자국의 어린이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생김새와 피부색이 사뭇 다른 타인종 아기나 어린이를 별 망설임 없이 가족의 일원으로맞이하는 그들의 입양 사상은 가문의 혈통을 잇는 요소를 중시하여 이웃에게는 물론이고 입양 당사자에게 까지 입양사실을 감추는 우리네 풍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게다가 어떻게 별로 안 예쁘고 피부색갈도 다르며 심지어 건강상태도 좋지 못 한 아이를 입양 할 수 있는지 아량과 사랑이 부족한 나에게는 좀 처럼 납득이 되지 않아서 혹시 인간의 아기를 애완동물로 착각하는 건 아닌지, 입양한 가족들을 위한 국가의 보조금 탈 목적에서 하나도 아닌 둘, 셋씩이나 입양하는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일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먼서 그런 나의 추측은 아주 그릇 되고 속좁은 편견이었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면서 친부모 못지않는 사랑과 정성과 보살핌으로 입양자녀들 부모 역활 하기에 최선을 다하는 양부모들의모습을 볼 때마다 많은 감동을 받곤 했는데 가끔은 어떤 주눅감도 들었다.
인파가 몰리는 샤핑 몰, 극장, 광장, 디즈니랜드 같은 놀이동산을 갈 적마다 어김없이 마주치게 되는 입양가족들의 나들이. 키 크고 희멀건 용모를 지닌 백인부부가 딱 봐도 한국 출신자로 보이는 동양어린이 아니면 인형같이 귀여운 눈동자에 까만 피부 아이의 손을 다정히 잡고 걸어가는. 때로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입양 부모들과 조우할 때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가족들의 행차를 볼때마다. 특히 한국 어린이 같은 동양 아이와 동행하는 현지인 내외모습에 늘 감사하면서도 부끄럽고 개운치 못한 마음이 뒤섞인 묘한 심정. 올림픽 경기까지 치룬 나라에서 아직까지도 국내에서 해결 못하고 외국 가정에다 입양 보내는 현실이 부끄러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미국 입양 부모들 처럼 백인아기 입양을 꿈 꾸게 되었다. 한쌍의 동양인 부부가 하얀 피부 금색 머리 어린이의 손을 잡고 거리나 놀이 공원에서 활보하는 광경을 단 한 번도 듣거나 본 적이 없었던 까닭이다.
미국내에서 입양대상으로 순백인 아기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되겠지만 유럽인 계통이면서도 너무 가난한 나머지 신발 살 돈조차 없어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이 많은 중남미 촌 마을 사람들의 자녀들이라면. 남미대륙 오지에 살면서 제대로 된 양육도 교육도 못 시키는 미혼모 아기들도 적지않은 유럽이민자 후손들의 아이들이라면 입양하는데 별 어려움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현지 사정을 알아보기 전, 먼저 평소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만…
“거 무슨 정신 나간 소리. 자네 생각처럼 실제로 금발머리 파란 눈아이를 입양하여 여기ㅡ저기 데리고 다닌다고 가정해 보세. 우월감 많은 미국 사람들이 잘 도 좋다며 바라보겠다. 그들 중에는 정신병자같은 자들도 적지 않은데 동양 이민자가 자신들 놀린다고 자칫 총맞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할 걸? 별 쓰잘데 없는 망상으로 사람 열받게 하네”
그렇게 펄쩍 뛸 일도 아니련만 돌아오는 반응들은 싸늘함을 넘는 강력한 충고 일색. 그리고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협조해 줄 것으로 믿었던 아내의 반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번에 내가 말했던 것 기억나오?"
"뭐를 요?”
"백인아이 입양 문제.. “
"여보ㅡ 농담도 지나치면 실 없어져요"
"농담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대충 알아봤는데 시간이 들어서 그렇지 비용도 별로....
"""여보!!!
나의 백인아기 입양의 꿈은 시작도 못해보고 사라졌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나의 꿈을 이루어 줄 한국인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백인아이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러 인종 아기들을 입양하는 한국인들도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ㅇㅇ
(1996년 7월)